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영화인싸
배우 박정민./ 사진=영화 스틸컷
배우 박정민./ 사진=영화 스틸컷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시험 종료 직전 입실 했는데, 술술 문제를 풀어 나가더니 순식간에 답안을 작성한다. 범상치 않은 이 고등학생은 우리나라에서 딱 1명 보내준다는 미국 유학길까지 오르게 된다.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 1등은 말 그대로 '껌'이다. 그냥 천재다. 영화 '기적'의 주인공 '준경' 이야기다.

'준경'과 실제 박정민은 꽤나 비슷한 구석이 있다. 준경처럼 박정민은 학창 시절 남다른 성적을 자랑했다. 여기저기 학원에서 공짜로 수업을 해 주겠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 박정민은 입맛에 맞는 학원을 골라서 다녔다고 한다.

이후 공주의 명문인 한일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인문학부에 진학했다. 그러다 연출의 뜻을 품고 자퇴해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했다. 학력 만큼은 그 어떤 배우보다 우위에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정민은 한예종 영화과에서 연기과로 전과까지 했다. 한예종 연기과는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한다. 신입학보다 전과가 더 까다롭다고 알려졌다. 유례 없는 일을 박정민이 이뤄낸 것이다. 특히나 줄곧 공부만 하던 학생으로, 필모그래피가 없는 상황에서 연기과로 전과한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이를 두고 박정민을 이미 '연기 천재'라 칭했다. 박정민의 천부적인 자질은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통해 드러난다. 데뷔작 '파수꾼'부터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까지, 어느 하나 쉬운 역할이 없었다. 박정민은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캐릭터를 구현해 내며 연기파 배우로 인정 받았다.

'동주'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박정민과 작업 후 "저예산 영화계의 송강호"라고 극찬했고, 이 작품으로 그는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남우상, 남우조연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박정민은 본격적으로 장편 상업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배우 박정민./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박정민./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처음부터 유망주였지만, 여기에 뜨거운 '노력'이 더해졌다. 지금의 박정민은 '노력파'로도 정평이 나있다. 스스로 "나는 다크하다"라며 과묵한 성격이라고 얘기한 그는 작품을 준비할 때 엄청난 몰입력으로 캐릭터에 파고든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오진태 역을 연기했는데 이를 위해 장애 아동들을 직접 찾아가 행동을 배운 것은 기본, 살면서 건드려 본 적도 없다던 피아노 연주에 수백시간을 쏟아 부어 쇼팽의 '녹턴' 등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곡들은 피아노 초보가 몇 개월 연습한다고 칠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연주 실력을 떠나서 그 어려운 악보를 모두 숙지하고 연주하는 손모양을 연기한 것 자체로도 대단한 일이다.

이후 '변산'을 위해서는 랩을, '타짜: 원 아이드 잭'을 위해서는 포커를 완벽하게 숙지해 그려내는 등 연기에 뜨거운 노력을 기울였다. '타짜: 원 아이드 잭' 때는 "잘 생겨 달라"는 권오광 감독의 부탁에 체중을 20kg이나 감량했다.

지난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는 트렌스젠더 역할을 맡아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했다. 워낙 임펙트 있어서, 당시 영화 개봉 전까지 박정민의 출연 자체가 노출 되지 않았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이처럼 박정민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출연한 작품마다 흥행하진 못해서 '흥행배우'라 불리진 못하지만, 연기력 만큼엔 이견이 없다.

그런 박정민이 신작 '기적'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인물로 관객을 만난다. 워낙 독특한 캐릭터만을 연기 해 왔던 그는 '기적' 촬영 초반 자신이 연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웠단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지금껏 한국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던 경북 봉화군 지역 사투리가 나오는데, 이 또한 박정민은 각고의 노력으로 마스터 했다.

'기적'에서의 준경은 천재다. 그냥 미국길에 오르면 창창한 인생길이 확 열린다. 그러나 그는 '간이역' 이라는 목표 하나, 그리고 누나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분투해 나간다. 무엇이든 해 낼 것 같은 준경도 진짜 꿈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박정민의 '꿈'은 배우였다. 그것 말고 없었단다. 사실 고대 입학 전 먼저 한예종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험도 있다. 그리고 '파수꾼' 이후 '동주'를 만나기 전까지 5년 여 동안 무명생활도 겪었다. 천재라 불린 그가 순탄한 길만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배우를 꿈 꿨던 것 만큼 절실했던 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라고 불러주고 있어서 꿈을 이룬 사람이 됐지만, 저는 제가 배우라는 타이틀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정민은 "저는 지금도 매 테이크마다 좌절한다"라며 "지금 꾸고 있는 꿈은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이다. 제가 몸담고 있는 영화판에서 작게나마 제 '몫'을 하고 싶다. 그러면서 좌절할 때도 있겠지만 조금만 좌절할 생각이다"라며 웃었다.

현재 박정민은 제작사에서 가장 먼저 만지작 거리는 카드다. 영화 '1승' '밀수' 개봉을 앞두고 있고, 넷플릭스 오리지절 시리즈 '지옥'도 공개를 앞두고 있다.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정민은 '훌륭한 배우'의 꿈을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달리고 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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