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어장> ‘라디오스타’ MBC 수 저녁 11시 5분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에 비해 턱없이 짧은 방송분량이 ‘라디오스타’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한 회 촬영분이 2주에 걸쳐 총 40분 정도 전파를 타다니. 아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어제 방송을 보면 분량이 짧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라디오스타’는 지금 MC들이 버라이어티 시장에 연착륙하기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MC들끼리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웃음이 빵 터지는 구조인데, 게스트의 조합이나 컨디션 여하에 따라 그게 여의치 않으면 분위기가 한없이 늘어진다. 깐족거리며 적재적소에 들어가던, 혹은 오요한의 이름을 언급하던 B급 감수성의 윤종신은 눈치 보듯 침묵했고, 성진우에게 이수만 사장께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지를 묻는 김국진은 뭔가 쫓기듯 계속 대본을 곡해했다. 신정환은 노력은 많이 했지만, 동네형님 느낌의 성진우와 기운 없어 보이는 윤도현, 예의바른 모드의 문희준과 웃음을 만들긴 쉽지 않았다. 게스트끼리도 성진우를 윤도현과 엮어보려 했지만 윤도현의 수줍음으로 이야기가 발전되지 못했고, 문희준은 딸랑딸랑 모드였기 때문에 코미디가 나올 수 없었다. 성진우가 김구라에게 왜 딱딱하게 구냐고 말하고 화내도, 그의 포스도 구라의 짓궂음도 웃음이 되지 못했다. ‘라디오스타’는 그 폭발성은 대단하나 이렇게 꼬이면 지루하고 딱딱해지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이 우리를 웃음으로 데려갈 것이다.
글 김교석

<적과의 동침> 슈퍼액션 오전 10시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내 또래 소녀들이 받았던 충격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것은 결혼한 성인 여성들이 느꼈을 법한 현실적 공감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감정이었다. <귀여운 여인>에 열광했던 소녀들은 부푼 기대와 함께 영원한 신데렐라 줄리아 로버츠 언니의 신작을 영접했다가, 그녀가 돈 많고 잘생긴 남편에게 처참하게 두드려 맞는 장면을 보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 꿈을 꾸라고 속삭였던 소녀들의 로망이 불과 며칠 뒤에 이젠 꿈 깨라고 따귀를 후려친 느낌이랄까. 그 와중에도 우리를 나름 치유해주었던 장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로라가 남편을 떠나 새롭게 사랑에 빠진 남자 벤과 연극 소품실에서 사랑스럽게 춤추는 신이었다. 남편에게 받은 상처의 후유증 때문에 세상에 대해 방어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로라는 여기에서 비로소 그 큰 입을 활짝 벌려 시원하게 웃는다. 이것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댄스 신 중 하나다. 디온의 ‘Runaround Sue’가 흐르는 가운데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남녀의 로맨틱한 떨림과 로라의 해방감이 소품실 안을 가득 채운다. 극 초반 남편에게 순종적으로 결박당하듯 안겨있던 댄스 신과 대조되어 더욱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의처증에 시달리는 그를 조롱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가사가 유쾌함을 더 증폭시킨다. 지금은 관용어로 더 유명한 제목의 영화지만 이 장면 외에도 꽤 많은 명장면이 숨어있는, 반복 시청의 묘미가 있는 작품이다.
글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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