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오델로’ ‘카르멘’ ‘유리동물원’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하정우가 대학 때 올랐던 연극 공연들이다. 그 시절 이야기를 하자 하정우의 얼굴엔 이제 막 시작하는 배우처럼 설렘과 떨림, 기쁨, 두려움 같은 것들이 묻어나왔다. 오는 5일 개봉하는 영화 ‘클로젯’에서 하정우는 실종된 딸을 찾는 아빠 상원을 연기했다. 미혼인 그에게 새로운 연기 도전이다. 아쉬움이 남는 연기였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그는 겸허히 수용했다.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만은 대학 시절 연극 무대에 오르던 때와 대배우가 된 지금이 다르지 않았다.
10. 이번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하게 된 김광빈 감독과는 15년 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윤종빈) 때부터 인연이 있다.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함께 작업한 소감이 어떤가?
하정우: 나와는 다섯 학번 차이 나는 학교 후배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찍으며 동고동락했는데 당시에 김 감독은 동시녹음을 담당했고 나는 신인이자 백수였다. 이래저래 8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김 감독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들고 윤 감독에게 봐달라고 찾아갔고, 나는 오랜만에 김 감독을 보러 그 자리에 나갔다. 처음에는 이 작품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도울 일이 있다면 도울 생각이었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윤 감독이 이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했고, 당시 ‘공작’의 제작을 준비하던 윤 감독이 시간이나 인력적으로 여유가 없어 둘이서 반반씩 제작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10. 퇴마사 경훈 역을 맡은 김남길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하정우: 윤 감독이 먼저 김남길을 섭외하고 싶다는 얘길 꺼냈다. 나는 그를 한 다리 건너 알고 있었고 윤 감독과 김남길은 좀 더 친분이 있었다. 듣자마자 좋은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김남길이 승낙해줄까 했는데 흔쾌히 해줘서 고마웠다.
10. 연기 호흡은 처음 맞춰봤다. 이제야 만났다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
하정우: 사석에서는 주지훈을 통해 만나기도 했다. 12년 전 고현정 선배 팬미팅에서 처음 봤을 때는 시크한 줄만 알았는데 아니더라. 유쾌하고 발랄하고 털털하고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막내 삼촌 같은 느낌의 친구다. 편안한 자리에서 보니 인성도 좋고 생각도 깊고 매력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남길은 소주 반 잔만 먹어도 만취의 기운을 풍긴다. 그래도 ‘공명 주파수’가 잘 맞다. 술은 잘 못 마셔도 술자리를 즐기는 노하우는 있는 것 같다. 평소보다 2~3배 말을 많이 하고 분위기도 리드한다. 매력쟁이다. 내가 갖지 못한 발랄함을 갖고 있다. 내 발랄함이 보랏빛에 가깝다면 남길은 푸른빛에 가깝다.(웃음)
10. 이번 영화에서 딸을 둔 아빠로 나온다. 미혼인데 아빠 연기가 어렵진 않았나?
하정우: 아쉽다는 평가도 있더라. 복기해봐야 할 부분이다. 아내에게 전적으로 육아를 맡겼던 상원은 아내를 잃은 후 딸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기러기 아빠 같은 콘셉트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보다 남 같다는 느낌으로 캐릭터들을 설정했다. 그래서 관객들이 아빠 같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내가 실제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해보지 못하고 연기한 것으로 인해) 부족함도 있을 것이다.
10. 아이들과 연기하면서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 있나?
하정우: 이미 ‘허삼관’ 때부터 생각해봤다. ‘허삼관’에서 삼락 역의 (전)현석이 그렇게 귀여웠다. 진짜 내 아들이면 얼마나 사랑스럽겠나. 아마 그 마음의 10억 배 쯤 되지 않을까. 내 후배가 그러던데 아내와 부부 싸움을 했을 때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려고 하면 애는 놔두고 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단다.(웃음) 내가 미혼이라 경험하지 못한 것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봐야 알게 되지 않을까.
10. 본명은 김성훈이다. 배우 하정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오기 시작한 후로는 질주를 멈추지 않은 것 같다. 김성훈과 하정우로서 고민은 없나?
하정우: 가장 큰 것은 결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30대 때는 언젠가는 하겠지 그러면서 (일에만 몰두해) 질주하고 달려왔다. 이제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다. 김성훈으로서 내 인생은 있나 싶기도 하다. 10여 년을 영화만 생각하고 영화와 관련된 사람만 만나고, 때 되면 영화 개봉하고 홍보하고, 개봉 후에는 스코어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그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이게 인생 전부가 돼 버린 것 같다.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거라는데 그 인생에서 김성훈으로서 내 일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 안에서 돌파구나 전환점을 찾아야하지 않겠나. 2018년 9월부터 유독 바빴는데 ‘피랍’ 촬영까지 두 달 정도 숨고르기를 하면서 이제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야 할지 돌아봐야겠다.
10. 김성훈이라는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도 같은데.
하정우: 어색하다. 이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하정우라고 알고 김성훈으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모님이 ‘성훈아’라고 불러도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게 가끔 서글프고 짠하다. ‘김성훈은 어디갔지’ 싶어서다. 하정우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지만 그 뿌리가 된 건 김성훈이지 않나. 한 사람이 두 개의 이름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김성훈이 양보하고 희생하고, 또 많은 걸 보상 받지 못한 것 같다.
10. 대학 시절에 연극 무대에 오르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어떻게 다른가?
하정우: 2003년 연극 ‘오델로’를 할 때는 순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잘 소화해낼까,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칠 수 있을까 생각뿐이었다. 지금하고 있는 상업영화들에는 ‘오델로’보다 몇 백배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고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고 그 안에서 엄청난 협업들이 이뤄진다. 보이지 않는 경쟁과 힘겨루기를 뚫고 아무렇지 않게 작업에 몰두해야 할 때도 있다. ‘오델로’ 때처럼 마음 하나만으로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때의 마음에서 진액이라도 뽑아내 지켜내기 위해 애써야할 것 같다. 피카소가 죽기 전 마치 아이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이걸 찾으려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10. ‘오델로’가 당신에게 특별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하정우: ‘오델로’를 하기로 했던 당시 사실 영화 ‘실미도’에 부대원 중 한 명 역할로 캐스팅됐다. ‘실미도’를 하느냐 ‘오델로’를 하느냐 고민이었는데 ‘오델로’를 택했다. 상업영화 출연도 의미 있지만 배우 지망생으로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졸업해버리면 더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울 기회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오델로’는 연극으로는 내 인생 작품 중 하나다. 삭발하고 강의실에 칼 차고 다니기도 하고 또라이 같은 짓도 많이 했다.(웃음) 다들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다.
10.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지 않았나?
하정우: 그렇다. 예전에는 다 내 실력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면서도 무서운 일이다. 2005년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내가 운이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왔구나 싶다. 앞으로 15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지금까지처럼 전력 질주하기보다 찬찬히 걸어가면서 주위도 둘러보고 실수도 덜하고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 한 없이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과 교만, 자만, 이제는 그 단어들이 피부에 와닿는다.
10. 직접 그린 그림이 영화 속 소품으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딸이 낙서처럼 그린 그림인데 추상적이고 거칠고 날카로운 느낌을 풍긴다.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하정우: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그림체다. 바스키아가 그런 그림체를 갖고 있다. 마티스도 그런 그림을 그렸고 피카소도 말년에는 그렇게 그렸다. 김 감독님, 미술감독님과 소품으로 쓰일 그림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런 그림이면 어떠냐’고 슥슥 낙서를 해서 보여줬다. 너무 좋다면서 김 감독이 내게 ‘몇 장만 더 그려달라’고 했고, 그 중에서 채택된 거다.
10. 영화 작업에 미술로 참여하거나 세트 디자인 같은 데는 관심 없나?
하정우: 어유, 아니다. 가끔 미술 감독님들이 필요하다면 돕거나 친한 작가들을 연결해주는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알고 지내는 신인 작가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한편으로 생각하고 있다.
10. 미술 작품 전시회는 또 안 하나?
하정우: 올해는 해외 스케줄이 계속돼 못할 것 같다. 지난해 여름부터 작업을 통 못했다. 압구정의 작업실도 계약 기간이 끝났다. 괜히 월세 내면서 1년간 비워둘 순 없으니 2월 말에 짐을 빼야한다.(웃음)
10. 해외로 나가서 촬영할 때 현지 적응은 잘 하는 편인가?
하정우: 음식만 맞다면 잘 적응한다. 그런데 모로코는 이슬람국가라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고 하니… 먼저 가 있는 촬영팀이 있는데 즉석밥만 먹는다더라. 나는 고춧가루부터 새우젓까지 다 싸가서 김장을 하려고 한다. 상상 이상의 것들을 다 가져갈 거다.(웃음)
10. 올해 목표는?
하정우: 모로코와 도미니카 공화국, 잘 모르는 지역으로 가는 거니 무탈하게 작품을 끝내는 것, 그거 하나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10. 이번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하게 된 김광빈 감독과는 15년 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윤종빈) 때부터 인연이 있다.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함께 작업한 소감이 어떤가?
하정우: 나와는 다섯 학번 차이 나는 학교 후배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찍으며 동고동락했는데 당시에 김 감독은 동시녹음을 담당했고 나는 신인이자 백수였다. 이래저래 8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김 감독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들고 윤 감독에게 봐달라고 찾아갔고, 나는 오랜만에 김 감독을 보러 그 자리에 나갔다. 처음에는 이 작품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도울 일이 있다면 도울 생각이었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윤 감독이 이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했고, 당시 ‘공작’의 제작을 준비하던 윤 감독이 시간이나 인력적으로 여유가 없어 둘이서 반반씩 제작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10. 퇴마사 경훈 역을 맡은 김남길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하정우: 윤 감독이 먼저 김남길을 섭외하고 싶다는 얘길 꺼냈다. 나는 그를 한 다리 건너 알고 있었고 윤 감독과 김남길은 좀 더 친분이 있었다. 듣자마자 좋은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김남길이 승낙해줄까 했는데 흔쾌히 해줘서 고마웠다.
10. 연기 호흡은 처음 맞춰봤다. 이제야 만났다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
하정우: 사석에서는 주지훈을 통해 만나기도 했다. 12년 전 고현정 선배 팬미팅에서 처음 봤을 때는 시크한 줄만 알았는데 아니더라. 유쾌하고 발랄하고 털털하고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막내 삼촌 같은 느낌의 친구다. 편안한 자리에서 보니 인성도 좋고 생각도 깊고 매력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남길은 소주 반 잔만 먹어도 만취의 기운을 풍긴다. 그래도 ‘공명 주파수’가 잘 맞다. 술은 잘 못 마셔도 술자리를 즐기는 노하우는 있는 것 같다. 평소보다 2~3배 말을 많이 하고 분위기도 리드한다. 매력쟁이다. 내가 갖지 못한 발랄함을 갖고 있다. 내 발랄함이 보랏빛에 가깝다면 남길은 푸른빛에 가깝다.(웃음)
하정우: 아쉽다는 평가도 있더라. 복기해봐야 할 부분이다. 아내에게 전적으로 육아를 맡겼던 상원은 아내를 잃은 후 딸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기러기 아빠 같은 콘셉트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보다 남 같다는 느낌으로 캐릭터들을 설정했다. 그래서 관객들이 아빠 같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내가 실제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해보지 못하고 연기한 것으로 인해) 부족함도 있을 것이다.
10. 아이들과 연기하면서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 있나?
하정우: 이미 ‘허삼관’ 때부터 생각해봤다. ‘허삼관’에서 삼락 역의 (전)현석이 그렇게 귀여웠다. 진짜 내 아들이면 얼마나 사랑스럽겠나. 아마 그 마음의 10억 배 쯤 되지 않을까. 내 후배가 그러던데 아내와 부부 싸움을 했을 때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려고 하면 애는 놔두고 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단다.(웃음) 내가 미혼이라 경험하지 못한 것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봐야 알게 되지 않을까.
10. 본명은 김성훈이다. 배우 하정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오기 시작한 후로는 질주를 멈추지 않은 것 같다. 김성훈과 하정우로서 고민은 없나?
하정우: 가장 큰 것은 결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30대 때는 언젠가는 하겠지 그러면서 (일에만 몰두해) 질주하고 달려왔다. 이제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다. 김성훈으로서 내 인생은 있나 싶기도 하다. 10여 년을 영화만 생각하고 영화와 관련된 사람만 만나고, 때 되면 영화 개봉하고 홍보하고, 개봉 후에는 스코어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그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이게 인생 전부가 돼 버린 것 같다.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거라는데 그 인생에서 김성훈으로서 내 일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 안에서 돌파구나 전환점을 찾아야하지 않겠나. 2018년 9월부터 유독 바빴는데 ‘피랍’ 촬영까지 두 달 정도 숨고르기를 하면서 이제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야 할지 돌아봐야겠다.
10. 김성훈이라는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도 같은데.
하정우: 어색하다. 이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하정우라고 알고 김성훈으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모님이 ‘성훈아’라고 불러도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게 가끔 서글프고 짠하다. ‘김성훈은 어디갔지’ 싶어서다. 하정우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지만 그 뿌리가 된 건 김성훈이지 않나. 한 사람이 두 개의 이름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김성훈이 양보하고 희생하고, 또 많은 걸 보상 받지 못한 것 같다.
하정우: 2003년 연극 ‘오델로’를 할 때는 순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잘 소화해낼까,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칠 수 있을까 생각뿐이었다. 지금하고 있는 상업영화들에는 ‘오델로’보다 몇 백배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고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고 그 안에서 엄청난 협업들이 이뤄진다. 보이지 않는 경쟁과 힘겨루기를 뚫고 아무렇지 않게 작업에 몰두해야 할 때도 있다. ‘오델로’ 때처럼 마음 하나만으로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때의 마음에서 진액이라도 뽑아내 지켜내기 위해 애써야할 것 같다. 피카소가 죽기 전 마치 아이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이걸 찾으려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10. ‘오델로’가 당신에게 특별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하정우: ‘오델로’를 하기로 했던 당시 사실 영화 ‘실미도’에 부대원 중 한 명 역할로 캐스팅됐다. ‘실미도’를 하느냐 ‘오델로’를 하느냐 고민이었는데 ‘오델로’를 택했다. 상업영화 출연도 의미 있지만 배우 지망생으로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졸업해버리면 더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울 기회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오델로’는 연극으로는 내 인생 작품 중 하나다. 삭발하고 강의실에 칼 차고 다니기도 하고 또라이 같은 짓도 많이 했다.(웃음) 다들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다.
10.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지 않았나?
하정우: 그렇다. 예전에는 다 내 실력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면서도 무서운 일이다. 2005년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내가 운이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왔구나 싶다. 앞으로 15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지금까지처럼 전력 질주하기보다 찬찬히 걸어가면서 주위도 둘러보고 실수도 덜하고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 한 없이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과 교만, 자만, 이제는 그 단어들이 피부에 와닿는다.
하정우: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그림체다. 바스키아가 그런 그림체를 갖고 있다. 마티스도 그런 그림을 그렸고 피카소도 말년에는 그렇게 그렸다. 김 감독님, 미술감독님과 소품으로 쓰일 그림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런 그림이면 어떠냐’고 슥슥 낙서를 해서 보여줬다. 너무 좋다면서 김 감독이 내게 ‘몇 장만 더 그려달라’고 했고, 그 중에서 채택된 거다.
10. 영화 작업에 미술로 참여하거나 세트 디자인 같은 데는 관심 없나?
하정우: 어유, 아니다. 가끔 미술 감독님들이 필요하다면 돕거나 친한 작가들을 연결해주는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알고 지내는 신인 작가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한편으로 생각하고 있다.
10. 미술 작품 전시회는 또 안 하나?
하정우: 올해는 해외 스케줄이 계속돼 못할 것 같다. 지난해 여름부터 작업을 통 못했다. 압구정의 작업실도 계약 기간이 끝났다. 괜히 월세 내면서 1년간 비워둘 순 없으니 2월 말에 짐을 빼야한다.(웃음)
10. 해외로 나가서 촬영할 때 현지 적응은 잘 하는 편인가?
하정우: 음식만 맞다면 잘 적응한다. 그런데 모로코는 이슬람국가라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고 하니… 먼저 가 있는 촬영팀이 있는데 즉석밥만 먹는다더라. 나는 고춧가루부터 새우젓까지 다 싸가서 김장을 하려고 한다. 상상 이상의 것들을 다 가져갈 거다.(웃음)
10. 올해 목표는?
하정우: 모로코와 도미니카 공화국, 잘 모르는 지역으로 가는 거니 무탈하게 작품을 끝내는 것, 그거 하나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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