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치열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팀의 우승이었다. 아, 울랄라 세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19일에 방송된 tvN 첫 시즌 마지막 방송에서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로 이뤄진 3인조 옹달샘이 승점 누적 1위를 기록하며 상금 1억 원을 차지했다. 팀의 완성도와 대중적 인지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울랄라 세션이 매주 최고점을 받았다면 옹달샘은 의 버스커버스커와 투개월인 아메리카노와 아3인에게도 종종 밀렸고, ‘언더독’이던 꽃등심이 1위를 차지하는 기적 같은 순간도 벌어졌다. 유세윤 같은 특급 플레이어를 데려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개그맨들로 팀을 짜서 그에 맞먹는 활약을 펼치게 하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에서 윤종신이 그토록 강조하던 프로듀싱의 중요함이란 이런 것이리라. KBS 를 이끌던 스타 PD 출신이라는 외형적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를 런칭한 연출자로서의 김석현 PD가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부침이 심한 이곳에서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는 내공이 여기에 있다.마지막 방송에서 결국 옹달샘이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지만 과정이 빤하진 않았다.
김석현 PD: 우리도 어차피 코너를 아무리 재밌게 만들어도 같은 다른 공개 코미디와 큰 차이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어떤 드라마가 생기면 메리트가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생겼다. 마지막 녹화 땐 비포애프터 팀의 윤택이 처음으로 5위 안에 들며 펑펑 울었다. 한 계단 오르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경쟁이라지만 자유방임으로 둘 수는 없다” │김석현 PD “지금이 <개그콘서트> 때보다는 재밌다”" />
특히 새 코너 ‘내겐 너무 벅찬 그녀’의 선전으로 시즌 후반부턴 아메리카노가 확실히 눈길을 끌었다.
김석현 PD: 공들여 기획한 팀이다. 방송 3사 여성 연기자들을 대표하는 게 누가 있을까 해서 방송 가능한 사람들을 모아 만들었다. 셋이 친한 사이도 아니고 기획사도 다른데, 그런 게 ‘나는 여배우다’ 코너를 하던 1~4회까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출신 안영미는 객석을 향해 말하고, 비공개 코미디에 익숙한 김미려는 연기자를 보고 말하고, 정주리는 스타일로 객석과 장난을 치려했다. 개별적으로는 정말 잘하는데 서로의 호흡이 다르니까 콩트 전체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다. 재미없는 건 아니었지만 옹달샘의 대항마를 만들려고 코너를 바꿨다.
코너를 바꾸면서 정주리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김석현 PD: 역할 분담이다. 3명 다 맞선녀로 나오면 지겨울 거다. 안영미 같은 캐릭터 셋이 나오면 재밌을 거 같나. 정주리가 브릿지 역할을 하는 거지. 정주리 연기를 안영미가 못하고 김미려가 못한다. 분량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박지성이 골을 못 넣는다고 축구 못한다고 하진 않지 않나.
그런 걸 조합하는 게 코미디 프로그램 PD의 역할인데.
김석현 PD: 시즌 초반, 처음 일하는 친구들과는 소통이 잘 안됐다. 개그맨들 같은 경우에는 처음 만난 PD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겠다, 싶어서 튀는 걸 하는데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코너의 짜임새니까. 내 원칙이 있는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튀는 친구에게 개별적으론 재밌지만 코너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 모두가 죽으니 그보다는 이 역할을 하라고 하면 오해를 할 수 있지. 이 사람은 나를 무시하나? 나 역시 나는 전체를 보고 얘기하는데 왜 쟤는 자기 얘기만 하는 거지 싶고. 그런 기간이 몇 주 이어지다가 서로를 알아가며 선순환 구조가 된 것 같다. 아, 저 친구는 이런 걸 잘하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주눅 들게 했구나. 축구팀 감독과 비슷한 것 같다. 잘하는 포지션에 선수를 배치해야 하는데 아직 선수를 잘 모르니까 머릿속으로만 팀을 구성했지.
그러다 새로운 역할 분담을 주면서 확실히 코너들이 좋아졌다.
김석현 PD: 꽃등심 팀의 경우 전환규가 이국주에게 완전히 깔아주기로 하면서 코너가 잘됐다. 얘 한 번 웃기고, 쟤 한 번 웃기고 이런 식으로는 코너가 안 되니까. 같은 시스템은 한 번 올려보고 아니면 캐스팅 바꿔서 다시 올려볼 수 있다. ‘소비자 고발’ 같은 경우 황현희도 해보고, 유세윤도 해보고, 장동민도 해봤다가 황현희가 고정이 된 거다. 그런데 여기는 팀을 정하면 무조건 방송 나가야 하니 어렵지.
본인이 프로듀싱을 잘해주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나.
김석현 PD: 믿음이라기보다는 숙제 같은 거지. 이번 주에는 이거, 다음 주에는 저거. 처음에는 기술적인 실수도 있었다. 카메라 감독님도 공개 코미디는 처음이시고, 음향 담당하는 분도 음향을 4, 5군데 분리해야 하는 걸 모르셨으니까. 그런 자잘한 문제부터 매주 이번에는 이 코너 신경 써야지 하는 식으로 고쳐나갔다. 연기 기반은 좋은데 개그를 짜는 게 잘게 느껴지는 팀들이 있었다. 계속 잽만 날리는. 나는 이렇게 저렇게 했다가 센 한 방 날리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 맥을 잡아줬지.
팀끼리의 경쟁인 만큼 팀을 봐줄 때 공정성이란 부분도 신경 써야 했을 것 같다.
김석현 PD: 그 팀에서 뽑아낼 수 있는 건 최대한 뽑아내주는 거지. 1위를 달리는 옹달샘에게서 뽑을 수 있는 만큼 뽑고, 최하위 팀은 얘들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보고. 꼴등이 1등 하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프로그램 전체 퀄리티를 떨어뜨리면 안 되니까. 동네 학예회처럼 아무 거나 올릴 수는 없고. 경쟁이라지만 자유방임으로 둘 수는 없다.
“시즌 2에서는 상위권 팀끼리 파이널 배틀을 해볼까” │김석현 PD “지금이 <개그콘서트> 때보다는 재밌다”" />
는 자유방임의 대척점에 있기로 유명한데.
김석현 PD: 코미디 프로그램을 하기에는 최적의 시스템이지. 하지만 하는 애들이 힘드니까. 내가 좋아하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나는 기본적인 약속만 지키라고 한다. 금요일에는 가안을 내고, 월요일에는 어느 정도 보여주는 식으로 일주일에 어느 정도 시간만 투자한다면 다른 프로그램 나가는 것도 상관없다. 그래서 연출자가 죽어난다. (웃음) 모든 스케줄을 연기자들에게 맞춰야 하니까. 새벽 1시에 회의하자고 모이면 가야하고. 사생활이 없어진다.
시스템 외에도 크리에이터로서 KBS 바깥에서 만들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
김석현 PD: ‘타짱’을 연출하며 공영방송의 한계를 느꼈다. 첫 녹화 뜨고 8개월 동안 회사를 다닐래, 말래 그랬다. 네가 KBS PD라는 게 창피하다고. 그거 끝나고 연출 정지까지 먹을 뻔했다가 로 돌아갔는데 일부러 식자들이나 시민단체가 좋아할만한 코너를 했다.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두분토론’, ‘뿌레땅뿌르국’, 소위 풍자 개그라고 할 수 있는. 나를 속인 거지. 사실 슬랩스틱이나 하드코어를 짜는 게 훨씬 어려운데 많은 이들은 그런 풍자 개그가 더 하이개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밖에 나가게 되면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의 는 처음에 구상하던 모습과 가깝나.
김석현 PD: 처음에는 공개 코미디를 원하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원했다. 익숙한 걸 바라니까. 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룰을 고민해서 나온 게 리그제다.
방청객 투표로 승점을 부여하는데, 그것과 연출자로서 느끼는 순위는 거의 같던가.
김석현 PD: 현장 반응은 거의 100퍼센트 맞다. 다만 그것과 시청자가 느끼는 건 다를 거다. 재밌게 본 연극을 TV로 보면 1분도 못 견디고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만약 방청객 투표가 아니면 시청자가 보기 좋은, 앉아서 하는 코너를 많이 했을 거다. 의 ‘남보원’이나 ‘두분토론’ 같은. 그런 건 생각보다 현장 반응이 안 높다. 우리끼리 그런 얘기 많이 한다. 녹화를 여기서 하면 시중에서 인기 많은 코너와 투표 순위는 많이 다를 거라고.
하지만 시청률을 높이려면 그런 코너가 있어야 한다.
김석현 PD: 그게 제일 고민이다. 분명히 그런 걸 안고 가야 한다는 걸 나도 알고 경험 많고 영리한 연기자들도 안다. 본인들이 1등을 못해도 그런 코너를 안고 가야 한다는 걸. 우선 이번 시즌에선 프로그램이 이런 방식이란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것도 나름의 보는 재미가 있는 걸 보여줬으니 시즌 2부터는 보기 편한 코너도 만들어야지.
혹 시즌 1과 시스템적으로 달라지는 부분도 있나.
김석현 PD: 한 주 한 주 긴박감을 주기 위해 매주 우승 포상을 주려고 한다. 그리고 시즌 2는 15회로 계획하는데 10회까진 적립된 승점을 가령 52점이면 5200만 원 받아서 털고, 나머지 5회부턴 제로 세팅으로 상위권 팀끼리 파이널 배틀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에서도 상금 1억이 개그맨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을 텐데.
김석현 PD: 비전을 더 보여주려면 시청률도 더 오르고 더 주목 받아야 한다. 지금 에서 비교적 인기가 적은 친구들이라도 로 옮기는 건 꺼릴 거다. 그쪽은 시청률 20퍼센트 프로그램 아닌가. 여기 나와서도 CF 많이 찍고 인기도 얻고 덤으로 상금도 받아야 비전이라 할 수 있지. 아직은 부족하다.
“2, 3시즌부터는 정말 우리가 빅리그가 될 것” │김석현 PD “지금이 <개그콘서트> 때보다는 재밌다”" /> 그러려면 정말 ‘빅리그’가 되어야 한다.
김석현 PD: 2, 3시즌부터는 말만 아니라 정말 우리가 빅리그가 될 거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 프로그램 못 나오는 친구들이 다른 방송 나오는 기분으로 만들 거다.
축구도 야구도 빅리그가 되려면 스타플레이어와 유망주 육성이 필요하다.
김석현 PD: 최효종, 김준호, 송준근, 박영진, 이런 애들 오면 당연히 좋지. 하지만 강하게 내가 책임질 테니 옮기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시청자들이야 그런 에이스들이 다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지. (웃음) 새 피 수혈은 어쨌든 당연히 해야 한다. 변기수, 허안나, 윤형빈, 다 공채 전에 대학로에서 잘하던 친구들 데려온 건데, 그런 식으로 좋은 신인이 있는지 잘 찾아봐야지. 코너를 싹 다 바꿔야 하니까.
다 바꿀 건가. 옹달샘이나 아메리카노는 같으면 몇 회가 아니라 몇 달 단위로 갈 코너였는데.
김석현 PD: 시즌제로 하니까 진도가 빨리 나간다. 선수들은 지난주에 이만큼 했으니까 이번 주에는 이 정도로만 바꾸자고 한다. 가령 옹달샘의 ‘기막힌 서커스’는 최소 6개월은 갈 수 있다. 5개월 정도 동물 바꿔가며 하다가 다했다 싶으면 하이브리드로 개새, 빙닭, 개빙닭 같은 걸로 객석 반응 없어질까 싶으면 새로운 걸 하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는 제일 센 아이템으로 1등 한 번 해야 하니까 금방 없어진다. 꽃등심의 ‘불만고발’도 6개월은 갈 코너인데 4주 만에 아이템이 없어졌다.
매주 우승 포상이 있다면 그런 양상은 더 심해질 텐데.
김석현 PD: 앞으로는 더 빨라질 거다. 우리 프로그램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의 속도감이 느리게 느껴질 거다. 과 의 속도감이 완전 다른 것처럼. 다만 그렇게 쏟아내면 그만큼 보상해줘야지.
그런 그림을 그리기에 지금의 새 환경은 어떤가.
김석현 PD: 제작 시설이나 테크닉은 KBS가 최고지. 인프라에서는 상대가 안 되는데 여기서는 성과만 내면 터치를 안 하는 면이 있다. 다만 KBS에 비해 방송통신위원회 눈치를 더 보게 되니 어떤 부분에선 더 자유롭지 못한 면도 있다. 직관적인 웃음을 시도하긴 편하지만.
종편 혹은 CJ E&M으로 옮긴 공중파 예능 PD 중 거의 처음으로 결과물을 보여줬는데 대중 혹은 매체의 반응도 신경 쓰였을 것 같다.
김석현 PD: 신경 안 쓰일 수는 없지. 첫 ‘빳다’니까. 망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첫 시즌에는 면피라도 하자고 생각했다. 예상보다는 잘됐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개그맨도 그렇고 기획사 사장님들도 그렇고 하다못해 소품 하는 친구들 비롯해서 내가 여태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도 잘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이런 분들 때문에 열심히 해서 꼭 보답해야지 싶다.
본인도 새 비전을 찾아 왔는데 스스로는 일하는 게 재밌나.
김석현 PD: 때보다는 재밌다.
되게 재밌는 건 아닌가보다. (웃음)
김석현 PD: 솔직히 나는 일하는 걸 되게 싫어한다. (웃음) 워커홀릭과는 거리가 멀다. 공부하는 것도 싫어했고 회사 다니는 것도 싫고. 그런데도 어느 순간 낄낄 거리고 하는 건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고 싶다고 야구 선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래서 즐겁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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