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살인의 계절-윤노파 살인사건'을 부제로 한 '꼬꼬무'는 윤 노파 일가를 살해한 진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1981년 8월, 용산 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당시 베테랑 형사 최 반장이 전화를 받았고 적산가옥 앞에 도착했다. 사건 현장 앞은 대문 밖에서 서성이는 동료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최 반장은 개의치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붉은 미등만 켜져 어두컴컴했다. 마치 누군가가 바로 튀어나올 것처럼 엄습해오는 공포를 이겨내고 최 반장은 방 한쪽 편에서 이불을 덮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은 한 명이 아닌 두 명.

사건이 일어나기 전, 윤 노파는 윤 보살이라고 불릴 정도로 관운을 잘 보기로 유명해 집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바로 남자는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것. 일반인들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복채에도 윤 노파의 집에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10억 이상의 돈을 벌어들인 윤 노파. 하지만 그만큼 호탕하고 사람들의 평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들을 차례로 조사하기 시작한 경찰은 한 가지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용의자 중 한 사람인 조카며느리 고 씨는 윤 노파가 사망할 경우, 고 씨와 그의 남편이 유산을 받게 된다는 점과 이전부터 돈을 중심에 두고 갈등이 깊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경찰은 조카며느리 고 씨를 검거했다. 당시 고 씨는 명문대를 졸업한 여성으로 윤 노파에게 그의 조카를 소개받아 6일 만에 결혼에 성공했다. 미국 유학까지 약속하고 한 결혼이지만, 윤 노파가 이를 하나도 지키지 않자 화가 나 고 씨는 결국 살해를 저질렀다.

결국 경찰의 수사 방식에 대한 비판이 일었고, 윤 노파 살인 사건은 고 씨 고문 사건으로 방향이 바뀌게 됐다. 경찰은 고 씨가 윤 노파의 패물을 훔친 것이 아닌 것을 직감했음에도 고 씨를 살인자로 몰았다. 그 때문에 증거와 조서를 조작해 고 씨가 윤 노파를 살해한 살인범이 됐던 것.

초동수사 당시 예금 증서를 빼낸 하 형사는 증거물을 사적인 자산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것으로 곧바로 구속됐다. 경찰이 살인범을 잡지 않고 증거를 빼돌린 이 사건은 경찰 역사상 가장 모멸감이 드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고 씨의 무죄는 입증돼 억울함이 해소됐고, 하 형사는 업무상 횡령죄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살게 됐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던 중 경찰의 초봉이 겨우 12만 4천원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이 알려진 것. 대기업 초봉이 30만원에서 40만원을 웃도는 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적은 금액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형사들의 처우 개선 문제가 도입됐다. 또한 고 씨 사건으로 인해 자백만 받으면 유죄로 인정되는 기존의 관행을 무효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윤 노파 일가 살인 사건은 지금까지 진범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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