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는 2월. 정초의 들뜬 분위기도 사그라들고 봄기운은 아직 멀기만 하다. 코로나 시대 2월은 더욱 울적하기만 하다. 주말마다 외출을 삼가라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문자가 쏟아지는 요즘, 넷플릭스나 왓챠 등으로 영화나 실컷 보자. 취향 따라서 골라 볼 수 있는 OTT 인기물들을 소개한다.
숨죽이며 추리소설을 넘기듯
나이브스 아웃, 2019년
개봉 시기를 잘못 잡아 흥행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지만, 진흙 속의 보석 같은 수작 추리 스릴러물이다. 2019년 겨울 극장에 걸릴 당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겨울왕국 볼 때가 아닙니다”라는 한 관객의 감상 후기가 이 영화의 수준을 대변해 준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로 큰 부를 쌓은 할란 트롬비가 그의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되면서 경찰과 함께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이 사건 조사에 나선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은 자식들과 며느리 사위, 손주 등 3대에 걸친 직계가족 전부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분위기와 흡사하지만,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은 없다. 숨가쁜 전개, 치밀한 미장센,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미, 흠잡을 데가 없다. 영화는 시작 30분쯤 지나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까 조바심도 나는데, 이후 100분 가까운 시간동안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왜’라는 궁금증과 ‘선과 악’의 결말을 추리소설한 장 한 장 넘기듯 펼쳐 놓는다. 제목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은 ‘칼을 빼들다’는 뜻이니 가족들마다 빼들 칼이 한자루씩 있는 사연이 있지 않겠는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랩 대령역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플러머, <007 시리즈>의 다니엘 크레이그, <캡틴 마블>의 크리스 에반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마르타 카브레라 등 호화 출연진이 탄탄한 시나리오에 빛을 밝혀준다.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를 연출한 라이언존슨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마지막의 담담한 승리의 모습은 후속작을 예고한다. 외로운 사람들의 도시락 편지
런치박스, 2013년
인도에는 다바왈라라고 하는 이색 직업이 있다. 아침에 가정이나 식당에서 도시락을 거두어 자전거와 기차 등을 이용해 직장인 등에게 배달해 주고, 점심때가 지나면 빈 도시락통을 수거해 다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에는 5000여 명의 다바왈라가 매일20만명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 배달 실수 확률은 1600만 분의1로 하버드대에서 견학을 나왔을 정도다. 영화 <런치박스>는 다바왈라의 실수로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재밌는 발상의 영화다. 30대 주부 일라는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을 기쁘게 해 줄 요량으로 레시피를 배워가며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 보냈는데 정작 도시락은 아내와 사별하고 정년을 한 달 앞둔 회계원 사쟌에게로 배달된다. 평소 도시락 가게에서 만든 도시락을 받아먹던 샤잔은 모처럼 별미 도시락을 맛보곤 싹 비운다. 일라는 저녁에 귀가한 남편이 도시락 맛을 칭찬해 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남편은 스마트폰만 할 뿐 별말이 없다. 도시락이 바뀐 걸 알게 된 알라는 도시락에 편지를 써서 보내고, 그를 받아 본 샤잔은 답장을 하고, 일라는 다시 편지를 쓰고, 샤잔이 또 답장을 하고..이제 도시락통을 보면 편지 쪽지부터 찾게 된 두 사람. 도시락통이 외로움에 지쳐 있는 두 사람에게 기다림의 대상이 됐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결말은 이 영화가 12세 관람가인 점을 감안하고 생각해 보시길. 지난해 4월 스티브 잡스가 앓던 희귀질환인 신경내분비종양으로 53세에 요절한 인도의 대배우 이르판 칸의 말 없는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다. 리테쉬 바트라 감독 심장이 쫄깃쫄깃 해지는 스릴러
호텔 뭄바이, 2019년
<런치 박스>가 정통 인도 영화라면 <호텔 뭄바이>는 세계를 경악시킨 뭄바이 테러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호주 영화진이 만든 작품이다. 2008년 11월 26일 인도 뭄바이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인도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2인 5개 조의 테러범들이 기차역과 관광지, 호텔 등 다중 밀집 지역을 폭탄과 기관총으로 무차별 난사해 195명의 사망자와 35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영화는 ‘뭄바이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객실 560개, 직원 수 1600명의 특급 호텔 ‘타지마할 호텔’에서 벌어진 테러범들의 만행과 투숙객들의 공포, 고객들을 지키려는 호텔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들을 긴박하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당시 실제 뉴스 영상과 화면이교차해 보이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밀도 높은 스릴러물로 전개된다. 영화 속 주요 인물이자 고객들을 구출해 내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호텔 종업원 아르준과 주방장 오베로이 등은 모두 실제 인물들이다. 타지마할 호텔은 2500억원을 쏟아부어 테러 20개월 뒤 2010년 8월 전면 재개장했다. 테러를 배후조정한 파키스탄의 이슬람 과격 단체 수장은 테러 이후 구속과 석방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도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한다. 안소니 마라스 감독 보통 사람들을 위한 힐링
벌새, 2018년
다 자라도 길이가 5cm밖에 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벌새. 1초에 날개짓을 90번이나 해대며 안간힘을 다해 사는 새다. 김일성이 죽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 서울. 대치동에서 떡집을 하는 부모님과 날나리 고교생 언니, 특목고를 지망하는 중3 오빠를 둔 중2 여학생 은희(박지후). 얼굴을 아는 사람이 몇 명쯤 될거냐는 질문에 40명쯤이라고 답하는 정말 보통의 여학생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서울대만 외치고, 엄한 아빠는 공부 좀 한다는 오빠만 챙긴다. 오빠는 화가 나면 은희를 두들겨 패기 일쑤다. 그런 은희에게 세상에 대해 눈을 조금씩 뜨게 해주는 멘토가 나타난다. 한문학원 강사 영지(김새벽). 영지는 만화가가 꿈인 은희에게 스케치북을 선물해 주고 은희는 영지에게“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라고 답장을 쓴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시선으로 2시간 20분 가까이 슴슴한 얘기를 끌어가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컬럼비아대학원 출신의 김보라 감독의 차분한 호흡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2018년 6월 개봉이래 지금까지 국내외 영화제에서 50개 이상의 상을 받았다. 일본 코미디의 소소한 재미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6년
자신의 이름처럼 이렇다 할 존재감 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젊은 주부 스즈메(우에노 주리). 그녀의 이름은 일본어로 참새라는 뜻이다. 출장 간 남편은 매일 전화를 하지만, 자신의 안부보다는 애완 거북이에게 사료를 줬는지를 먼저 챙긴다. 그런 스즈메에게 뜻밖의 일이 생긴다. 계단 100개를 30초 내에 오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에 계단을 죽어라 뛰어오르다 리어카에서 수백 개의 사과가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납작 엎드렸다가 전봇대에 붙어있는 코딱지만한 전단지를 발견한다. 스파이 모집 광고. 일탈에 대한 묘한 설렘으로 그곳을 찾아가고, 500만 엔이라는 거액의 착수금과 함께 지령이 떨어진다. 절대 남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특명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개미들에게 먹이를 주는 게 일과인 노숙자 할머니, 항상 2% 부족한 어중간한 맛의 라면집 사장, 허구한 날 문을 닫고 외국 여행을 떠나는 두부집 아저씨. 그들의 정체는? 느리고 평범하다고 욕하지 마라. 다 한 칼이 있다. 일본식 코미디의 과장된 요소가 곳곳에 묻어난다. 미키 사토시 감독. 대 배우들의 연기 배틀
다우트, 2008년
퓰리쳐상 드라마부문 수상작인 연극을 영화화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와 카톨릭 예배당이 배경의 거의 전부인 저 예산 영화. 그러나 출연진에는 헐리우드의 쟁쟁한 연기파들이 그득하다. <줄리 앤 줄리아>에서 호흡을 맞춘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아담스가 수녀원학교 교장과 교사로, 이제는 고인이 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주임 신부로, 흑인 연기파 여배우 비올라 데이비스가 학부모로 출연한다.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네 사람이 모두 남우주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비올라 데이비스는 단 10분간 출연했음에도 노미네이트됐다.(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세 차례나 노미네이트 된 최초의 흑인 배우로 2017년 <펜스>로 결국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배우들이 좁은 공간에서 가슴을 후벼파는 대사와 눈빛으로 쏘아붙이는 표정으로 한판 연기 배틀을 펼치는 느낌이다. 의심하는 수녀와 의심받는 신부의 팽팽한 갈등에 가슴이 조마조마 해진다. 존 패트릭 센리 감독.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 준다.
나이브스 아웃, 2019년
개봉 시기를 잘못 잡아 흥행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지만, 진흙 속의 보석 같은 수작 추리 스릴러물이다. 2019년 겨울 극장에 걸릴 당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겨울왕국 볼 때가 아닙니다”라는 한 관객의 감상 후기가 이 영화의 수준을 대변해 준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로 큰 부를 쌓은 할란 트롬비가 그의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되면서 경찰과 함께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이 사건 조사에 나선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은 자식들과 며느리 사위, 손주 등 3대에 걸친 직계가족 전부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분위기와 흡사하지만,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은 없다. 숨가쁜 전개, 치밀한 미장센,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미, 흠잡을 데가 없다. 영화는 시작 30분쯤 지나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까 조바심도 나는데, 이후 100분 가까운 시간동안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왜’라는 궁금증과 ‘선과 악’의 결말을 추리소설한 장 한 장 넘기듯 펼쳐 놓는다. 제목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은 ‘칼을 빼들다’는 뜻이니 가족들마다 빼들 칼이 한자루씩 있는 사연이 있지 않겠는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랩 대령역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플러머, <007 시리즈>의 다니엘 크레이그, <캡틴 마블>의 크리스 에반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마르타 카브레라 등 호화 출연진이 탄탄한 시나리오에 빛을 밝혀준다.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를 연출한 라이언존슨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마지막의 담담한 승리의 모습은 후속작을 예고한다. 외로운 사람들의 도시락 편지
런치박스, 2013년
인도에는 다바왈라라고 하는 이색 직업이 있다. 아침에 가정이나 식당에서 도시락을 거두어 자전거와 기차 등을 이용해 직장인 등에게 배달해 주고, 점심때가 지나면 빈 도시락통을 수거해 다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에는 5000여 명의 다바왈라가 매일20만명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 배달 실수 확률은 1600만 분의1로 하버드대에서 견학을 나왔을 정도다. 영화 <런치박스>는 다바왈라의 실수로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재밌는 발상의 영화다. 30대 주부 일라는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을 기쁘게 해 줄 요량으로 레시피를 배워가며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 보냈는데 정작 도시락은 아내와 사별하고 정년을 한 달 앞둔 회계원 사쟌에게로 배달된다. 평소 도시락 가게에서 만든 도시락을 받아먹던 샤잔은 모처럼 별미 도시락을 맛보곤 싹 비운다. 일라는 저녁에 귀가한 남편이 도시락 맛을 칭찬해 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남편은 스마트폰만 할 뿐 별말이 없다. 도시락이 바뀐 걸 알게 된 알라는 도시락에 편지를 써서 보내고, 그를 받아 본 샤잔은 답장을 하고, 일라는 다시 편지를 쓰고, 샤잔이 또 답장을 하고..이제 도시락통을 보면 편지 쪽지부터 찾게 된 두 사람. 도시락통이 외로움에 지쳐 있는 두 사람에게 기다림의 대상이 됐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결말은 이 영화가 12세 관람가인 점을 감안하고 생각해 보시길. 지난해 4월 스티브 잡스가 앓던 희귀질환인 신경내분비종양으로 53세에 요절한 인도의 대배우 이르판 칸의 말 없는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다. 리테쉬 바트라 감독 심장이 쫄깃쫄깃 해지는 스릴러
호텔 뭄바이, 2019년
<런치 박스>가 정통 인도 영화라면 <호텔 뭄바이>는 세계를 경악시킨 뭄바이 테러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호주 영화진이 만든 작품이다. 2008년 11월 26일 인도 뭄바이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인도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2인 5개 조의 테러범들이 기차역과 관광지, 호텔 등 다중 밀집 지역을 폭탄과 기관총으로 무차별 난사해 195명의 사망자와 35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영화는 ‘뭄바이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객실 560개, 직원 수 1600명의 특급 호텔 ‘타지마할 호텔’에서 벌어진 테러범들의 만행과 투숙객들의 공포, 고객들을 지키려는 호텔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들을 긴박하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당시 실제 뉴스 영상과 화면이교차해 보이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밀도 높은 스릴러물로 전개된다. 영화 속 주요 인물이자 고객들을 구출해 내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호텔 종업원 아르준과 주방장 오베로이 등은 모두 실제 인물들이다. 타지마할 호텔은 2500억원을 쏟아부어 테러 20개월 뒤 2010년 8월 전면 재개장했다. 테러를 배후조정한 파키스탄의 이슬람 과격 단체 수장은 테러 이후 구속과 석방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도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한다. 안소니 마라스 감독 보통 사람들을 위한 힐링
벌새, 2018년
다 자라도 길이가 5cm밖에 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벌새. 1초에 날개짓을 90번이나 해대며 안간힘을 다해 사는 새다. 김일성이 죽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 서울. 대치동에서 떡집을 하는 부모님과 날나리 고교생 언니, 특목고를 지망하는 중3 오빠를 둔 중2 여학생 은희(박지후). 얼굴을 아는 사람이 몇 명쯤 될거냐는 질문에 40명쯤이라고 답하는 정말 보통의 여학생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서울대만 외치고, 엄한 아빠는 공부 좀 한다는 오빠만 챙긴다. 오빠는 화가 나면 은희를 두들겨 패기 일쑤다. 그런 은희에게 세상에 대해 눈을 조금씩 뜨게 해주는 멘토가 나타난다. 한문학원 강사 영지(김새벽). 영지는 만화가가 꿈인 은희에게 스케치북을 선물해 주고 은희는 영지에게“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라고 답장을 쓴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시선으로 2시간 20분 가까이 슴슴한 얘기를 끌어가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컬럼비아대학원 출신의 김보라 감독의 차분한 호흡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2018년 6월 개봉이래 지금까지 국내외 영화제에서 50개 이상의 상을 받았다. 일본 코미디의 소소한 재미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6년
자신의 이름처럼 이렇다 할 존재감 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젊은 주부 스즈메(우에노 주리). 그녀의 이름은 일본어로 참새라는 뜻이다. 출장 간 남편은 매일 전화를 하지만, 자신의 안부보다는 애완 거북이에게 사료를 줬는지를 먼저 챙긴다. 그런 스즈메에게 뜻밖의 일이 생긴다. 계단 100개를 30초 내에 오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에 계단을 죽어라 뛰어오르다 리어카에서 수백 개의 사과가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납작 엎드렸다가 전봇대에 붙어있는 코딱지만한 전단지를 발견한다. 스파이 모집 광고. 일탈에 대한 묘한 설렘으로 그곳을 찾아가고, 500만 엔이라는 거액의 착수금과 함께 지령이 떨어진다. 절대 남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특명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개미들에게 먹이를 주는 게 일과인 노숙자 할머니, 항상 2% 부족한 어중간한 맛의 라면집 사장, 허구한 날 문을 닫고 외국 여행을 떠나는 두부집 아저씨. 그들의 정체는? 느리고 평범하다고 욕하지 마라. 다 한 칼이 있다. 일본식 코미디의 과장된 요소가 곳곳에 묻어난다. 미키 사토시 감독. 대 배우들의 연기 배틀
다우트, 2008년
퓰리쳐상 드라마부문 수상작인 연극을 영화화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와 카톨릭 예배당이 배경의 거의 전부인 저 예산 영화. 그러나 출연진에는 헐리우드의 쟁쟁한 연기파들이 그득하다. <줄리 앤 줄리아>에서 호흡을 맞춘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아담스가 수녀원학교 교장과 교사로, 이제는 고인이 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주임 신부로, 흑인 연기파 여배우 비올라 데이비스가 학부모로 출연한다.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네 사람이 모두 남우주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비올라 데이비스는 단 10분간 출연했음에도 노미네이트됐다.(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세 차례나 노미네이트 된 최초의 흑인 배우로 2017년 <펜스>로 결국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배우들이 좁은 공간에서 가슴을 후벼파는 대사와 눈빛으로 쏘아붙이는 표정으로 한판 연기 배틀을 펼치는 느낌이다. 의심하는 수녀와 의심받는 신부의 팽팽한 갈등에 가슴이 조마조마 해진다. 존 패트릭 센리 감독.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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