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내가 아직도 은교로 보이세요?](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050816114993442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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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7월 2일생. 벌써 스물둘이지만 하이힐은 아직 힘들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하면 구두를 신고 무대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순간이 제일 긴장될 정도다. 그래서 요즘 발이 좀 미워졌다. 발가락에 밴드도 다 붙이고.
오빠가 하나 있는데 정말 사이가 좋다. 친구들과는 좀 다른 스타일로 장난을 치게 되는 것 같다. 좀 색다르게 괴롭힌달까. 그러다가도 싸우면 또 죽일 듯이 싸우는데,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정하게 지낸다. 오빠가 처음에는 를 안보겠다고 했었는데, 며칠 전에는 여자친구랑 같이 보겠다고 하더라. 오빠 여자친구가 나랑도 굉장히 친한데 영화를 찍기 전부터 엄청 걱정을 해 줬거든. 그래서 언니가 아마 보자고 한 것 같다.
엄마, 아빠는 시사회 후에도 를 개인적으로 재관람 하신 걸로 안다. 특히 아빠는 점점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얘기를 하시더라. 세 번 정도 보셨는데, 볼 때마다 달라진다고 하셨다.
원래 아빠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같이 영화를 보고는 했다. 어렸을 때 한동안 중국에서 살았는데, 그때 집 한쪽 벽면에 DVD장이 있을 정도였다. 을 보던 날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중간에 야한 장면이 나오니까 아빠가 내 눈을 가리고 빨리 감기를 하면서 “힘든 사랑을 했어. 이제 됐어. 봐”하고 대강 설명을 해 주셨다. 으하하하하하. 그러다가 내가 조니까 “야. 지금이 중요해! 배가 갈라지잖아. 안 슬프니?” 하면서 막 깨우시고. 워낙 명작이라고 좋아하셔서 나중에 몇 번이나 다시 봤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광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계원예고에 진학을 했는데, 학교에서 연예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덕분에 교내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아이들끼리 연극을 올리고 세트를 만들던 기억은 정말 소중하다. 이후에 한예종에 가면서 또 2년 동안 외부 활동이 금지되었는데, 그래서 에 출연하기 전까지 달리 오디션을 보거나 한 적은 없다.
영화에 캐스팅 되기도 전에 소설 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은교는 대체 어떤 아이인가 인물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늙어도 청춘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고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원작의 주제 자체가 나에게는 정말 새로운 이야기라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몰랐지. 나는 몸도 마음도 다 같이 늙는 건 줄로만 알았으니까.
은교를 연기할 때는 마음을 그렇게 먹어버리니까 실생활에서도 여고생처럼 행동하게 되더라. 친구들을 만나도 “헐, 진짜? 대애애박!” 하고 은교 말투를 쓰게 되어서 애들이 적응을 못했었다. 특히 은교 특유의 애교 때문에 주변에서 많이 힘들어 했다. 원작과 시나리오에 은교가 “앙녕하세요”하고 인사하거나 “할아부지”하고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건 그냥 어린 말투가 아니라 몸에 배어 있는 애교라고 생각했었다.
겉으로는 철없는 소녀이면서도 은교가 이적요를 이해할 수 있는 건 그냥, 그 아이가 받은 상처들 때문에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치 않는 마음일수도 있지만 상처를 받으면서 마음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듣고 싶어진 거지. 자신도 알지 못한 성숙이 일어난 거다. 그리고 외면과 내면이 똑같은 사람은 없지 않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를 찍으면서 (박)해일 오빠가 늘 “넌 이제 두 작품 쯤 한 것 같을 거야. 웬만한 건 이제 거뜬히? 응?”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솔직히 나는 아직 경험이 없어서 완벽하게 그 뜻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작품에 대한 두려움은 덜해졌다. 워낙 감정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계속 경험했거든. 이 나이에 그런 한계와 절망을 겪어볼 일이 없지 않나. 그런데 작품을 하면서는 계속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고, 책임감이랄지 후회하기 싫은 간절함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이제는 한계를 한계로 직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성숙해 진 것 같다. 더 큰 한계가 올수도 있고, 집중에 따라 한계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걸 아는 거지. 그래서 나에게 “좀 더 할 수 있어. 아직 아니야”라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거.
사실 촬영을 하면서 진짜 큰 한계는 추위와 싸우는 거였다. 영화에서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는 여름이지만, 촬영은 겨울 내내 한 거라서 정말 고생했다. 늘 초콜릿을 갖고 다니면서 먹었고, 몸이 막 떨리는 걸 참고 연기해야 했다. 나중에는 슛 들어가기 전에 몸을 일부러 막 떨고 숨을 크게 내쉰 다음에 대사를 하면서 호흡을 지키는 노하우가 생기더라니까. 으히히히힛.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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