금의환향. 영화 <마더>는 제62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첫 선을 보여 환호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경쟁 부문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출품이 기대 된다” 등 헤드라인으로 쓰기 좋은 해외 언론의 칭찬 또한 속속 보고되었다. 그러나 “영화제의 진출 부문이 어디인가는 중요치 않다. 영화 자체를 국내에서 어떻게 봐 주실 지가 궁금하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마더>는 등수를 매기거나 상을 타기 위한 올림픽의 출전 선수가 아니다.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인 어머니와 아들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도전자다.

도준(원빈)의 동네는 누구 할머니가 치매고, 누가 어젯밤에 뭐했는지도 다 아는 작은 마을이다. 모두가 누군가의 어머니를 엄마, 엄니, 어머니로 부를 만큼 가깝다. 그래서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수사도 금세 종료될 수 있었다. 이것은 감독의 전작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소읍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뒤따르는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지만 누명을 쓰게 된 아들(원빈)의 구명을 위해 제 손으로 사건의 전말을 풀어가는 어머니(김혜자)의 모습은 일상적이지 않다. 더욱이 사건의 진실에 접근 할수록 광기에 가까워지는 모성은 “엄마의 본질은 똑같다. 다만 이런 상황에 놓여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는 김혜자의 말로 설명되지만, 그 실체는 누군가의 어미가 되어보지 않고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20일, 봉준호 감독과 김혜자, 원빈, 진구 등 배우들이 용산 CGV에서 열린 기자시사회를 통해 <마더>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아들의 존재만이 유일하게 피가 되어 심장을 뛰게 하는 엄마, 김혜자
“그냥 했어요.”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난무하고 자신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큰 영화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혜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냥 해도 “접신의 경지”에 다다른 그녀의 연기는 영화 안에서 강한 자성을 지닌다. 밥상에서 고기를 발라주고,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와 보약을 먹여주는 지극정성 엄마의 눈은 아들의 누명을 계기로 물기 대신 광기로 젖게 된다. 수십 년간 김혜자의 명예이자 굴레였을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갑갑했을까 싶을 만큼 “감독이 깨운 죽어있던 세포”들은 2시간 내내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폭발한다.

선과 악, 그 어느 것도 담겨있지 않은 백지 같은 아들, 원빈
실제로 유년시절을 강원도 산골에서 보내며 뱀을 잡아 파는 용돈벌이를 하기도 했던 원빈은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까지도 도준 그 자체다. 감독이 “시골의 정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라 내가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는 원빈은 깎은 듯한 아름다운 외모 외에도 가진 것이 많은 배우임을 보여줬다. “관객 분들이 그냥 바보가 아닌 어찌 보면 바보 같은 그런 남자”로 도준을 봐줬으면 하는 그의 바람은 순수와 ‘환장’을 넘나드는 원빈에 의해 도준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내 편인지 적인지 구분할 수 없는 도준의 친구 진태, 진구
“감독님이 점쟁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태가 저랑 너무 똑같아서 놀랐어요.” 감독이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진구를 염두에 두었다는 진태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진구의 이미지를 응집시켜 놓은 캐릭터다. 감독이 “타고난 진태”라고 극찬할 정도로 진구는 동네 날건달 진태의 존재감을 또렷히 드러낸다.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악의인지 선의인지 종잡을 수 없는 진태는 “김혜자 선생님과 1대1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으며 영화의 긴장감을 높인다.

관전포인트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와 함께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기대작인 <마더>는 칸에서의 호평으로 흥행에 날개까지 단 셈이다. 그러나 외부의 요란한 평가와 별개로 영화는 제작에 임한 모든 이가 묵묵히 그러나 야무지게 제 몫을 해냈다. 그 결과 현란한 기교나 예술적인 허영 없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밀어붙인 감독의 뚝심이 효과적으로 구현됐다. 특히 캐스팅만 봐도 예상 가능한 김혜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열연 뿐 아니라 원빈, 진구 두 젊은 배우들의 재발견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엄마이거나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는 모든 이들이 봤으면 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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