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 라디오를 알게 됐습니다. 음악을 듣게 됐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알려준 사람이 라디오에서 떠난다고 합니다. 결국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죠. 다만, 이 말만은 전해주고 싶네요. Thank you.
– 초동에서 청취자 K
유희열
유희열
김형룡: 유희열의 사촌형. 앨범을 준비하던 중 열다섯 살 때 쓴 유희열의 첫 곡을 가져갔다. 유치원 때 합주부에서 큰 북을 치며 행복감을 느꼈고, 각자 바쁜 가족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라디오로 음악을 들었던 유년시절을 보냈으니 음악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유희열은 라디오를 통해 아바, ELO, 비지스, 양희은, 김민기 등을 들었다. 당시 유희열은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가슴엔 언제나 슬픔이 가득”했다고. 혼자서 라디오를 듣고 동화책을 읽고, 동네 형들과 어울리면서 부터 까지 보던 감수성 풍부하고 조숙하던 아이.

김창완: 초등학교 6학년 때 혼자 기타를 배운 유희열은 중학교 1학년 때 뮤지션 김창완의 공연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이후 유희열은 고 2까지 밴드 활동을 했고, 형은 그에게 “너는 아무래도 딴따라가 돼야 할 것 같다”며 음악을 배울 것을 권유한다. 그는 고 3 때 피아노를 시작, 1년여 만에 “서울대 시험을 칠 수 있을 것 같다”는 평가를 듣는다. 가장 대중적인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만들던 10대가 클래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훗날 그가 한 앨범에 영국에서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곡들과 술에 대한 사랑을 담은 ‘애주가’를 동시에 담을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김장훈: 유희열이 대학시절 만난 새로운 동네 형. 첫 만남 당시 유희열에게 “내가 전인권보다 잘해”라고 말해 유희열이 속으로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당시 김장훈이 자신을 가둔 채 똑같은 곡을 150시간동안 치게 했다고 주장하지만, 김장훈은 걸핏하면 “난 리베로야”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는 유희열 때문에 속이 썩었다고. 클래식 전공자가 무명 밴드라는 대중음악계의 정글로 빠진 셈. 하지만 유희열은 이 동네 키 큰 형을 통해 조동익 등의 뮤지션들을 알게 됐고, 당시 그의 여자친구가 포스터에 상금이 3백만 원이라는 걸 보고 “상금타면 맛있는 거 사먹자”라는 말을 하자 “내가 나가면 또 타지”라고 말한 뒤 “나의 음악적인 등대”라던 유재하의 이름을 건 그 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그는 상금으로 음악하는 형들 술 사주고 여자친구 선물 사고, 남은 돈으로 악기를 샀다고. 형들하고 잘 놀고 여자에게 잘 해주고 그 와중에 음악은 꼭 챙겼다. 괜히 라디오 진행을 잘 하는 게 아니다.

윤정오: 유희열의 프로젝트 TOY를 함께 시작한 멤버. TOY라는 이름은 두 사람 성의 이니셜을 딴 ‘Two Y’를 ‘2Y’로, 다시 Two를 발음 나는 대로 TO라고 쓴 것에 Y를 붙인 것이다. 유희열은 “음악을 하며 살아가는 태도”를 배웠다는 조동진, 장필순, 김광민 등이 소속된 하나뮤직에서 데뷔 앨범을 만들었고, 그 앨범에는 조동익, 장필순, 조규찬, 이병우, 김광민 등이 참여했다. TOY의 첫 번째 앨범은 당시 공일오비의 도시적 감각과 김현철의 감수성이 결합한듯했고, 여기에 도시의 밤을 거의 그림처럼 펼쳐놓는 감성이 더해졌다. 조규찬이 부른 ‘내 마음속에’는 R&B와 발라드의 경계를 오가며 열정적이기 보다는 차분하게, 그리고 리듬 프로그래밍과 신디사이저로 침잠하는 밤의 독백을 펼쳐 놓는다. 한국에서 도시 문화가 정착한 시절, ‘세검정’을 소재로 곡을 쓰고 ‘조용한 카페에서 마주앉아 말을 한 번만 해볼 수 있다면’이라는 가사를 쓰는, 그리고 어색해서 오그라들 지경인 랩도 하는 차가운 도시남자의 등장.

이승환: 유희열에게 못할 짓 많이 시킨 뮤지션. 4집부터 7집에 걸쳐 디스코(‘부기우기’), 록(‘변해가는 그대’), 기타 한대로 시작해 수백 명의 코러스로 끝나는 초 거대 발라드(‘가족’), 동양음악(‘당부’), 스윙재즈(‘못 말리는 봉팔이’) 등을 작/편곡(이승환과의 공동작곡 포함)하도록 했으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유희열이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다. 너무나 완벽하다”고 할 만큼 음악에 모든 걸 쏟아 붓는 이승환과의 작업은 그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했고, TOY 3집 이후 클래식, 일렉트로니카, 라틴, 재즈 등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됐을 듯 하다. 또한 이승환은 유희열의 그림을 모아 이라는 책을 내게도 했다. 윤종신은 곡이 나올 때까지 그를 의자에 묶어두고 재촉했다는 소문 속에서 ‘환생’을 비롯, 앨범 의 프로듀싱을 유희열에게 맡겼다. 대중적이지만 어디로 방향이 튈지 모른다. 조동익부터 이승환까지 함께 작업하며 수많은 음악을 하도록 만들었다. 선대 고수들의 내공을 이어받아 “광기어린 천재”(윤종신)이거나 “선비와 양아치의 감성이 공존하는 뮤지션”(이승환)이 탄생했다.

팻 매스니: 유희열이 존경하는 뮤지션. MBC < FM 음악도시 >를 진행하며 그의 음악을 끊임없이 소개했다.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을 시작했고, 라디오가 “음악활동에서도 중요하고 유일한 창구”라던 유희열은 < FM 음악도시 >에서 “너무 자기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단점이라고 할 만큼 고정 청취자들과 가깝게 대화했고, 자신의 감수성과 취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분모는 여유”라고 말했던 그는 진지하게 음악을 소개하는 대신 농담을 섞고, 대중적인 곡과 팻 매스니를 함께 소개하는 여유가 있었다. 다가서기 쉽고, 유머가 풍부하지만 팻 매스니 같은 뮤지션에 대한 존경은 놓지 않는 진지함. TOY가 아닌 유희열의 매력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모아보세요. 그것에 조금씩 애정과 관심을 기울인다면 당신 앞에 새로운 익숙함이 나타납니다”라는 유희열의 말은 그가 음악과 대중을 대하는 방식일 것이다.

윤상: 유희열이 에서 ‘떠나는 날의 흥분’을 통해 오마주를 했을 만큼 존경하는 뮤지션. TOY < A night in seoul >의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의 보컬로도 참여했다. 은 연주곡 위주로, 유희열이 하루 일이 끝난 뒤 작업한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책을 함께 냈다. 이 앨범이자 책은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또한 일렉트로니카가 등장하고, 앨범 전체가 밤의 풍경을 그린 듯한 < A Night in seoul >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는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여유 있게 하는 것을 선택했고, 음악과 라디오를 통해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인 탄탄한 팬층은 그의 작품들을 소비했다.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독특한 포지션. 이후 유희열은 < Walk around the corner >로 사진집이자 앨범이며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작품집을 내놓았다. KBSFM 과 KBS 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김연우: 본명 김학철. 현재 이름은 유희열이 지어줬다. 그는 “자주 가던 카페 이름”으로 지었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TOY의 ‘여전히 아름다운지’ 등 다양한 곡에 객원 보컬로 참여했다. 유희열은 불안해서 매력적이라고 말해야할 만큼 평범한 보컬이 아니기에 객원 보컬을 쓰지 않으면 정규 앨범을 낼 수 없는데, 보컬의 색깔을 따지기 전에 “이 사람이 이 노래를 얼마만큼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고. 그래서 그의 객원보컬은 상당수 친한 사람들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녹음할 때 “창피해서” 불도 다 끄고 악보만 비추고, 허름한 옷에 맨발 차림이라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곡은 심지어 여자 보컬까지 자신이 녹음해 객원 보컬에게 들려주는데, 가수들이 “이게 무슨 노래지?”라고 하면 “노래는 절대 신경 쓰지 말고 느낌만 보라”고 말한다고.

조규찬: 유희열의 첫 앨범부터 여러 곡에 참여한 뮤지션. 특히 형제인 조규만, 조규천과 함께한 ‘Complex’는 TOY의 곡 중 꼭 들어봐야할 걸작. 복잡하고 어려운 화음이란 화음은 다 쓰는 멜로디에 복잡한 전개의 곡을 세 명의 형제가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난해한 듯 하면서도 보컬의 목소리가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곡이 탄생했다. ‘Complex’가 실린 < Fermata >에는 이 밖에도 윤상에게 재즈 보컬을 안기고, 음역대가 그리 넓지 않은 보컬리스트 조원선에게 스케일이 큰 발라드를 부르게 했으며, 라틴, 일렉트로니카, 발라드가 한 앨범 안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확인시켜주듯 < Fermata >의 모든 곡들에는 명확한 멜로디가 있었고, 곡마다 다른 장르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가 전작에 비해 보다 여유로워지고 담담한 감성안에 통합 돼 있었다. 사운드의 스케일로는 블록버스터였지만, 음악이 표현하는 정서는 ‘소박했던 행복했던’이라고 할 수 있었던 앨범. 이 가장 야심차면서도 가장 여유로운 앨범을 낸 뒤, 유희열은 5년간 앨범을 내지 않는다.

리아: 유희열의 딸. 그 전까지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었다던 유희열은 자신과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팬들에게 “오빠 간다, 오빠 그만 잊어라, 오빤 낙엽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결혼했다. 유희열은 결혼 후 1년여 만에 “내가 유일하게 제대로 만든 결과물” 리아를 가졌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동안 “가정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딸을 “하나의 인격체, 내가 대하는 또다른 상대”처럼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생각한 바를 사기 치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한 걸음 하나를 내딛었으면”하는 생각을 하며 앨범 작업을 해 나간다.

김태훈: 5년만의 앨범 < Thank you >의 공동 프로듀서. 평론가 김태훈과는 동명이인이다. 유희열은 < Thank you >를 만들면서 피아노로 작업하는 것을 최대한 배제했고, 드럼 세션을 쓰는 대신 일일이 프로그램으로 찍어냈다. 관습을 버리고 리듬 하나까지 일일이 김태훈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작업 방식은 오랜 작업 시간을 소요했지만 대신 유희열이 원하는 음악을 위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는 달’, ‘그대, 모든 짐은 내게’ 같은 곡은 그 통제된 상황에서 완벽에 가까울 만큼 정확한 공간과 상황을 통제해낸다. 전작들을 관통하는 것이 유희열 특유의 정서였다면, < Thank you >는 자신의 음악적 의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느냐는 승부와도 같았다. 장르적 다양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대신 안으로 보다 치밀해졌고,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맑음’처럼 반복적인 멜로디만으로 기승전결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보여주기도 한다. 듣기는 편하지만 만들기는 치밀하다. 고수의 꼿꼿함, 그리고 여유.

정재형: 의 고정 게스트. 을 통해 처음에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척 했지만 유희열을 비롯한 모든 뮤지션들을 ‘조무래기’로 보는 자신감 충만한 멘트와 기이한 웃음소리로 ‘가래요정’이라는 이상한 별명을 얻으면서 예능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은 유희열 특유의 유머를 얹어 전세계의 ‘모던 음악’을 소개하고, 국내 인디밴드를 발굴하며, 김장훈, 유희열, 이적 등 1990년대를 수놓은 뮤지션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대중에게 전파했다. 의 청취자들에게 페퍼톤즈가 친숙해졌고, 고고했던 그 뮤지션들이 친근해졌다. 선배들이 음악작업을 통해 유희열을 성장시켰다면, 유희열은 자신의 선후배, 동료들을 대중에게 알린다. 하지만, 그는 라디오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또한 “솔직히 모르는 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나. 팬 관리는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다”고 하고, “데뷔 후 지금까지 ‘여러분 사랑해요’라는 말조차 해본 적 없다”고 할 만큼 거리를 둔다. 그는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하지만, 대중과 분리된 개인으로 남은 채 자신의 음악과 취향을 전파한다. DJ 유희열은 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위안을 얻던 그 사람들의 취향과 감성을 한 데 모아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냈다. 그의 소속사이름이 ‘안테나 뮤직’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안테나처럼 세상의 어떤 좋은 것들의 전파들을 잡아내 사람들에게 퍼뜨렸다.

심성락: 50년째 아코디언을 연주한 연주자. 100회 특집에 출연해 모든 출연 뮤지션의 존경을 받았다. 유희열은 의 연출자가 “인디 가수에게 라디오에서 열 번 곡 트는 것보다 TV 한번 나오는 게 훨씬 영향력 큰 걸 알 텐데”라고 말한 것에 자극을 받고 출연을 결정했다. 이후 이 프로그램에는 심성락 같은 존중받아 마땅한 뮤지션이, 이승환과 김장훈처럼 그를 이끌어준 선배들이, 이병우처럼 그의 감수성을 만들어준 대가들이, 곡을 알릴 마당이 없는 인디 뮤지션이, 그리고 자신의 음악적인 꿈을 펼쳐 보이고 싶은 아이돌들이 모두 올라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 수많은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슬픔을 치유했고, 선배들을 통해 음악을 시작했던 뮤지션은 이제 그 선배들과 앞으로 자신처럼 될지 모를 후배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혼자 하는 음악, 혼자 듣는 음악에 지쳐있던 사람들이 유희열의 안테나를 통해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음악에서 위안 받던 한 사람이 음악을 만들고, 다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신이 받았던 것들에 대해 존중을 표시하고, 그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유희열의 가장 멋진 점은 다양한 음악을 알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모두 가능케 하는 방법을 보여줬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남자를 통해 전 세대의 음악에 대한 존중과 다음 세대의 음악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일 것이다. 유희열입니다.

Who is next
유희열과 음악 작업을 함께했던 윤종신과 Mnet 에 출연 중인 윤미래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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