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늑대의 아이들’ 포스터. /사진제공=위드 라이언 픽쳐스
영화 ‘늑대의 아이들’ 포스터. /사진제공=위드 라이언 픽쳐스


빨간 고깔모를 쓴 소녀와 그녀를 노리는 늑대가 있었다. 늑대는 소녀를 앞질러 가 할머니를 미리 먹어치우고 이제 문을 열고 들어올 소녀를 기다린다. 날카로운 이를 세운 채 곧 신선한 아이를 맛보게 되리라는 기대감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런 식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확실히 어린이를 위한 동화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아마 ‘잔혹동화’라는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늑대의 아이들’(Wilkolak, 아드리안 페넥 감독)을 소개하는 첫 마디가 ‘잔혹동화’여서 하는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 폴란드의 어느 강제수용소에서 마지막 학살이 벌어졌다. 후환을 없애려 수용소를 지키던 독일군에게 내려온 명령은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이라는 것이었고, 이 명령은 충실하게 이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키우는 독일산 셰퍼트 사냥개들이 탈출자를 좇아 물어 죽이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상태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영화가 시작할 무렵 대량 학살이 이루어지는데 ‘잔혹동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잔혹했다.

여기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홉 명의 소년소녀들이 수용소를 접수한 소련군에 의해 외딴 집에 보내져 살게 된다. 비록 죽음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소련군이 먹고 살 방편까지 마련해 준 게 아니라 이들은 다시금 난감한 처지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난관이 들이닥친다. 바로 수용소에서 풀려난(?) 개들이 아홉 명의 뒤를 쫓아와 집 근처를 에워싼 것이다. 막다른 길에서 만난 막다른 위협! 팽팽한 긴장감이 관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이렇게 소개하고 나니 ‘늑대의 아이들’이 마치 공포영화 같지만 실은 공포영화를 가장한 ‘우화’(Allegory)에 가깝다. 아이들의 대장 격인 니콜라스와 소냐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 상을 그려내고 이 둘의 주위를 맴돌며 호시탐탐 자기 지위를 획득하려는 카밀은 권위에 대한 도전자다. 집을 둘러싼 개들과 소련군과 패전한 잔여 독일군은 집단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그 역할을 설정했는데 각각 공동체 외부에 상존하는 위협, 도움을 주지만 겉과 속이 다른 세력, 그리고 권좌에서 쫓겨났으나 다시금 그 자리를 노리는 세력을 암시한다. 한 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 소년소녀들에게 들이닥친 셈이다.

영화 ‘늑대의 아이들’의 한 장면. /사진제공=위드 라이언 픽쳐스
영화 ‘늑대의 아이들’의 한 장면. /사진제공=위드 라이언 픽쳐스
폴란드는 오랫동안 주권을 빼앗기고 살았던 나라다. 독일에 점령되기 이전에도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등 유럽 열강들 틈에 끼어 주눅들었고 거대 국가 러시아가 서방으로 진출하는데 교두보 노릇까지 담당했다. 그러니 어디 하루라도 맘 편한 날이 있었겠는가. 특히 2차 대전이 막 끝난 상황에서는 그 혼란이 극에 달했다. 폴란드를 창녀 취급하는 새로운 점령국 소련과 패전국 독일이 남겨놓은 기아, 전염병, 가난, 학살 등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했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나라가 바로 해방 폴란드였던 것이다. 그 후에 이어졌던 역사도 우울하기 짝이 없다.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자존심이 완전히 망가졌던 탓이다. 폴란드 역사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해두면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제공하는 공포감은 여타 공포영화와 달리 아주 신선했다. 특히 좁은 수용소에서 넓은 야외 공간으로 공포가 확산되는 모습을 놓치지 않은 점이 주목할 만했다. 또한 미친 듯 달려드는 훈련 받은 셰퍼트들은 타협의 틈이라곤 전혀 없는 보이지 않는, 무지한 적수를 표현하기에 적절했다. 심지어 밤낮조차 가리지 않는다. ‘엎드려(Nieder)!’ ‘일어서(Auf)!’ 관객은 이놈들이 독일어로 교육받은 개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두기 바란다.

‘늑대의 아이들’은 올해의 공포영화로 많은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상도 상당히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런 식의 홍보가 영화의 진가를 증명하진 않지만 영화를 직접 보면 허황된 과장 광고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짜임새도 훌륭하고 마지막에 주어지는 메시지도 좋아 충분한 생각거리를 남겨 줬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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