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연, 씨네2000 대표 타계
영화계의 '큰 별', '큰 형님'
'여고괴담' 시리즈부터 '더 테러 라이브'까지
영화인장 영결식, 각계각층 인사 모두 참석
영화계의 '큰 별', '큰 형님'
'여고괴담' 시리즈부터 '더 테러 라이브'까지
영화인장 영결식, 각계각층 인사 모두 참석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수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꼰대와 거리가 먼 영화계의 맏형"
한국 영화계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영화인싸가 하늘의 별이 됐다. 고(故)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은막의 스타를 꿈꾸던 소년은 제작자로써 한국 영화계의 한 축을 세웠다.
"앞으로 10년 더, 20년 더 제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셔야 한다. 그러면 '가르침은 무슨 가르침, 그냥 오래 같이 가자'라고 하실 것이다." 고 이춘연 대표의 영결식에서 배우 이병헌의 말이다. 이병헌의 잠긴 목소리는 슬픔을 배가 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춘연 대표님, 이제 저희 곁을 떠나셨지만 떠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멸'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저 이병헌이 계속 살아남는지 지켜봐달라. 저 역시 무한 존경했고 사랑했다. 그동안 감사했다." 이 대표는 타고난 영화인이었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83년 영화계에 입문한 그가 택한 곳은 무대가 아니었다. 가능성 있는 후학들이 꽃을 피울 수 있게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한 것. 배우를 꿈꾸던 그에게 제작의 길은 험난했다.
이 대표는 1980년대 성공시대'(장선우 감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 감각적인 작품을 내놓으며 제작자로서 존재감을 알렸다. 위기는 1990년대말 소리 없이 찾아왔다. 폭탄은 거장의 반열의 오른 박찬욱 감독. 1997년 제작한 '3인조'는 흥행에 참패했다. 한국 영화 최초로 민영 방송 자본인 SBS로 투자까지 받았지만, 이 대표의 명성에는 상처가 났다.
반전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온다. 1998년 당시 한국 영화의 비주류 장르였던 공포물 '여고괴담1'을 제작해, 전국 2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시리즈의 포문을 열었다. 특히 과감하게 신인 감독, 신인 배우들을 등용해 제작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최강희, 김규리, 공효진, 송지효, 박한별, 김옥빈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모두, '여고괴담' 시리즈로 시작해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발돋움 했다. 1998년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다. 심은하-이성재 주연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역시 인기몰이를 하며 기사회생의 계기를 마련한 것. 성공과 실패, 좌절을 맛보며 단단해진 그는 점차 영화계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계의 맏형 역할을 많이 하셨다. 영화계 현안마다 대소사에 늘 애정 어린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고 그를 회상했다.
영화인들에 따르면 이 대표는 남다른 입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고, 선후배 영화인들을 독려하는 일에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보였다. 또한 '꼰대'와는 거리가 먼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그저 '영원한 현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대표는 과거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폼 잡지 말아야 한다. 내 얼굴 봐라. 가만히 있어도 폼 잡는 외모다. 현장에서 나와 다른 주장이 나와도 '옛날에는 말이지~'라고 안 하려고 한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후배들에게 농담을 자주 하려는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김규리는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한국 영화에 이춘연 대표님이 안 계실거란 생각을 왜 우리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참 바보 같다. 늘 푸르른 산처럼,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나보다. 하늘에서 지켜봐달라"고 추모했다.
또한 이창독 감독도 "영화인들의 중심에는 항상 이춘연이 있었다. 그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애통해 했다. 코로나19로 영화계가 침체된 상황, 이준익 감독 또한 "당신만큼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면 안된다. 뒤에 남은 저희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라고 한탄했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장례위원장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장례고문으로는 신영균, 정진우, 임권택, 황기성, 손숙. 장례위원으로는 강우석, 강제규, 고영재, 권영락, 김규리, 김두호, 김병인, 김서형, 김세진, 김영진, 김유진, 김인수, 명계남, 문성근, 민규동, 민병록, 박중훈, 박찬욱, 방은진, 배창호, 봉준호, 손예진, 신철, 안성기, 안정숙, 이병헌, 이용관, 이은, 이장호, 이준동, 이준익, 이창동, 유인택, 정상진, 정윤수, 정지영, 주진숙, 지상학, 차승재, 채윤희, 최재원, 최정화, 하정우 등이 참여했다. 준비위원으로는 김복근, 유창서, 이미영, 이진성. 대외업무는 이창세, 배장수, 오동진, 이무영 등 고인과 함께했던 영화계 선후배들이 자리했다.
또 지난 12일 오후부터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강우석, 강제규, 김유진, 김의석, 김경형, 김태용, 민규동, 류승완, 박찬욱, 방은진, 배창호, 봉준호, 육상효, 임권택, 이장호, 이정국, 이정향, 이창동, 임순례, 정윤철, 정지영, 최동훈 감독 등을 비롯해 김영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채윤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장,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신철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박광수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상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충직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안정숙 전 인디스페이스 관장,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배우 권율, 김규리, 김서형, 김수철, 김의성, 류승룡, 류현경, 박중훈, 송혜교, 안성기, 엄정화, 윤유선, 이병헌, 이선균, 장미희, 전도연, 전혜진, 정우성, 정진영, 조민수, 조진웅, 채령, 하정우, 한예리 등과 도종환 국회의원, 진선미 국회의원,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승수 전주시장 등 각계 각층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춘연 대표는 한국영화의 격동기, 부흥기, 침체기가 이어지는 동안 충무로를 지탱해 온 모두의 버팀목이었다. '인싸'를 넘어 영화계의 위인, 영화계의 역사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의 입담과 후배를 향한 조언을 직접 마주할 순 없어도, 그가 남긴 작품은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기억될 것이다. 이병헌의 말처럼, 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한국영화의 '큰 별'이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수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꼰대와 거리가 먼 영화계의 맏형"
한국 영화계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영화인싸가 하늘의 별이 됐다. 고(故)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은막의 스타를 꿈꾸던 소년은 제작자로써 한국 영화계의 한 축을 세웠다.
"앞으로 10년 더, 20년 더 제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셔야 한다. 그러면 '가르침은 무슨 가르침, 그냥 오래 같이 가자'라고 하실 것이다." 고 이춘연 대표의 영결식에서 배우 이병헌의 말이다. 이병헌의 잠긴 목소리는 슬픔을 배가 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춘연 대표님, 이제 저희 곁을 떠나셨지만 떠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멸'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저 이병헌이 계속 살아남는지 지켜봐달라. 저 역시 무한 존경했고 사랑했다. 그동안 감사했다." 이 대표는 타고난 영화인이었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83년 영화계에 입문한 그가 택한 곳은 무대가 아니었다. 가능성 있는 후학들이 꽃을 피울 수 있게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한 것. 배우를 꿈꾸던 그에게 제작의 길은 험난했다.
이 대표는 1980년대 성공시대'(장선우 감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 감각적인 작품을 내놓으며 제작자로서 존재감을 알렸다. 위기는 1990년대말 소리 없이 찾아왔다. 폭탄은 거장의 반열의 오른 박찬욱 감독. 1997년 제작한 '3인조'는 흥행에 참패했다. 한국 영화 최초로 민영 방송 자본인 SBS로 투자까지 받았지만, 이 대표의 명성에는 상처가 났다.
반전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온다. 1998년 당시 한국 영화의 비주류 장르였던 공포물 '여고괴담1'을 제작해, 전국 2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시리즈의 포문을 열었다. 특히 과감하게 신인 감독, 신인 배우들을 등용해 제작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최강희, 김규리, 공효진, 송지효, 박한별, 김옥빈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모두, '여고괴담' 시리즈로 시작해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발돋움 했다. 1998년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다. 심은하-이성재 주연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역시 인기몰이를 하며 기사회생의 계기를 마련한 것. 성공과 실패, 좌절을 맛보며 단단해진 그는 점차 영화계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계의 맏형 역할을 많이 하셨다. 영화계 현안마다 대소사에 늘 애정 어린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고 그를 회상했다.
영화인들에 따르면 이 대표는 남다른 입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고, 선후배 영화인들을 독려하는 일에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보였다. 또한 '꼰대'와는 거리가 먼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그저 '영원한 현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대표는 과거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폼 잡지 말아야 한다. 내 얼굴 봐라. 가만히 있어도 폼 잡는 외모다. 현장에서 나와 다른 주장이 나와도 '옛날에는 말이지~'라고 안 하려고 한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후배들에게 농담을 자주 하려는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김규리는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한국 영화에 이춘연 대표님이 안 계실거란 생각을 왜 우리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참 바보 같다. 늘 푸르른 산처럼,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나보다. 하늘에서 지켜봐달라"고 추모했다.
또한 이창독 감독도 "영화인들의 중심에는 항상 이춘연이 있었다. 그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애통해 했다. 코로나19로 영화계가 침체된 상황, 이준익 감독 또한 "당신만큼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면 안된다. 뒤에 남은 저희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라고 한탄했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장례위원장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장례고문으로는 신영균, 정진우, 임권택, 황기성, 손숙. 장례위원으로는 강우석, 강제규, 고영재, 권영락, 김규리, 김두호, 김병인, 김서형, 김세진, 김영진, 김유진, 김인수, 명계남, 문성근, 민규동, 민병록, 박중훈, 박찬욱, 방은진, 배창호, 봉준호, 손예진, 신철, 안성기, 안정숙, 이병헌, 이용관, 이은, 이장호, 이준동, 이준익, 이창동, 유인택, 정상진, 정윤수, 정지영, 주진숙, 지상학, 차승재, 채윤희, 최재원, 최정화, 하정우 등이 참여했다. 준비위원으로는 김복근, 유창서, 이미영, 이진성. 대외업무는 이창세, 배장수, 오동진, 이무영 등 고인과 함께했던 영화계 선후배들이 자리했다.
또 지난 12일 오후부터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강우석, 강제규, 김유진, 김의석, 김경형, 김태용, 민규동, 류승완, 박찬욱, 방은진, 배창호, 봉준호, 육상효, 임권택, 이장호, 이정국, 이정향, 이창동, 임순례, 정윤철, 정지영, 최동훈 감독 등을 비롯해 김영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채윤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장,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신철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박광수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상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충직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안정숙 전 인디스페이스 관장,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배우 권율, 김규리, 김서형, 김수철, 김의성, 류승룡, 류현경, 박중훈, 송혜교, 안성기, 엄정화, 윤유선, 이병헌, 이선균, 장미희, 전도연, 전혜진, 정우성, 정진영, 조민수, 조진웅, 채령, 하정우, 한예리 등과 도종환 국회의원, 진선미 국회의원,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승수 전주시장 등 각계 각층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춘연 대표는 한국영화의 격동기, 부흥기, 침체기가 이어지는 동안 충무로를 지탱해 온 모두의 버팀목이었다. '인싸'를 넘어 영화계의 위인, 영화계의 역사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의 입담과 후배를 향한 조언을 직접 마주할 순 없어도, 그가 남긴 작품은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기억될 것이다. 이병헌의 말처럼, 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한국영화의 '큰 별'이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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