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무열이 아픈 가정사를 고백했다.
29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246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특집에는 배우 김무열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김무열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아버지가 학교는 서울대 정치학과 나오시고 국회의원 보좌관을 오래 하셨다"며 "되게 엄한 분이셨다. 어렸을 때는 공부를 좀 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안양예고를 가고 싶다고 하고 연기 배우는 걸 말씀 못 드렸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부터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김무열은 "어머니께서 상가 분양 관련한 사기를 당하셔서 여러가지 일이 겹치며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 살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쳐 빨간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광명에서 대학로까지 버스, 전철을 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이웃들에게 돈을 빌리실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성균관대 연기과에 입학했지만 학교를 휴학하게 됐다고. 김무열은 "집안이 힘들어지다 보니 등록금 내는 일이 부담됐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돈이 많이 생기지 않느냐. 그런 게 부족한 시기였다 보니 학교를 휴학하고 알바를 계속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까지 쓰러지셨다는 김무열은 "아버지가 제가 20살, 21살에 사고로 쓰러지셨다. 다치신 채로 발견돼 경찰차를 타고 병원까지 갔는데 가까 아버지가 머리를 밀고 다 누워 계신 거다.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계시다가 암이 발견돼 가족이 또 아버지 암 치료를 계속 수발을 해야 됐다"고 했다. 이에 "항상 실려가고 또 병원 가고 그런 걸 반복하다 보니 장남으로서 계속 '강해져야 한다. 내가 굳건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김무열. 김무열은 "여전히 집이 어려워 산동네 판자촌에서 살 때였다. TV 드라마에 나오게 됐는데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한테 '우리 아들이 나온다'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하더라"고 돌아봤다.
결국 서른 초반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김무열은 "서른 초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지막에 힘들어 하셨다"며 "장례식 화장실에서 혼자 정신을 잃을 뻔 한 적 있다. 그때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닥쳤던 때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김무열은 "영화가 천만 관객분들께서 보실 정도로 성공하고 작년엔 아들도 보게 돼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며 "이제 아버지가 어디가서 제 자랑을 하시면 제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곁에 안 계신다는 게. 또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이 나더라.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땠겠다’고 하기도 한다"고 울컥했다.
김세아 텐아시아 기자 haesmik@tenasia.co.kr
29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246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특집에는 배우 김무열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김무열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아버지가 학교는 서울대 정치학과 나오시고 국회의원 보좌관을 오래 하셨다"며 "되게 엄한 분이셨다. 어렸을 때는 공부를 좀 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안양예고를 가고 싶다고 하고 연기 배우는 걸 말씀 못 드렸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부터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김무열은 "어머니께서 상가 분양 관련한 사기를 당하셔서 여러가지 일이 겹치며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 살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쳐 빨간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광명에서 대학로까지 버스, 전철을 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이웃들에게 돈을 빌리실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성균관대 연기과에 입학했지만 학교를 휴학하게 됐다고. 김무열은 "집안이 힘들어지다 보니 등록금 내는 일이 부담됐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돈이 많이 생기지 않느냐. 그런 게 부족한 시기였다 보니 학교를 휴학하고 알바를 계속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까지 쓰러지셨다는 김무열은 "아버지가 제가 20살, 21살에 사고로 쓰러지셨다. 다치신 채로 발견돼 경찰차를 타고 병원까지 갔는데 가까 아버지가 머리를 밀고 다 누워 계신 거다.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계시다가 암이 발견돼 가족이 또 아버지 암 치료를 계속 수발을 해야 됐다"고 했다. 이에 "항상 실려가고 또 병원 가고 그런 걸 반복하다 보니 장남으로서 계속 '강해져야 한다. 내가 굳건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김무열. 김무열은 "여전히 집이 어려워 산동네 판자촌에서 살 때였다. TV 드라마에 나오게 됐는데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한테 '우리 아들이 나온다'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하더라"고 돌아봤다.
결국 서른 초반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김무열은 "서른 초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지막에 힘들어 하셨다"며 "장례식 화장실에서 혼자 정신을 잃을 뻔 한 적 있다. 그때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닥쳤던 때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김무열은 "영화가 천만 관객분들께서 보실 정도로 성공하고 작년엔 아들도 보게 돼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며 "이제 아버지가 어디가서 제 자랑을 하시면 제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곁에 안 계신다는 게. 또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이 나더라.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땠겠다’고 하기도 한다"고 울컥했다.
김세아 텐아시아 기자 haesmi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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