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표 '수사 멜로극'은 청불(청소년 관람 불가)이 아니어도 소리 없이 강했다. 어른들의 로맨스를 은근하고 미묘하게 표현했다. '청불 감독'이라는 선입견이 단숨에 깨지기도.
여기에 박 감독만이 그려낼 수 있는 극의 미장센은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숨소리, 옷 색깔, 업무 공간 인테리어, 채도, 날씨, 화려한 패턴의 벽지 등 감각적인 미장센이 독창적인 세계를 완성했다.

해준은 서툴지만 분명하게 한국어로 의사를 표현하는 서래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변사자의 아내 서래는 좀처럼 속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긴장감을 형성한다.
두 사람은 경찰서부터 신문실, 서로의 집 등에서 묘하고도 은밀한 눈빛과 감정을 공유한다. 영화 내내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둘 사이 감정의 진폭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전해졌다.

특히 중국인인 서래가 어눌한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과 드러내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작용했다.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단어에 중간중간 애플리케이션의 도움을 받아 해준과 대화를 이어가는 서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마치 안개를 헤쳐 나가듯이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간다.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형사와 피의자로 만난 이들은 자욱한 안개처럼 감정의 갈피를 잡기 힘들지만, 어느새 푹 젖어있게 된다.

박해일과 탕웨이 외에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여러 배우도 함께 했다. 고경표, 박정민, 이학주, 정하담 등 젊은 배우들도 두루 활약했다. 박용우 역시 짧은 분량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후배 형사 역할로 깜짝 출연한 코미디언 김신영까지.
화려한 캐스팅과 더불어 반가운 주제곡도 나온다. 바로 가수 정훈희의 '안개'. 이 노래는 해준과 서래의 로맨틱한 감정선을 부각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세월의 흔적이 깊게 묻은 정훈희의 목소리는 주인공의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2000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형사 역할을 맡은 박해일 역시 걱정이 무색하게도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늘 양복을 입으며 깔끔하면서도 잠이 오지 않아 잠복근무하는 형사. 그리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는 멜로 장인의 모습까지 돋보였다.

류예지 텐아시아 기자 ryuperst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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