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떨어진 19세기 슈퍼 히어로. 신용카드도, 휴대폰도, 인터넷도 쓰지 않는데다 심지어 “시계도 차지 않는” 잭 리처는 여러모로 구식이다. 그러나 온갖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히어로들이 넘쳐나는 지금 굳이 총을 버려가며 맨주먹으로 싸우는 그의 고집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그는 코믹스 영웅들처럼 근사하지도, 정체성을 고민하지도, 악인을 처단하는데 정의를 내세워 망설이지도 않는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심판하고 행동할 뿐이다. 그것이 맨주먹으로 사람을 곤죽 만드는 일이라 할지라도. 잭 리처는 차라리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에 가깝다. 악당을 위협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폼 잡기를 멈추지 않는 남자들. 이 촌스럽지만 믿음직스러운 ‘상남자’는 멸종위기에 처한 마초의 건재함을 온몸으로 외친다. 그것도 아주 유머러스하게. 이미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로 온갖 악에 맞서 싸운바 있는 톰 크루즈를 사로잡은 잭 리처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10일 콘래드 서울에서 열린 톰 크루즈,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로자문드 파이크의 기자 간담회 현장에서 들어보았다.
Q. 잭 리처는 일반적인 선한 영웅과는 다르다. 법을 존중하거나 정의를 실현한다기보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악인들을 심판한다. 캐릭터의 어떤 면에 끌렸나.
톰 크루즈: 잭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는 캐릭터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상황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훌륭한 수사관이기도 하고, 스스로 정의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캐릭터라고 할까. 그리고 진정한 악이라는 것과 대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이런 매력과 유머를 표현하는 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평생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액션 신을 찍는 건 재밌다”

톰 크루즈 “잭 리처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캐릭터”
Q. 맨몸으로 부딪치는 액션이 많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
톰 크루즈: 평생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액션 신을 찍는 건 재밌다. 이번 영화에서는 CG도 쓰지 않았고 운전도 직접 했다. 대부분의 액션 신을 마스터 버전 그대로 쓸 수 있었다. 촬영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지만 기술을 동원하기보다는 실제로 모든 걸 해내려고 했다. 특히 자동차 추격전은 9대의 차를 동원해서 촬영했다. 원래 스턴트 차량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70년대에 나왔던 머슬카(1964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모델)를 그대로 썼다. 그 중에 8대가 촬영 중에 분쇄됐지만. (웃음) 잭 리처가 아날로그적인 캐릭터기 때문에 촬영도 그런 식으로 진행했고, 자동차 추격전을 보실 때 단순히 또 하나의 추격전이 아니라 잭 리처를 상징하는 것으로 봐줬으면 한다. 내게 있어서 그 신은 스턴트라기보다는 하나의 스토리텔링이었다.



Q. 잭 리처와 여주인공 헬렌의 관계는 멜로가 될 듯, 될 듯 하면서 결코 발전하진 않는다. 여주인공으로서 아쉽지는 않았나.
로자문드 파이크: 헬렌과 잭의 관계는 충분히 러브스토리로 진행될 수 있는데 계속 방해를 받는다. (웃음) 각본에 의하면 로맨틱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연기하면서는 톰 크루즈와 케미스트리가 있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스크린 상으로는 우리 둘 사이에 뭔가 있는 듯한 분위기가 난다. (웃음) 작품을 할 때마다 항상 그런 건 아니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잭은 떠돌이이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 잔다고 해서 내일도 여기서 자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잭이 헬렌이라는 변호사와 로맨스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걸 부각시킬 수 없었다. 헬렌과 잭이 함께 나오는 신에서 항상 얘기했던 건 “톰, 배우로서 매력을 발산해도 좋아요. 하지만 헬렌이라는 여자에게 매력을 발산하지는 말아요”였다.



Q. 리 차일드의 원작 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원작에서 가장 좋아한 부분은 유머였다. 따뜻하다기보다는 차가운 유머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매력은 잭이 기술을 거부하고 물질주의에 반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자신은 기술을 좋아하고 컴퓨터가 없으면 안 되고 휴대폰도 좋아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잭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흔히 영화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 전화 한 통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걸 자제했다. 심지어 잭은 시계도 차지 않는다. 그리고 제일 중요했던 건 잭 리처라는 캐릭터를 부각 시키는 것이었다. 유머를 이용하거나 분위기를 낼 수도 있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잭이 머릿속에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비주얼로 보여주느냐 고민이 많았다. 설명하지 않고도 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관객을 유도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단 헌트와 잭 리처는 굉장히 다른 캐릭터”
톰 크루즈 “잭 리처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캐릭터”


Q. 관객들에게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잭 리처가 혹시 이단 헌트로 비춰질까 하는 우려는 없었나.
톰 크루즈: 이단 헌트와 잭 리처는 굉장히 다른 캐릭터다. 잭 리처는 내가 이전에 해본 적이 없는 캐릭터이고. 단지 둘의 공통점은 톰 크루즈가 그 역할을 했다는 것 밖에 없다. 두 영화는 이야기도 다르고 액션도 다른데다 잭 리처는 책을 근거로 한 캐릭터다. 이전에 했던 <어퓨굿맨>이라는 법정 스릴러 영화와 오히려 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원래 다양한 장르에 관심이 있고 캐릭터 자제도 판이하게 달라서 그런 고민은 없었다.



Q. 잭 리처는 여러 면에서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엔 찾아보기 힘든 마초 캐릭터이기도 하고 악당을 위협할 때조차 고전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수사들을 이용한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사실 원작에서부터 서부영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잭 리처가 쉐인처럼 묘사된 장면도 있고. 하지만 영화 만들 때 중점을 두었던 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나의 대사로 소화시켜서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많이 보고 감동을 받았던 영화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 식대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Q. <유주얼 서스펙트>, <발키리> 등의 각본가로 더 유명한데 감독으로 데뷔한지 12년 만에 다시 연출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나는 12년 동안 1년에 한 편씩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웃음)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는 12년 전에 만든 <웨이 오브 더 건>이었는데 굉장히 양극화된 영화였고 흥행에서 실패한데다 반 상업적인 방법으로 촬영했다. 그런 내게 영화를 맡기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12년 동안 다른 사람이 쓴 각본을 각색하는 작업을 주로 했었고 나만의 영화를 만들 때가 되었단 생각을 했다.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쉽게 만들 수 있는 영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게 <발키리>였고, 거기서 톰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잭 리처>가 탄생하게 되었다.



Q. 감독이 17년 전에 썼던 각본 <유주얼 서스펙트>는 많은 작가들이 모범으로 삼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내가 만들고 싶고, 보고 싶은 영화, 내 머릿속에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각본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쓰지 말라는 말이다. 나 역시 관객이 이런 걸 원할 거라고 생각하며 쓴 작품들은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썼을 당시 시나리오 작법에 규칙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내가 그걸 위반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원하는 대로 썼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발키리>를 쓰게 됐을 때는 주변에서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나치가 주인공이고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를 하고 관객과 공감하는 주인공이 죽는 이야기는 영화가 될 수 없다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쓴 시나리오를 곱씹어 보면 <발키리>만 성공했고 나머지 영화들은 별다른 성공을 하지 못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만드는 건 부담된다”
톰 크루즈 “잭 리처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캐릭터”
Q. 영화의 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에서 얼마 전 미국에서 있었던 총기난사 사건을 떠올리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 처음으로 시사하려고 했던 날짜가 코네티컷 총기난사 사고 바로 다음 날이었다. 물론 행사를 취소했다. 미국에서 총기 소지에 대한 이슈는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다. 이것은 국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헌법이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개인적인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총기 소지는 개인의 자유고 권리의 문제지만 책임이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는 다 선하다고 믿고 싶다. 물론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지만. 영화제작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영화 속에서 나오는 폭력장면에 책임을 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영화들을 보면 폭력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걸 즐기거나 선망하지는 않는다. 항상 폭력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밖에는 폭력을 쓸 수 없다.

Q.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5번째 작품을 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나.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아직은 톰과 서로 이야기하는 초기 단계다. 지금까지 만든 그 어떤 영화보다 주눅도 들고 압박을 받는 게 사실이다. 비단 영화의 규모 때문만은 아니고 영화가 가지는 분위기 때문인 거 같다.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라 전편들을 따라가야 하는 것도 있고 장르 자체도 낯설다. 그래서 부담이 된다.



Q. 한국의 박찬욱, 김지운 감독이 올해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를 개봉하는데 먼저 그 시장에서 일해 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전망하나.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할리우드에서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 할리우드에도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 한국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감독들이 할리우드로 건너와서 한국영화의 맛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사진제공. 퍼스트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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