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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노시인 이적요(박해일)는 곁에서 수발을 드는 제자 서지우(김무열)와 함께 자신의 집 정원에서 낮잠에 빠져있는 소녀 은교(김고은)를 발견한다. 작품 집필에 몰두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서지우의 제안으로 은교는 이적요의 집을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이적요는 점차 생기발랄한 은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문학적 재능이 부족한 서지우는 좀처럼 신작을 쓸 수가 없고, 은교를 통해 젊음을 꿈꾸는 이적요에게서 불길함을 감지한다. 그리고 급기야 이적요의 작업실에서 ‘은교’라는 이름의 원고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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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적요를 건들면 큰 일 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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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허락된 사람의 것인가. 노인은 욕망이 허락된 사람인가. 허락받지 않은 욕망은 추한 것인가. 박범신 작가의 원작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을 그대로 계승한 의 물음표는 제법 크다. 그것은 영화의 목소리가 드높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원하는 대답이 사뭇 도발적이기 때문이다. 비오는 밤, 젖은 아기 새와 같은 몰골로 이적요의 집을 찾은 은교의 교복을 드라이어로 말려주는 이적요의 모습은 영락없이 인자한 할아버지의 그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적요에게 말을 거는 은교를 비추는 카메라는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다리와 허벅지, 입술에 집중을 한다. 다만 인간적인 교감에 그치지 않고 은교를 통해 젊은 날의 자신을 소환하려는 이적요를 바라보는 서지우의 의혹을 영화는 천천히 관객들에게 전염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선명한 질문에 대해 정작 영화는 답변을 망설인다. 욕망의 주체인 이적요는 은교에 의해 흔들릴 뿐 지극히 수동적이며 방어적인 태도만을 보인다. 그런 스승의 속내를 읽어낸 서지우 역시 은교에게 화를 내는 것 이상의 행동을 찾아내지 못한다. 언제나 이들을 찾아오는 것은 은교이며, 두 남자의 심경의 변화를 눈치 채고 그것을 위로하는 것 역시 은교의 몫이다. 문제는 그런 은교가 여고생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고생이라는 것 이상으로 영화가 은교에 대해 설명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고은이라는 대체 불가능해 보이는 배우의 발견으로 조금 더 빛을 얻었지만 원작과 마찬가지로 은교는 누구라도 상관없는 캐릭터로 안이하게 그려진다. 학교에서, 청소를 할 때, 자신의 몸을 드러낼 때의 은교가 좀처럼 하나의 인물로 꿰어지지 않는 것은 그녀에 대한 신비로움을 유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여성의 이미지로만 만들어진 은교가 허상이라는 방증으로 남는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여성, 은교를 통해 비로소 긍정되는 이적요의 욕망은 끝내 고귀함의 재단에서 내려서지 못함으로써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 실패한다. 결국 이적요의 욕망에 스스로 단서를 붙임으로써 영화가 그 욕망을 다시 체면의 함 속에 가두어 버리는 셈이다. 질문자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답을 관객이 대신 말해 줄 필요가 있을까. 그 전에 질문조차도 매혹적으로 써내지 못한 느낌이다. 4월 26일 개봉.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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