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8월 2일 개봉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 우주 표현 방식
고립된 '개인' 아닌 협력하는 '단체'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 우주 표현 방식
고립된 '개인' 아닌 협력하는 '단체'
≪이하늘의 롱테이크≫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겸 영화평론가)가 한 호흡으로 화면을 길게 보여주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처럼, 영화 속 장면이나 영화 이야기를 심층 분석합니다.
닿을 수 없기에 염원하게 되고 소망하는 우주는 그렇기에 아름답고도 무서운 공간이다. 과학기술이 발전된 이래로 많은 이들이 달 방문을 시도했다. 멀리서 볼 때야 아름답다고 했던가. 달의 둥근 형태처럼 그 주위를 돌고 돌았지만, 쉽게 허락되지는 않았다.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물리적 격차는 점차 좁혀졌다. 이때, 미국은 우주인들을 달로 보내는 것만큼이나 다시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에 초점을 뒀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터전을 다시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다는 철학이 깔려있었다. 도전과 삶의 경계에서, 달과 지구의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영화 '더 문'(감독 김용화)은 우주가 지닌 물리적 격차를 이용해 인물들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방식을 사용한다. 대한민국 달 탐사선 우리 호가 갑작스러운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해 망가지며 황선우(도경수) 대원만 홀로 살아남고 이를 구출하려는 시도가 영화가 큰 골자다. 때문에 5년 전, 나래호 사고로 물러났던 전 센터장 김재국(설경구)은 다시 복귀하게 된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우주이지만 그만큼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예측이 불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김용화 감독은 SF 영화에서 흔히 공식처럼 쓰이던 지구와의 통신 차단을 오히려 연결되도록 설정했다.
가까운 미래인 2029년을 배경으로 하는 '더 문'은 시간적 길이를 늘이는 것보다 심리적 통합을 우선시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SF 영화는 미처 찾아오지 않은, 상상한 시간을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더 문은 다르다. 현재를 담았다. '승리호'(2021), '외계+인'(2022), '정이'(2023)만 하더라도 상상의 제약에 걸리지 않기 위해 시간을 뒤로 설정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더 문'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갈기갈기 찢긴 믿음이 회복되는 과정이다. 초반부 도경수가 연기한 선우는 기존의 다른 대원들이 지구에 남겨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장면보다 결의에 찬 모습으로 보인다. 지구와 응답을 원하던 대원들이 사고로 사망한 것과 달리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가득한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인물이 바로 선우다. 공교롭게도 선우의 아버지가 나래호 사건에 죄책감을 가지고 자살하며 선우가 우주로 떠나온 것이다. 세대 간의 끝나지 않는 생과 사의 굴레에서 고요한 우주는 어떠한 답도 내려주지 않는다. 그저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지구의 음성에 의지해 삶의 중력을 만들어 스스로 지탱해야 하는 것이 선우의 또 다른 임무일 뿐이다. 무력감에 휩싸인 또 다른 인물, 설경구가 연기한 김재국의 첫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분명 눈 덮인 산속에서 멧돼지를 총으로 겨누고 있지만, 발자국이 찍힌 눈은 마치 움푹 파인 달의 표면과 겹친다. 모래(레골리스, regolith)로 뒤덮인 달의 표면은 총격을 가한 것처럼 울룩불룩하다. 이때, 재국은 총을 겨누지만 딸깍하는 소리만 날 뿐 총알은 발사되지 않는다. "총알을 놓고 왔다"는 재국의 말은 단순히 코미디적인 요소에 그치지 않고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새로운 목표물을 겨냥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잡아야만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재국은 지구에서 붕 떠오른 상태다. 그런 재국에게 고립된 선우를 살리기 위한 임무는 총알을 가득 채워 다른 목표물을 겨냥할 수 있는 중심점을 만들어줄 시작과도 같다. 표면적으로 선우와 재국의 임무는 달에서 지구로의 귀환이지만, 내피를 살펴보면 상실을 제대로 치유하는 것이 그들의 보이지 않는 임무다. 재국이 복귀했음에도, 선우는 "제 목숨을 왜 맡겨야 하나요?"라며 불신하고 그들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선우에게는 아버지이자 재국에게는 동료였던 누군가의 상실은 탈출을 시도하는 족족 통신이 끊기고 무너지는 이들의 모습과 겹친다. 김용화 감독은 '신과 함께' 시리즈, '국가대표'에 이어 과거의 족쇄에 발이 묶여 날아오르지 못하는 이야기에 또다시 집중하는 듯 보인다.
SF의 외피를 썼지만, '더 문'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미국의 경우, 한 사람의 자국민이라도 있으면 목숨을 걸고 송환해오는 일련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역시 제목에서 지명하듯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전력 질주를 한다. 총알이 하늘에서 퍼붓고 적진을 지나가야 하는 고단한 여정이지만,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더 문' 역시 선우를 위해 모두가 힘을 쏟아붓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선우가 달에 착륙해 유성우를 피하며 달리는 장면은 마치 전쟁통에서 총알을 피하는 상황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선우에게는 달에 착륙해야 한다는 공적 임무와 살아남아서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사적 임무가 존재하는데 이는 달의 앞면과 뒷면처럼 확연한 구분을 지니지 못한 채 마구 뒤엉킨다. 즉 자꾸만 경로를 이탈하고야 마는 것이다. 김희애가 맡은 NASA 유인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 윤문영 역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직업적인 신념 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전 남편인 재국이 보내오는 도움 요청과 NASA에서 제한한 사항으로 인해 무중력 상태처럼 초점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더 문'은 재시작을 위한 영화다. 망가진 관계와 우주선, 경로를 잃고 방황하는 무력한 이들, 치유되지 않고 고통을 마주하는 상황들은 국가적 이념을 뛰어넘는 응답으로 인해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김용화가 '더 문'으로 하고자 하는 말에 관객들이 응답할지는 의문이다. 리셋 버튼을 눌러 아픔의 굴레를 끊어내려는 영화의 시도와는 다르게 전작들과 어떤 식으로 결별을 선언하고 재부팅을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유성우가 떨어지는 달에서 우주선에 올라타려는 도경수의 몸짓과 눈빛으로 인해 잠시 가려졌지만, SF보다는 익숙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돌아가 영화 속에는 선우가 우주선 안에서 자신을 제어해주던 벨트를 풀어야만 버튼을 누르고 혼란을 제어할 수 있는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지구로부터 지시가 있더라도 결국 스스로를 구출해야 하기에 선우는 안전함 대신 위험을 택한다. 일종의 아이러니다. 스크린 속에서 선우는 자신을 고정하던 끈을 푸는 반면에 김용화는 오히려 그 끈을 풀지 않는다. 캐릭터와 겹치지 않고 분리된 셈이다. 물론 감독이 창조한 캐릭터가 일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극 중 선우처럼 안전장치를 풀고 맘껏 활강했으면 어땠을까. SF 장르의 특성 역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의 구현이라고 한다면 그의 선택이 못내 아쉽다.
순진해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찬 강인한 눈빛과 단계별로 쌓아가는 감정을 보여준 배우 도경수의 연기는 무게 중심을 제대로 지탱하며 극을 이끌고 나갔다. CG와 VFX로 구현한 우주의 광활함 안에서 꿋꿋이 버티며 신선함이 되어줬다. 설경구, 김희애의 노련한 연기도 한몫했다. 때문에 '더 문'의 선택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달을 배경으로 삼은 '더 문'이 물리적 거리를 심리적 거리로 변주했지만, SF로서 제 기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신파를 분리하고 우주를 조명했다면 하는 안타까움도 들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사운드와 우주에서의 빛을 구현하고 SF 불모지 한국에서 장르를 확장하려던 포부는 박수받을 만하다.
'더 문' 오는 8월 2일 개봉. 상영 시간 129분. 12세 이상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겸 영화평론가)가 한 호흡으로 화면을 길게 보여주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처럼, 영화 속 장면이나 영화 이야기를 심층 분석합니다.
닿을 수 없기에 염원하게 되고 소망하는 우주는 그렇기에 아름답고도 무서운 공간이다. 과학기술이 발전된 이래로 많은 이들이 달 방문을 시도했다. 멀리서 볼 때야 아름답다고 했던가. 달의 둥근 형태처럼 그 주위를 돌고 돌았지만, 쉽게 허락되지는 않았다.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물리적 격차는 점차 좁혀졌다. 이때, 미국은 우주인들을 달로 보내는 것만큼이나 다시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에 초점을 뒀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터전을 다시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다는 철학이 깔려있었다. 도전과 삶의 경계에서, 달과 지구의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영화 '더 문'(감독 김용화)은 우주가 지닌 물리적 격차를 이용해 인물들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방식을 사용한다. 대한민국 달 탐사선 우리 호가 갑작스러운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해 망가지며 황선우(도경수) 대원만 홀로 살아남고 이를 구출하려는 시도가 영화가 큰 골자다. 때문에 5년 전, 나래호 사고로 물러났던 전 센터장 김재국(설경구)은 다시 복귀하게 된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우주이지만 그만큼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예측이 불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김용화 감독은 SF 영화에서 흔히 공식처럼 쓰이던 지구와의 통신 차단을 오히려 연결되도록 설정했다.
가까운 미래인 2029년을 배경으로 하는 '더 문'은 시간적 길이를 늘이는 것보다 심리적 통합을 우선시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SF 영화는 미처 찾아오지 않은, 상상한 시간을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더 문은 다르다. 현재를 담았다. '승리호'(2021), '외계+인'(2022), '정이'(2023)만 하더라도 상상의 제약에 걸리지 않기 위해 시간을 뒤로 설정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더 문'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갈기갈기 찢긴 믿음이 회복되는 과정이다. 초반부 도경수가 연기한 선우는 기존의 다른 대원들이 지구에 남겨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장면보다 결의에 찬 모습으로 보인다. 지구와 응답을 원하던 대원들이 사고로 사망한 것과 달리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가득한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인물이 바로 선우다. 공교롭게도 선우의 아버지가 나래호 사건에 죄책감을 가지고 자살하며 선우가 우주로 떠나온 것이다. 세대 간의 끝나지 않는 생과 사의 굴레에서 고요한 우주는 어떠한 답도 내려주지 않는다. 그저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지구의 음성에 의지해 삶의 중력을 만들어 스스로 지탱해야 하는 것이 선우의 또 다른 임무일 뿐이다. 무력감에 휩싸인 또 다른 인물, 설경구가 연기한 김재국의 첫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분명 눈 덮인 산속에서 멧돼지를 총으로 겨누고 있지만, 발자국이 찍힌 눈은 마치 움푹 파인 달의 표면과 겹친다. 모래(레골리스, regolith)로 뒤덮인 달의 표면은 총격을 가한 것처럼 울룩불룩하다. 이때, 재국은 총을 겨누지만 딸깍하는 소리만 날 뿐 총알은 발사되지 않는다. "총알을 놓고 왔다"는 재국의 말은 단순히 코미디적인 요소에 그치지 않고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새로운 목표물을 겨냥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잡아야만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재국은 지구에서 붕 떠오른 상태다. 그런 재국에게 고립된 선우를 살리기 위한 임무는 총알을 가득 채워 다른 목표물을 겨냥할 수 있는 중심점을 만들어줄 시작과도 같다. 표면적으로 선우와 재국의 임무는 달에서 지구로의 귀환이지만, 내피를 살펴보면 상실을 제대로 치유하는 것이 그들의 보이지 않는 임무다. 재국이 복귀했음에도, 선우는 "제 목숨을 왜 맡겨야 하나요?"라며 불신하고 그들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선우에게는 아버지이자 재국에게는 동료였던 누군가의 상실은 탈출을 시도하는 족족 통신이 끊기고 무너지는 이들의 모습과 겹친다. 김용화 감독은 '신과 함께' 시리즈, '국가대표'에 이어 과거의 족쇄에 발이 묶여 날아오르지 못하는 이야기에 또다시 집중하는 듯 보인다.
SF의 외피를 썼지만, '더 문'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미국의 경우, 한 사람의 자국민이라도 있으면 목숨을 걸고 송환해오는 일련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역시 제목에서 지명하듯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전력 질주를 한다. 총알이 하늘에서 퍼붓고 적진을 지나가야 하는 고단한 여정이지만,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더 문' 역시 선우를 위해 모두가 힘을 쏟아붓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선우가 달에 착륙해 유성우를 피하며 달리는 장면은 마치 전쟁통에서 총알을 피하는 상황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선우에게는 달에 착륙해야 한다는 공적 임무와 살아남아서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사적 임무가 존재하는데 이는 달의 앞면과 뒷면처럼 확연한 구분을 지니지 못한 채 마구 뒤엉킨다. 즉 자꾸만 경로를 이탈하고야 마는 것이다. 김희애가 맡은 NASA 유인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 윤문영 역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직업적인 신념 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전 남편인 재국이 보내오는 도움 요청과 NASA에서 제한한 사항으로 인해 무중력 상태처럼 초점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더 문'은 재시작을 위한 영화다. 망가진 관계와 우주선, 경로를 잃고 방황하는 무력한 이들, 치유되지 않고 고통을 마주하는 상황들은 국가적 이념을 뛰어넘는 응답으로 인해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김용화가 '더 문'으로 하고자 하는 말에 관객들이 응답할지는 의문이다. 리셋 버튼을 눌러 아픔의 굴레를 끊어내려는 영화의 시도와는 다르게 전작들과 어떤 식으로 결별을 선언하고 재부팅을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유성우가 떨어지는 달에서 우주선에 올라타려는 도경수의 몸짓과 눈빛으로 인해 잠시 가려졌지만, SF보다는 익숙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돌아가 영화 속에는 선우가 우주선 안에서 자신을 제어해주던 벨트를 풀어야만 버튼을 누르고 혼란을 제어할 수 있는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지구로부터 지시가 있더라도 결국 스스로를 구출해야 하기에 선우는 안전함 대신 위험을 택한다. 일종의 아이러니다. 스크린 속에서 선우는 자신을 고정하던 끈을 푸는 반면에 김용화는 오히려 그 끈을 풀지 않는다. 캐릭터와 겹치지 않고 분리된 셈이다. 물론 감독이 창조한 캐릭터가 일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극 중 선우처럼 안전장치를 풀고 맘껏 활강했으면 어땠을까. SF 장르의 특성 역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의 구현이라고 한다면 그의 선택이 못내 아쉽다.
순진해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찬 강인한 눈빛과 단계별로 쌓아가는 감정을 보여준 배우 도경수의 연기는 무게 중심을 제대로 지탱하며 극을 이끌고 나갔다. CG와 VFX로 구현한 우주의 광활함 안에서 꿋꿋이 버티며 신선함이 되어줬다. 설경구, 김희애의 노련한 연기도 한몫했다. 때문에 '더 문'의 선택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달을 배경으로 삼은 '더 문'이 물리적 거리를 심리적 거리로 변주했지만, SF로서 제 기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신파를 분리하고 우주를 조명했다면 하는 안타까움도 들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사운드와 우주에서의 빛을 구현하고 SF 불모지 한국에서 장르를 확장하려던 포부는 박수받을 만하다.
'더 문' 오는 8월 2일 개봉. 상영 시간 129분. 12세 이상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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