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처럼 싸우고, <추노>처럼 살아라
처럼 싸우고, <추노>처럼 살아라" /> 마지막회 KBS2 수-목 밤 9시 55분
생각해 보면, 속 남자들은 모두 작은 이야기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대길(장혁)은 언년(이다해)을 찾는 추노꾼이었고, 태하(오지호)와 업복(공형진)의 반란은 무엇 하나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끝났다. 의 남자들은 원하는 것을 쫓다가 실패했고, 결국 패배하며 죽어간다. 그것은 작게는 오포교가 가도 육포교가 횡포를 부리고, 크게는 조선 제일의 무관 태하도 그저 도망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무력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과 언년을 노비라 인정하지 않았던 태하는 대길과 ‘함께’ 달리며 “혜원과 언년이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될” 세상을 꿈꾸고, ‘그 분’의 명에 따라 총을 쏘던 업복은 스스로 총을 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물론 그들의 혁명은 실패했다. 그러나 업복이의 순교는 양반에게 순종하며 살았던 다른 노비를 자각시킨다. 단발적인 혁명은 실패할 수 있지만, 혁명이 남긴 정신은 사람들에게 ‘신념’으로 남아 조금씩 세상을 바꾼다. 그래서 의 남성적 비장미와 시대정신은 마지막 회에서 멋지게 결합한다. 이 땅에서 “도망치고 살지 않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고, 그 싸움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아남게 할 것이다. 그리하면 언젠가 석견은 복권되고, 추세는 멈추며, 노비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물론 업복이가 갑자기 슈퍼 히어로처럼 혼자서 궁궐을 돌파한 것처럼, 는 초반에 펼친 다양한 이야기를 끝까지 그려내지 못해 많은 것들을 성급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단지 투쟁의 카타르시스를 그리는 것을 넘어 투쟁이 다음 세대를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결론짓는 시대인식은 만의 힘을 만들어냈다. 혁명은 실패했다. 남자들은 죽었다. 하지만 언젠가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는 사람들을 자각시킨다. 싸워라. 그리고 살아라. 이 말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끓어오르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는 오랫동안 저자거리에 회자될 필요가 있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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