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일 SBS 오후 5시 20분
예능 프로그램이 매주 재미있을 수는 없다. 천하의 MBC <무한도전>도, KBS ‘1박 2일’도 재미없는 날이 있다. 좋은 의도와 기획이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제 ‘런닝맨’의 부진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8월부터 ‘런닝맨’은 제목 그대로 출연자들이 뛰거나 숨어야 하는 숨바꼭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쪽은 미션을 수행하고 한 쪽은 쫓는다는 단순한 포맷만으로도 VJ의 카메라는 다양한 시선으로 분할되어 현기증 나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프로그램의 정체성 역시 단단하게 여물어갔다. 하지만 아파트를 게임의 장소로 정한 건 명백한 실수였다. 기본적으로 숨바꼭질은 넓되 폐쇄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때 흥미로운 그림이 나올 수 있다. 쫓는 팀의 방울소리가 청각적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이러한 공간 특수성을 통한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내부는 제대로 된 추격전을 펼치기에는 너무 좁고 숨을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단지 내 놀이터는 너무 시야가 오픈되어 있어 방울소리를 비롯한 서스펜스적 요소가 작용할 여지가 없다. 어제의 숨바꼭질 분량이 그토록 짧았던 건 쫓기는 쪽이 너무 빨리 잡혀서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편집해서 쓸 만한 그림들이 안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나마 초반 분리수거 게임이 아파트라는 공간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세 팀이 따로 따로 구역을 정해 분리수거를 하면서 어떠한 갈등과 서사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덕분에 `런닝맨`은 프로그램만의 고유한 특징을 잃고 남녀 출연자가 팀을 나눠 시절의 `당연하지`와 비슷한 `상대방 심박수` 높이기를 길게 보여줬다. 이건 좋은 기획과 준비의 문제다. 좋은 리얼 버라이어티는 최대한 출연자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려면 제작진이 뛰어놀 수 있는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바르샤와 아스널이라 해도 진흙탕 위에서는 아름다운 축구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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