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이 좋아한다고 밝힌 마종기 시인은 “나는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내 시는 처음부터 수사학과는 별 관계가 없었지만 그 어느 때에도 진심이 아닌 적만은 없었습니다. 진심 아닌 것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마종기에게 시라면 루시드폴에게는 음악이다. 루시드폴의 5집 은 듣는 이를 의식하기보다 좀 더 스스로에게 집중한 시간의 모음이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듣는 이를 치유했지만, 스스로의 진심에 더 귀 기울인 이번 앨범은 마음의 작은 스크래치에도 한 번 더 약을 덧바르고 한 번 더 호- 하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 주는 듯하다. 연말 공연을 마친 루시드폴과 새해 둘째 날 만났다. 변함없이 낮지만 조근 조근한 말투로 들려준 ‘그저 할 줄 아는 걸 열심히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새해 첫날엔 뭘 했나?
루시드폴: 공연하면서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계속 약 먹고 버텼던 터라 좀 쉬었다. 여름에 장기 공연하고 끝나자마자 바로 녹음 들어가고 녹음하면서 공연 연습하고 공연까지 계속 이어서 하다 보니 몸이 힘들었나보다.
연말 공연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번엔 어땠나?
루시드폴: 좋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교차했다. 공연하면서 새 노래를 거의 처음 제대로 연주한 건데 따끈따끈 한 새 곡이라는 느낌보다는 굉장히 오래 전부터 연주하고 연습하던 곡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이번 앨범은 곡을 쓰고 나서 여름 소극장 공연 때나 녹음할 때 계속 불렀더니 굉장히 낯익고 편안하게 연주를 할 수 있어서 좀 특이했다. 3, 4집 때는 오래 꽁꽁 숨겨왔던 카드를 공연장에서 탁 꺼내 놓는 느낌이었는데.
“기사에서 부각된 것처럼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공연에 처음 온 관객들이 많아 좀 놀랐다.
루시드폴: 나도 놀랐다. 내가 느끼기에 첫날은 70% 이상, 마지막 날은 40% 정도였던 것 같다. 놀라우면서 반갑기도 했다. ‘아, 더 잘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웃음) 여러 번 오신 분들은 공연의 코드를 알지만 그 분들은 작년 연말까지는 (이)승환이 형이나 싸이 씨 공연을 봤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노력한 부분도 있나? 준비한 스위스 개그를 좀 더 한다거나. (웃음)
루시드폴: 그런 걸 생각해놓고 하면 그게 더 웃기지. (웃음) 공연이라는 게 참 묘하다. 여름에 소극장 공연을 30회 했는데 어떤 날은 관객들과 교감하는 느낌이 들고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지만 어떤 때는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성격상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더 힘이 나는 편이다. 이번에도 공연 첫날에 즐거워서 그냥 막 던졌다. (웃음)
소극장에서 미리 들려준 신곡들이 앨범에서도 공연에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불’의 공연 버전은 온도가 훨씬 뜨거워진 느낌이었다.
루시드폴: 나는 직접 쓰고 계속 해 온 곡이라 덜 느끼지만 듣는 분들은 확실히 다르게 느끼겠지. 사실 ‘어부가’나 ‘그리고 눈이 내린다’, ‘불’ 같은 곡은 아무래도 기타 한 대로 치는 거랑 편곡이 돼서 밴드로 연주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앨범은 현 편곡을 맡은 조윤성 씨랑 작업하면서 많이 바뀐 편이다. 그런데 내 곡 중 단조의 곡이 의외로 많지 않다. 우울하다 혹은 슬프다고 얘기를 하지만. 4집에서 ‘레 미제라블’, 3집에서 ‘빛’ 이렇게 거의 앨범에 한 곡 정도? 이번 앨범에서도 ‘불’이 유일한 단조 곡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단조 곡을 잘 못 쓴다. ‘불’은 기타 하나로 노래한 데모는 굉장히 포크적인 느낌이었는데 편곡을 플라멩코 느낌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 플라멩코인데 조금 더 일렉트로니카의 냄새가 나게 작업을 해서 많이 달라졌다. 특히 노래 뒷부분에서 피아노와 기타가 계속 주고받거나 약간 멈췄다고 다시 시작하는 섹션들도 있고 연주가 부각된 곡이다 보니 공연에서도 조금 더 다이내믹한 느낌이 났다.
브라질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 같다.
루시드폴: 사실 브라질 삼바를 염두에 둔 건 ‘그리고 눈이 내린다’ 한 곡이다. 그런데 이번에 브라질, 라틴 음악으로 확 갔냐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그리고 눈이 내린다’ 같은 경우는 건방지게 얘기하자면 제대로 해보고 싶었고, 그럴 만큼의 자신이 있었다. 삼바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좋아하는 음악이라 이렇게 풀고 싶다는 방향이 굉장히 확실했다. 브라질 음악 중에 ‘빠고지’라는 장르가 있는데, 토속적인 빠고지 말고 브라질에서 굉장히 대중적이고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통속적인 빠고지, 딱 들으면 R&B랑 전통 빠고지가 합쳐진 느낌이 나는 음악들을 최근에 굉장히 많이 들었다. 그런 걸 한 번 해보고 싶다. 다만 삼바라면 빼기 힘든 악기가 ‘까바낑유’와 ‘꾸이까’라는 악기인데 그 두 가지는 못 썼다.
앨범 제목이 ‘아름다운 날들’이다. 아무래도 4집의 ‘레 미제라블’과 비교하게 되더라.
루시드폴: 보신 분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 맞을 것이다. 지나간 아름다운 날들, 가슴 시린 노스탤지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굉장히 기억에 오래 남는 시간들이 있지 않나. 돌아갈 수 없고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지 않지만 아름다운 날들. 그리고 앞으로 올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고. 작업할 때 조윤성 씨가 ‘세상은 참 아름다워요’라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보통 무슨 일을 할 때 우리는 “고생했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 그런데 생각보해면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있지만 좋아서 하는 일도 많다. 공연 마치고 내려왔을 때 재밌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는데 누가 “고생했습니다”라고 하면 기분이 묘하다. 사는 게 힘들고 팍팍하고 그래서 위로가 필요하다는 게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의 정서인 것 같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러다 보니 순간순간의 재미있고 행복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 조윤성 씨 말처럼 하루하루가 아름다운 날들일 수도 있지. 나 스스로도 제목을 두고 이런 저런 복합적인 생각을 하게 되더라.
힘든 시기에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좀 더 집중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날들’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다 여러 가지를 거쳐 ‘아름다운 날들’로 끝나는 것 같았다.
루시드폴: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왜 그렇게 다운됐었는지.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게 컸겠지만 단순히 그 사실 때문이 아니라 전후 시간이 힘들었다. 내가 유독 크게 받아들였을 수 있지만 살다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그렇게 특별한 시련은 아닌데 개인적으로 힘들긴 힘들었다. 하지만 투병을 한 것도 망명을 한 것도 양심수로 투옥된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 건데 여러 기사에서 굉장히 많이 힘들었던 것처럼 부각이 되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웃음)
“원래 장난기가 많은 사람” 고통의 절대 크기보다 각자가 느끼는 슬픔 같은 게 있지 않나. 사람은 누구 팔 부러진 것보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니까. 당신의 음악은 그걸 인정해주는 것 같다.
루시드폴: 종교관이기도 한데 기본적으로 사람은 끄달리면서 사는 존재이긴 한 것 같다. 그래서 슬플 때 슬프다고, 외로울 때 외롭다고 인정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그렇지만 염세주의로 흘러가서 슬픔에 함몰되는 건 반대한다. 힘들지 않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감정을 사람들끼리 주고받으면서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으면 좋지.
4집 이후 방송 활동을 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진 것이 이번 앨범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전혀 상관없는 느낌이었다.
루시드폴: 실제로 상관없었다. 인지도가 엄청나게 높아진 것도 아니고 동네 가게 아주머니들이 알아봐주거나 식당에서 주인 분과 얘기 몇 마디 더 할 수 있는 정도니까. 앨범 만드는 데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오히려 내 노래를 막 들려주고 싶다기보다 귀 기울여서 듣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쓰는 게 편하더라. 그래서 앨범 콘셉트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의도한대로 만들 수 있으면 진짜 좋겠지만 나는 곡 하나 하나 써지는 대로 모아 놓은 컬렉션이 앨범이다. 2011년 특히 여름에 쓰고 싶었던 노래들을 집에서 혼자 쓰고 작업해서 실었다. 4집 때의 나랑 어떻게 달라졌나 같은 걸 생각할 겨를 없이.
그럼 콘셉트 말고 원칙이나 고민 같은 것은 무엇이었나?
루시드폴: 음…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롭지만 새롭기 위해 애를 쓰지는 말아야 하고 같은데 달라야 하고 다른데 같아야 하고. 물론 나만 그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닐 거다. 어느 포인트는 변해야 하고 어느 포인트는 잃지 말아야 하나, 추상적이지만 그런 고민을 안 할 수 없었지. 두 번째는 나의 핸디캡과 장점에 대한 것. 핸디캡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유니크함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나는 너무 싫은데 다른 사람은 좋아할 수도 있고. 그런 게 꼬여 있다. 지인이나 음악 하는 선후배들이 너는 기타 하나에 노래하는 게 제일 멋있다고 해주는 것만 놓고 봐도 그렇다. 기타 한 대나 피아노 정도로 데모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훨씬 더 나답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안주한다는 생각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 해서 20집을 내는 가수가 된다면 지금의 음악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 텐데 왜 지금부터 나의 유니크함이 여기까지고 이것만이 장점이라고 선을 그어야 하는 걸까 라는 반성을 많이 했다. 이건 매번 신경을 쓸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 조금은 달라진 게 하고 싶은 걸 하자, 길게 보자, 두려워 않고 계속 하다보면 음악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폭도 넓어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 방송에서 스위스 개그를 전파할 때는 솔직히 보면서 안절부절 못 했다. (웃음) 그 다음엔 싸늘한 반응이 돌아와도 꾸준히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루시드폴: 원래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다. 어렸을 때도 굉장히 까부는 아이였고. (웃음)
KBS 크리스마스 특집에서 하이디로 변신한 걸 보면서 저 사람 안에 즐거움과 수줍음, 장난기와 뻔뻔함이 섞여있구나 싶었다.
루시드폴: 딱 그런 거다. 다 섞여 있는 거지.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상황에 있냐에 따라 어떤 부분이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하염없이 즐거워서 춤추고 떠들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하염없이 차분해지고.
가끔 일탈을 하지만 (웃음) 기본적으로 조용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한데, 이런 사람이 세상이나 사람에게 갖는 위화감이 궁금하다.
루시드폴: 다르다는 의미라면 대학 때 많이 느꼈다. 지금은 많이 편해진 편인데 대학 때는 훨씬 예민했다. 친구들 표현을 빌리자면, 어두웠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다들 공부가 제일 중요하니까 고향에서 똑같은 교복 입고 어영부영 지내면서 잘 몰랐는데 대학은 정말 너무 달랐다. 아무 것도 적응할 수 없을 만큼. 공대 우리 과 친구들, 다 착한 애들이었겠지만 정서의 온도 차이가 컸다. 누가 잘났다 못났다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너무 달랐던 거지. 사람들이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 내가 호기심을 갖고 있거나 나한테 호기심을 가져 주거나 공통점이 많으면 빨리 친해지지 않나. 다르더라도 궁금하면 괜찮은데 궁금한 점도 안 생기고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도 않고, 같이 나눌 수 있는 게 없는 친구들이 태반이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루시드폴: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대학을 간다는 건 음악을 하겠다는 의미가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대 친구들이 몇이나 되었겠나. 서울이라는 곳에 굉장히 큰 환상이 있었던 거지. 서울 애들은 음악도 많이 알고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도 한 친구들이 많이 있겠지, 만날 수 있겠지 싶었다. 대학만 가면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무도 없었다. 100%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폭 넓게 사람을 만나는 데 벽이 되었던 것 같다. 유럽에 있을 때는 더 심했지. 다 엔지니어들이었고 문화나 국적이나 모든 게 너무 다르니까. 음악 하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나는 전업뮤지션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위화감이 항상 있었다. 전업으로 음악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10대 때도 차트 1위곡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한 문장을 품고 간 대학에서 그게 좌절되었고 생각보다 꽤 오래 이어진 셈이다. 먼 길을 돌아서라도 여기에 와야 할 만큼 왜 그렇게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건가.
루시드폴: 10대 때는 어떤 본능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 생물학적 욕망 중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 음악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고 못 견뎠다. 어딜 가나 음악이 있어야 하고 기타가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아침에도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마음이 되게 허 하더라. 여름부터 계속 뭔가를 하다가 앨범도 나오고 공연도 끝났으니까. 큰 두 가지를 끝내 놓고 찾아오는 그 허전한 기분이 견딜 수 없이 크게 느껴지더라. 그 순간 가장 먼저 생각한 게 음악이었다. 최근 주문했던 CD들을 집에서 계속 듣고 있어야겠다, 지금 곡을 조금 더 쓸까 이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드는 걸 보면서 나는 왜 음악을 붙잡고 있는 혹은 음악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일까, 왜 그럴까를 생각하게 되더라.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사람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10대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게 많고 듣고 싶은 게 많다는 건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잃어가는 사람도 많이 봐 왔으니까.
두려움 같은 건 없나?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힘들지만 생에서 바라는 유일한 어떤 것을 어느 정도 손에 쥐었을 때 그 다음은 어떡하나 같은.
루시드폴: 가장 큰 두려움은 빨리 질리는 편이라는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건 진득하게 붙들어 늘어지는 편이지만. 음악도 그 동안 스쳐 지나갔던 많지 않지만 적지도 않은 관심사들에 비하면 꾸준한 편이지. 그렇기 때문에 자기 반복을 되게 싫어한다. 공연에서도 매번 같은 멘트를 잘 못 하겠다. 스스로 새롭다고 생각하지 못 하면 재미가 없다. 혹시라도 같은 노래를 또 하는 게 지겨워지면 어떡하나, 이게 가장 두려운 부분 중 하나다. 이번에 그런 의미에서 약간 힘들었다. 예전 곡들을 하는 게 재미없어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달라져야 하냐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이 딜레마를 풀어야 한다. 그 다음은 음악적으로 고갈되면 어쩌나 하는 것. 그래도 이건 덜 두려운 게 다행히 못 하는 것도, 못 해 본 것도 많아서 여지가 보인다.
전업 뮤지션이 된 뒤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루시드폴: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 굉장히 비장했었다. 술을 막 마시다가 (유)희열이 형한테 “결혼 포기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웃음) 그 말에 굉장히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지. 어떻게든 나 하나를 건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지만 결혼을 하면 원하지 않게 가장이 되고 사회적인 포지션이 달라지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돈이 필요하니까. 벌려면 과외를 하든 뭘 하든 벌수도 있겠지만 피할 수 없는 일들이 되지 않나. 그런데 한국에 와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그 때는 모아놓은 돈도 없고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복잡했는데 다행히 잘 풀려가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바뀌었나? (웃음)
루시드폴: 좀 바뀌었다. 결혼은 해도 아이까지는 아직 좀. (웃음) 아무튼 처음 한국 들어왔을 때는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꾸려나가면서 살면 되겠다는 감은 좀 생기더라. 살 수 있을 것 같다.
음악 말고 꾸준히 흥미를 갖는 건 없나?
루시드폴: 야구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고향 친구들에 비해서 엄청난 팬은 아니다. 사실 유학 마지막 해에 너무 향수를 많이 느껴서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정말 야구를 좋아해서였다기보다 고향 팀이 경기하는 걸 보면서 내가 저기 있는 착각 같은 걸로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참 취미가 없다. 그래서 소중한 걸 하나 잃으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도 좋아하고 웹툰도 보고 맛집도 찾아다니는 사람이면 삶이 조금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음악이랑 누구 좋아하면 연애 하는 것, 이게 삶에서 차지하는 게 굉장히 크다.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절대량이 적어서 몇 개의 소중한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루시드폴: 그럴 지도. 좋아한다, 사랑한다, 친하다 이런 표현을 굉장히 아끼는 편이다. 정~말 친해야 친한 거고 정~말 좋아해야 좋아하는 거고. 대신 뭘 좋아하면 굉장히 깊게 좋아하는 편이고. ‘좋아한다’의 역치 같은 게 너무 높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않나.
요즘 시대에 기타와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음악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 살아가는 게 과거와는 다른 의미이지 않나. 퇴행적이라고 거칠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루시드폴: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웃음) 하지만 나는 10대 때도 차트 1위곡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주류가 싫어! 이런 게 아니라 한 번도 꽂혀본 적이 없다. 내 취향이 그런가 보지 뭐. 그리고 다수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만인 것 같다. 물론 다수니까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얘기하면 음악은 시대와 큰 상관이 없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보편적인 얘기를 하고 어느 세대, 어느 시점, 어떤 사람들이 들어도 공감하는 노래들은 있다. 내가 트렌드를 무시한다거나 퇴행적이다거나 하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그저 할 줄 아는 걸 열심히 하는 게 유일한 일인 것 같다. 할 수 있는 건 할 줄 아는 것이지.
스타일리스트. 민선휴 / 헤어. 유민희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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