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종영한 MBC 의 엔딩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모두를 용서했다. 아니,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마루가 집에 돌아왔다. 이것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봉우리의 오빠로서, 차동주의 형으로서, 최진철의 아들로서 살아야 했던 마루는 드라마 속 모든 갈등의 연결고리 같은 존재이자 갈등 해결의 실마리 같은 존재였다. 어딘가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 무엇인가를 얻고 싶어 괴로워하는 이 딱한 캐릭터를 보며 시청자들이 ‘다크마루’라는 별칭까지 붙이며 주목한 건 그저 동주-마루의 베드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복잡한 심정을 자기 안에서 감당해야 했던 배우 남궁민에게 마루는, 그리고 이 드라마는 어떤 의미였을까. 회고로 시작한 인터뷰는 한 배우의 성장담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후의 남궁민에 대한 기대감을 남겼다.결국 마루가 모두와 화해하거나 용서하는 것으로 가 마무리됐다. 엔딩에는 만족하나.
남궁민 : 조금 아쉽긴 하다. 너무 급하게 화해를 하고 용서를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작가 선생님께서 모든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려는 드라마를 쓰려고 노력하느라 나온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내적으로만 생각하면 아쉬운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외적인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정말 많은 고충 끝에 나온 결말이다.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마무리였고, 만족하고, 감사한다.
마루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엔딩을 통해 그 어려움과 마음고생도 털어냈나.
남궁민 : 사실 마음고생은 마루가 한 거지, 오히려 연기자 남궁민은 행복했다. 그 역할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 가끔 장준하, 봉마루, 최진철의 아들 등 다양한 입장을 연기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그런 건 없었다. 다만 대사를 외우는 건 어려웠다. 감독님께서 대사를 가장 잘 외우는 순위로는 1위 윤여정 선생님, 2위 송승환 선생님을 꼽고 못 외우는 1위는 남궁민이라고 하신다. (웃음) 대사의 말뜻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2~3일은 있어야 대사가 내 것이 되는 편인데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앞으로는 어떠한 상황이 되던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이 끝나서 무기력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 캐릭터에 몰입이 잘 됐다는 건 배우로서 행복한 일이지만 그만큼 캐릭터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남궁민 : 사실 드라마 마무리할 때 즈음에는 몸이 힘드니까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월요일에 나가서 일요일에 들어오고, 거의 캠핑족처럼 차 안에서 먹고 자고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촬영이 다 끝나고 서로 수고했다고 이야기하는데 기분이 우울하더라. 그 자리에서 1차까지만 있다가 집에서 마지막 방송을 보고 잤다. 일이 끝나서 무기력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말하자면 ‘일 모드’가 된 건가.
남궁민 : 몸이 많이 풀렸다. 할 때만 해도 안 풀렸었다. 군대 가기 전에 나 를 찍을 땐 몸이 쫙 풀린 느낌이었는데 군대 다녀오면서 다시 굳었다. 카메라 앞에서의 긴장도 생겼고. 그런데 이번 작품하며 많이 풀리게 됐다. ‘일 모드’가 됐고 일을 몰아서 하고 싶다.
그게 단순히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마루를 연기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까.
남궁민 : 마루를 보면서 보통의 드라마 캐릭터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보통 악역은 이유 없이 나쁘고, 착한 사람은 끝까지 착한데, 이 아이는 어린 마음에 가족을 버리고 행복한 가정을 만나 착하게 살다가 또 복수심을 품고 나빠졌다가 심경의 변화가 크다. 스펙트럼도 넓고. 그만큼 현실감이 있는 캐릭터라 몰입이 더 됐고 그래서 몸이 잘 풀린 것 같기도 하다.
쉬기보다는 빨리 새 작품을 통해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그만큼 이 직업에 대한 마음이 각별한 것 같다.
남궁민 : 그냥 회사원이 직장을 다니듯, 내 직업이 연기인 거라고 본다. 의사 선생님이 자기 일을 하는 것처럼 나는 연기를 하는 거고. 특별한 게 아닌데, 다만 연기를 하면 그게 브라운관에 비춰지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보는 것뿐이지.
직업인의 마음이라고 하지만 이 직업에 대한 재미가 있어야 열심히 할 수 있을 텐데.
남궁민 : 이게 정말 사랑하는 여인을 대하는 느낌이다. 어느 날은 너무 좋은데 어느 날은 너무 힘들다. 대본 꼴도 보기 싫고. (웃음) 그러다 지금처럼 끝나면 너무 그리워지고. 내가 좋아하는 길이라는 마음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에 항상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기 싫을 때는 예전에 노트에 적어둔 것들을 본다. 연기를 안 하고 있었을 때 내가 얼마나 이 일을 그리워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고. 나는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많이 적어두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하며 깨달은 것들을 적어둔 연기 노트도 있고. 최근까지도 많이 적었다.
혹 전에 적어둔 걸 지금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도 있나. (웃음)
남궁민 : 그런 것도 있는데, 어떨 땐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대단하다’ 할 때도 있다. (웃음) 예전에 적어둔 것들 보면 계속 혼돈의 연속인 것 같다. 이게 맞는 줄 알았는데 저게 맞고. 다만 진심으로 연기하자는 것, 그것만큼은 진리인 것 같다. 사실 제약된 틀 안에서 연기하다보면 그런 걸 잊게 되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진심으로 연기하는 걸 더 느끼게 됐다.
“동주와의 베드신은 내가 생각해도 민망” 진심으로 연기한다는 건 어떤 걸까.
남궁민 : 가령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때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않나. 정말 고마워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더는 대답하기 싫어서 넘어가고 싶어 그런 걸 수도 있고. 그 때 이 대본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되짚어보고 그 마음 그대로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 겉 표정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는 거라고 본다.
마지막 회에서 친모인 김신애에게 까칠한 말투로 미국 안 보내준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은 용서의 마음을 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남궁민 : 마찬가지인 거지.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 그럼 보내줄게’라고 하는데 겉으로는 티를 안 내지만 안으로는 용서하고 모든 것을 떨쳐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 마음으로 했다.
그런 진심을 드러내기 위해 테크닉이 필요할 때는 없나.
남궁민 : 테크닉도 굉장히 중요하다. 일종의 센스라고 생각한다. 연기의 한 장면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센스. 가령 할머니가 돌아가신 신에서, 사실 엉엉 우는 게 맞을 거다. 살아계실 때 마루가 워낙 모질게 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미소를 살짝 띠는 걸 선택했다. 마루는 사랑한다는 말도 대놓고 하기보다는 표현하기 힘들어하며 말하는 아이이고, 슬픈 감정을 감추려 할 때 보는 사람이 더 슬퍼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기본적으로 나 스스로 내면적인 표현을 지향하는 편인데 그게 이번 캐릭터와 잘 맞은 것 같다.
개인 남궁민의 경험을 끌어들이기도 하나. 가령 동주와의 형제애를 표현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실제로도 남동생이 있지 않나.
남궁민 : 어떤 분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연기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새로 만드는 편이다. 실연당하는 장면을 찍을 때도 내가 버림받았던 슬픔을 대입하기보다는 저 여자 캐릭터에게 차였을 때의 슬픔을 생각하고. 동주와의 관계에서도 내 동생에 대한 경험을 대입하기보다는 새로운 동생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김)재원 씨랑 현장에서 사이좋게 지냈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다. 사실 첫 촬영에서 찍은 게 마지막 회에서 두 사람이 침대에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다. 그 앞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찍으려니 몰입하기도 힘들고, 남자와 침대에서 찍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재원 씨도 연기를 오래한 분이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사실 둘의 베드신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웃음)
남궁민 : 심지어 편집된 것만 두 신이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좀 민망한 장면이었다. 방송에 나가도 될까 싶을 정도로. 남자가 남자 위에 올라타고 손을 못 움직이게 하는 장면. (웃음)
앞서 테크닉 이야기를 했는데 목소리가 워낙 좋다. 발성을 배운 걸로 아는데.
남궁민 : 상대방에게 화내거나 지를 때,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가 긴장감을 가지고 신을 가져가야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러기에는 힘이 약한 것 같았다. 목소리가 좋아져서 좋은 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히 하고 내 이야기를 듣는다. 흡인력이 있다는 거겠지. 가끔 어디 예약할 때 전화하면 ‘혹시 남궁민 씨 아니세요?’ 그런다. (웃음) 그렇게 뚜렷한 색이 있는 게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하는 방식에 맞출 줄도 알아야 한다” 발성 연습 같은 건 연기 자체를 위한 훈련인 건데, 혹 사적인 생활의 어떤 부분이 연기를 위한 준비가 될 때도 있나.
남궁민 : 그런 걸 해야 나 스스로 불안하지 않은 건 있다. 혼자 ‘자신감이 있어야 해’ 하며 나오는 것과 내가 힘들지만 뭔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은 다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걸 찾아서 해야겠지. 지금 하는 건 운동 열심히 하는 거.
남자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자신감이 붙을 수 있다.
남궁민 : 붙지. 그리고 내가 운동하는 헬스클럽은 여자는 별로 없고 선수나 트레이너 되려는 분들이 많다. 이 사람들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이중적이지 않고 정말 앞면만 있는 그런 순수한 친구들이다. 그 사람들이랑 커피 마시고 이야기하다가 같이 운동하는 게 내 사회생활의 전부다.
동전의 앞면만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나보다.
남궁민 :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방송 하면서 힘들다. 나는 감정 표현에 솔직한 편이니까. 그런데 그런 친구들 만나면 표정 관리할 필요 없이 싫으면 싫은 티 내면 되니까 오해 살 일이 없지.
그럼 개인으로서의 남궁민도 그런 동전의 앞면 같은 사람인 것 같나.
남궁민 : 계산하는 게 서툴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사고 건방지다는 소리도 가끔 듣고. 눈치도 없는 편이고. 작품 끝나고 촬영감독님이 초반에는 나를 오해했었다고 그런 면은 고치는 게 좋을 거 같다고도 했다. 다음 작품 할 때 그런 건 좀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
개인의 생활에서 추구하는 부분과 직업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있겠다.
남궁민 : 사실 작품 속에서 나를 봐주는 건 좋지만, 바깥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껴야 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서 트위터나 미니홈피 같은 것도 안 하는 거고. 직업으로서의 연기자로서 일을 잘해서 존경받고 싶지, 남궁민 개인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사적인 걸로 유명세를 타고 싶지도 않고.
연기자라는 직업의 경우, 일등 사원이 될수록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지 않나.
남궁민 : 물론 관심이 없으면 허전하겠지만 어떨 땐 나에 대해 디테일한 것까지 파악하고 있어서 무서울 때가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 인기라는 것이 연기자라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다.
남궁민 :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는 열심히 한다. (웃음) 사실 전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하는 것만으로 내 역할이 끝나길 바랐다. 인터뷰를 많이 꺼렸다. 인터뷰에 대한 말재주도 없었고. 사실 전에 ‘X맨’ 같은 쇼 프로그램 나갈 때는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제는 연기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해야 연기에 있어서도 좋은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심경의 변화가 생긴 분기점이 언제인가.
남궁민 : 끝나고. 전에는 연예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해도 말도 잘 안 하고 단답형으로 했는데, 화면에 나오지도 않더라. 이번 작품 할 때도 초반 인터뷰 때 가만히 있다가 끝나는 식으로 나오고. 이건 좀 아니구나, 성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다만 쇼 프로그램 나가는 것까지는 못할 것 같다. 말재주 있는 분들이 나가면 재밌지만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민폐만 끼칠 것 같고. (웃음)
타협인 걸까, 철이 든 걸까.
남궁민 : 철 든 거라고 본다. 고집만 가지고, 내 마음대로만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방식에 맞출 줄도 알아야 한다.
글, 인터뷰. 위근우 기자 eight@
인터뷰.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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