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 팬들. 모두 저주 먹어. 두산 베어스와 기아 타이거즈 팬들도 저주 먹어. 어차피 두산 베어스는 찬스 때 2루 땅볼이나 날릴 거고, 기아 타이거즈는 1루에 나가지도 못할 거잖아. 그런 야구 보겠다고 뭐하러 잠실 야구장에 3만명씩이나 가냐. 그것도 4월 27일, 잠실 주경기장에 레이디 가가 팬들이 5만 명쯤 갔다는 날에. 덕분에 홍대에서 잠실 주경기장까지 택시비가 32500원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택시에 있는 2시간 동안 한국 기독교 총 연합회 목사님은 라디오에서 “레이디 가가 음란문화를 조장한다”고 말했고, 택시 기사 아저씨는 “왜 그런 공연을 봐요?”라고 물어봤다. 32500원을 챙긴 그 아저씨가 2시간 내내 “주경기장?” “거긴 막혀서 안 돼” 하며 반쯤 말을 놓은 것도 쩨쩨하게 다 말해야겠다. 아저씨도 저주 먹어. 두 번 먹어.
32500원을 내고 2시간동안 반말투의 말을 들으며 음란 문화의 선구자 취급을 받았다. 레이디 가가가 < Born this way ball > 공연에서 뭘 하든 이것보다 충격적일 리는 없다. 게다가 무대는 주경기장 가운데가 아니라 경기장 끝 쪽에 자리 잡았고, LED 스크린은 거대한 성이 세워진 무대 양 옆에 그리 크지 않은 크기로 두 대만 설치됐다. 레이디 가가가 ‘Heavymetal lover’에서 여자 무용수와 동성애적인 분위기를 내봤자 스크린이 아니면 돈 내고 보는 1층 R석에서도 메뚜기 두 마리의 애정행각처럼 보인다. 좌우로 열리는 성은 좋은 볼거리였고, 거의 곡마다 의상이 바뀌는 레이디 가가는 옷을 갈아입기도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션이 한 없이 작아 보이는 스타디움 공연에 필요한 건 대형 세트보다 대형 스크린이었다. 사운드도 주경기장답게 아주 멍멍하게 사방으로 퍼져 주니 레이디 가가 뭘 전파하려고 해도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기억에 남는 단어는 ‘Korea’, ‘You and I’, ‘Fuck’ 정도. 아, 음란한 건가.
레이디 가가는 그저 이렇게 태어난 것뿐인걸 그 큰 공연장에서 키 155cm의 레이디 가가를 작은 스크린으로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큰 세트와 옷뿐이다. 발끝까지 덮는 드레스, 빤딱빤딱 빛나는 가죽 바이커 패션, 생고기 무늬를 입힌 원피스. 관객이 집중해서 보면 발견할 수 있는 디테일한 요소 같은 건 없다. 대신 세트는 거대하고, 옷의 소재와 소품들은 독특하며, 레이디 가가와 무용수들은 강하고 큰 동작들을 똑같이 춘다. ‘Highway unicorn’에는 실제로 말이 등장하고, ‘Born this way’에서는 레이디 가가가 걷기도 불편할 드레스를 입고 무용수들과 함께 열심히 춤을 춘다. 스크린으로 봐도 레이디 가가의 표정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억에 남는 건 큼직큼직한 한 순간의 이미지다. ‘Alejandro’에서 남녀 무용수들이 소파 위에서 몸을 더듬어도 잠실 주경기장 1층 R석에서 촉수와 촉수가 엉키는 뜨겁고 촉촉한 분위기 따위 알게 뭐야. 소파와 무용수들이 엉켜 있는 강렬한 이미지만 기억에 남는다.
‘When I look back on my life / it’s not that I don’t want to see things exactly as they happened / It’s just that I prefer to remember them in an artistic way’ (내 삶을 돌이켜보면 일어났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싫은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을 좀 더 예술적으로 기억하고 싶어) ‘Marry the night’의 뮤직비디오 앞부분에서 레이디 가가가 하던 내레이션이 기억났다. < Born this way ball >은 그 내레이션을 테마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이디 가가는 세트부터 소품까지 디테일한 요소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모든 요소를 과장한다. 동작은 크게, 의상은 독특한 소재와 라인으로. 그만큼 현실성이 사라지면서 자극적인 소재의 퍼포먼스도 가볍고 장난스럽게 소화한다. ‘Heavy metal lover’에서 레이디 가가와 여자무용수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과장되게 몸을 휘젓는다. 덕분에 ‘Heavy metal lover’를 들으면서 옆 좌석의 남자를 쳐다봤지만,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세상에는 그런 이상한 옷을 입고, 바이크를 타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됐다. 가죽, 실크, 메탈, 육류. 누군가 청바지를 입듯, 레이디 가가는 그런 옷들을 입을 뿐이다. Born this way. 레이디 가가는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여성 양성애자의 무대가 보여준 종교적인 체험 그래서 더 크게, 더 힘차게. 마이클 잭슨의 공연은 거룩하고, 마돈나의 공연은 완전하다. 그런데 레이디 가가는 짠하다. 왜소한 체격의 여성 양성애자가 생고기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은 채 5만 명의 관객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는 방법은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하면서 그들을 집중시키는 초인적인 노력 밖에 없다. 이 키 155cm의 여성은 10cm는 가볍게 넘을 것 같은 킬 힐을 신고 공연장 전체를 전력질주한다. 달리기가 끝나면 공연 내내 힘을 가득 넣은 채 크게 팔과 다리를 휘젓는 무용수들의 춤을 따라하고, 헉헉거리는 숨을 참으며 건반 앞에 앉아 노래한다. 그리하여 왜소하고, 여성이자 양성애자이며, 남들과 다른 문화적 취향을 가진 여자는 무대 위의 슈퍼스타가 되어 대중을 함께 뛰도록 만드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리고 레이디 가가는 거대하고 소란스러운 퍼포먼스 사이에서 건반 한 대를 놓고 조용히 ‘Hair’를 노래하고, 가스펠적인 요소가 담긴 ‘Born this way’와 ‘You and I’를 통해 그 기적에 대해 간증한다. 남들과 달리 살았던 사람의 고난과 성장이 거의 종교적인 정화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무대 위에서는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모두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레이디 가가가 반 기독교적이라면, 그가 교회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생고기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고도 종교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은 이성애로 마무리하는군.” 공연의 실질적인 엔딩곡이었던 ‘The Edge of glory’에서 레이디 가가가 남자 무용수의 몸에 매달렸다. 그러자 같이 공연을 본 사람이 한마디 던진다. 레이디 가가가 자신이 잘 보이지도 않는 관객에게 온 근육을 다 써가며 전파한 건 음란문화가 아니었다. 관객들은 동성애와 이성애가, 가죽과 드레스가 모두 하나의 세계 안에서 공존하는 광경을 보았다. 프로야구팬과 레이디 가가의 팬이 잠실에 모여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레이디 가가의 팬들이 공연장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공연을 방해하던 일부 기독교인들을 관용하고 넘어간 것처럼. 종교적인 깨달음은 교회가 아니라 잠실 주경기장에서, 목사님이 아니라 레이디 가가의 팬도 얻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은 적어도 음란문화는 아닐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택시를 타지 않았다. 2호선 지하철역에는 숨 막힐 만큼 많은 사람이 있었다. 기아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고 야구공을 만지작거리는 꼬마 팬도 있었다. 2대0으로 완봉당한 팀을 응원한 그 꼬마는 지금 얼마나 짜증이 날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택시 기사 아저씨는 빼고. 저주는 한 번만 취소하겠다.
사진제공. 현대카드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32500원을 내고 2시간동안 반말투의 말을 들으며 음란 문화의 선구자 취급을 받았다. 레이디 가가가 < Born this way ball > 공연에서 뭘 하든 이것보다 충격적일 리는 없다. 게다가 무대는 주경기장 가운데가 아니라 경기장 끝 쪽에 자리 잡았고, LED 스크린은 거대한 성이 세워진 무대 양 옆에 그리 크지 않은 크기로 두 대만 설치됐다. 레이디 가가가 ‘Heavymetal lover’에서 여자 무용수와 동성애적인 분위기를 내봤자 스크린이 아니면 돈 내고 보는 1층 R석에서도 메뚜기 두 마리의 애정행각처럼 보인다. 좌우로 열리는 성은 좋은 볼거리였고, 거의 곡마다 의상이 바뀌는 레이디 가가는 옷을 갈아입기도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션이 한 없이 작아 보이는 스타디움 공연에 필요한 건 대형 세트보다 대형 스크린이었다. 사운드도 주경기장답게 아주 멍멍하게 사방으로 퍼져 주니 레이디 가가 뭘 전파하려고 해도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기억에 남는 단어는 ‘Korea’, ‘You and I’, ‘Fuck’ 정도. 아, 음란한 건가.
레이디 가가는 그저 이렇게 태어난 것뿐인걸 그 큰 공연장에서 키 155cm의 레이디 가가를 작은 스크린으로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큰 세트와 옷뿐이다. 발끝까지 덮는 드레스, 빤딱빤딱 빛나는 가죽 바이커 패션, 생고기 무늬를 입힌 원피스. 관객이 집중해서 보면 발견할 수 있는 디테일한 요소 같은 건 없다. 대신 세트는 거대하고, 옷의 소재와 소품들은 독특하며, 레이디 가가와 무용수들은 강하고 큰 동작들을 똑같이 춘다. ‘Highway unicorn’에는 실제로 말이 등장하고, ‘Born this way’에서는 레이디 가가가 걷기도 불편할 드레스를 입고 무용수들과 함께 열심히 춤을 춘다. 스크린으로 봐도 레이디 가가의 표정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억에 남는 건 큼직큼직한 한 순간의 이미지다. ‘Alejandro’에서 남녀 무용수들이 소파 위에서 몸을 더듬어도 잠실 주경기장 1층 R석에서 촉수와 촉수가 엉키는 뜨겁고 촉촉한 분위기 따위 알게 뭐야. 소파와 무용수들이 엉켜 있는 강렬한 이미지만 기억에 남는다.
‘When I look back on my life / it’s not that I don’t want to see things exactly as they happened / It’s just that I prefer to remember them in an artistic way’ (내 삶을 돌이켜보면 일어났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싫은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을 좀 더 예술적으로 기억하고 싶어) ‘Marry the night’의 뮤직비디오 앞부분에서 레이디 가가가 하던 내레이션이 기억났다. < Born this way ball >은 그 내레이션을 테마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이디 가가는 세트부터 소품까지 디테일한 요소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모든 요소를 과장한다. 동작은 크게, 의상은 독특한 소재와 라인으로. 그만큼 현실성이 사라지면서 자극적인 소재의 퍼포먼스도 가볍고 장난스럽게 소화한다. ‘Heavy metal lover’에서 레이디 가가와 여자무용수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과장되게 몸을 휘젓는다. 덕분에 ‘Heavy metal lover’를 들으면서 옆 좌석의 남자를 쳐다봤지만,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세상에는 그런 이상한 옷을 입고, 바이크를 타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됐다. 가죽, 실크, 메탈, 육류. 누군가 청바지를 입듯, 레이디 가가는 그런 옷들을 입을 뿐이다. Born this way. 레이디 가가는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여성 양성애자의 무대가 보여준 종교적인 체험 그래서 더 크게, 더 힘차게. 마이클 잭슨의 공연은 거룩하고, 마돈나의 공연은 완전하다. 그런데 레이디 가가는 짠하다. 왜소한 체격의 여성 양성애자가 생고기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은 채 5만 명의 관객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는 방법은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하면서 그들을 집중시키는 초인적인 노력 밖에 없다. 이 키 155cm의 여성은 10cm는 가볍게 넘을 것 같은 킬 힐을 신고 공연장 전체를 전력질주한다. 달리기가 끝나면 공연 내내 힘을 가득 넣은 채 크게 팔과 다리를 휘젓는 무용수들의 춤을 따라하고, 헉헉거리는 숨을 참으며 건반 앞에 앉아 노래한다. 그리하여 왜소하고, 여성이자 양성애자이며, 남들과 다른 문화적 취향을 가진 여자는 무대 위의 슈퍼스타가 되어 대중을 함께 뛰도록 만드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리고 레이디 가가는 거대하고 소란스러운 퍼포먼스 사이에서 건반 한 대를 놓고 조용히 ‘Hair’를 노래하고, 가스펠적인 요소가 담긴 ‘Born this way’와 ‘You and I’를 통해 그 기적에 대해 간증한다. 남들과 달리 살았던 사람의 고난과 성장이 거의 종교적인 정화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무대 위에서는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모두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레이디 가가가 반 기독교적이라면, 그가 교회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생고기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고도 종교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은 이성애로 마무리하는군.” 공연의 실질적인 엔딩곡이었던 ‘The Edge of glory’에서 레이디 가가가 남자 무용수의 몸에 매달렸다. 그러자 같이 공연을 본 사람이 한마디 던진다. 레이디 가가가 자신이 잘 보이지도 않는 관객에게 온 근육을 다 써가며 전파한 건 음란문화가 아니었다. 관객들은 동성애와 이성애가, 가죽과 드레스가 모두 하나의 세계 안에서 공존하는 광경을 보았다. 프로야구팬과 레이디 가가의 팬이 잠실에 모여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레이디 가가의 팬들이 공연장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공연을 방해하던 일부 기독교인들을 관용하고 넘어간 것처럼. 종교적인 깨달음은 교회가 아니라 잠실 주경기장에서, 목사님이 아니라 레이디 가가의 팬도 얻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은 적어도 음란문화는 아닐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택시를 타지 않았다. 2호선 지하철역에는 숨 막힐 만큼 많은 사람이 있었다. 기아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고 야구공을 만지작거리는 꼬마 팬도 있었다. 2대0으로 완봉당한 팀을 응원한 그 꼬마는 지금 얼마나 짜증이 날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택시 기사 아저씨는 빼고. 저주는 한 번만 취소하겠다.
사진제공. 현대카드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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