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태도가 편곡에도 영향을 미쳤나? 의도적으로 일렉트로니카적인 사운드를 넣은 곡 외에는 어쿠스틱 기타의 비중이 굉장히 커졌다. 포장을 자제하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
윤종신: 일단 이번에는 이근호와 피아노로 쓴 몇 곡 외에는 모두 통기타로 작곡했다. 그 곡들이 다 예전에 만든 곡이기도 하고. 요즘 만든 곡들은 다 통기타로 그때그때 써서 그걸 바탕으로 편곡했다. 그래서 기타와 관련된 편곡자들을 찾아 나서다 조정치와 정지찬에게 맡겼고.

조정치가 주도적으로 나선 ‘치과에서’는 거의 기타 한 대로만 끌고 간다.
윤종신: 기본적으로 내가 요즘 기타가 좋고, 포크가 좋다. 여전히 피아노도 좋지만 윤종신의 피아노 발라드는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었고, 지금도 피아노 위주로 편곡하는 사람들은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웃음) 대표적으로 ‘본능적으로’가 정말 통기타로 딱 한 시간 만에 쓴 곡이다. 순간순간에 내가 하고 싶은 데로 나오는 거다.

“잡지사가 기획하듯 음악으로 기획을 했다”
윤종신│“어느 순간 1인자나 2인자에 상관없이 내 색깔을 가지고 싶더라” -3
윤종신│“어느 순간 1인자나 2인자에 상관없이 내 색깔을 가지고 싶더라” -3
‘본능적으로’와 ‘이성적으로’가 이 앨범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본능으로 한 번 나오고, 그 다음에는 뒤집어서 이성으로 하고. 정말 속전속결 기획 아닌가. (웃음)
윤종신: 매 달 프로젝트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낼 수 있었다. 무작위로 싱글만 던지는 건 무료하니까. 12월은 12월에 맞게, 가을 분위기는 확실히 가을 분위기 내니까 ‘이별의 온도’라고 온도 얘기 나오고. (웃음) ‘바래바래’는 7, 8월 해변 생각하면서 여름의 나이트클럽 같은 거 생각했고. (웃음) 그리고 잡지사도 기획을 하지 않나. 나도 음악적으로 기획해서 똑같은 곡에 다른 편곡과 가사를 붙여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뮤지션들이 흔하게 할 수 있지만 좀처럼 실행에 안 옮긴 생각인데, 이란 작업방식을 택하면서 되게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매월 만드는 싱글에다가 목숨 걸 필요가 없으니까.

뭔가 “윤종신답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웃음)
윤종신: 제작자들이 에 대해서 매달 수익을 낼 수 있겠냐고 하더라. 그런데 이건 수익을 바라면 할 수 없다. 그래서 단지 노래만 부른다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싱어 송 라이터들은 해볼 만하다고 본다. 매달 한 곡씩 내다가도 어느 달에는 느낌이 와서 한 장의 앨범으로도 낼 수 있는 방식 아닌가. 창작자는 더 자유롭게 뭔가 해볼 수 있다고 본다.

정말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창작인 거다. (웃음)
윤종신: 음악은 건축 같은 분야와는 다르다. 플레이어들의 에너지는 매뉴얼로 정의할 수 없다. 그 에너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가르칠 때도 매뉴얼대로 가르치지 말아야 하고. 음악은 기댈 데가 없는 사람이 더 잘하는 것 같다. 막연하고 답답한 상태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자기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론을 배우는 게 필요하지만, 어떤 사람은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연극영화과 가는 게 좋을 수도 있는 거다.

트위터에 얼마 전에 작곡과 작사에는 우열이 없다고 한 게 생각난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뭐라고 생각하나.
윤종신: 그때그때 달라요. (웃음) 보통 한 업계가 체계가 잡히면 규범을 만들고 룰을 만들고 매뉴얼을 만든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보다는 여러 가지가 난립하는 게 최고라고 본다. 막 사기꾼도 많고. (웃음) 갑자기 계룡산에서 내려와서 노래했다고 (웃음)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게. 요즘에는 오디션 볼 때도 무슨 리스트 정해놓은 것처럼 정해진 노래를 불러서 어필하려고 하니까.
윤종신: 요즘은 연예인에 양아치가 없다. (웃음) 무슨 사고를 치라는 게 아니라, 너무 교과서처럼 바른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아이돌의 경우 7-8년 동안 합숙소에 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면 그 감정을 소화하기 쉽지 않을 거다. 물론 그런 아이돌도 필요하겠지만, 음악계에는 좀 막사는 사람도 필요하다. 80~90년대에는 그런 사람들이 연예계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야생마 같은 애들, 약은 야생마 같은 애들이 있어야 한다.

“주류가 계속 쳐다보는 비주류. 그 정도 포지션이면 만족한다”
윤종신│“어느 순간 1인자나 2인자에 상관없이 내 색깔을 가지고 싶더라” -3
윤종신│“어느 순간 1인자나 2인자에 상관없이 내 색깔을 가지고 싶더라” -3
그런 점에서 예능이야말로 여전히 본능이 지배하는 곳 아닌가?
윤종신: 예능이야말로 룰이 파괴된 지 오래됐다. 내일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가장 역동적이고, 각종 문화의 허브가 될 만큼 가장 뜨거운 장르가 됐다고 생각한다. 정말 본능적이고 직관적이다. 음악은 그래도 녹음할 때 따로 시간을 내지만, 예능은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걸 본능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특히 KBS 에서 신동엽은 굉장히 본능적인 것 같다. 오히려 (강)호동이와 (유)재석이는 본능도 좋지만 굉장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을 같이 가져가는 것 같고.

그러면 당신은 어떤 본능을 가졌나.
윤종신: 나는 포지션론자다. 어느 순간부터 나 혼자 정면 샷을 받으면서 진행하는 틀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예능에는 1인자, 2인자, 3인자가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포지션이 있는 거다. 스트라이커가 있으면 리베로도 있고 윙도 있다.

메시. (웃음)
윤종신: 말하자면 (웃음) 메시. 예를 들면 강호동 유재석은 내가 보기엔 홍명보 같은 사람들이다. 골은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사람이 넣는 거고. 나는 개인적으로는 미드필더나 윙이 되고 싶다. 골은 누가 넣든 간에 상관없다. 나는 언젠가 메인 MC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2인자, 3인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행은 MC가 하고, 정말 웃기는 사람은 사이드에 앉아서 도울 수도 있다. 메인 MC가 너무 흐름을 주도하면 고리타분해질 수도 있다.

최근 예능의 흐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윤종신: 크게 보면 PD의 예능이 됐다고 본다. MC보다 PD가 더 중요해졌다. 재석이와 호동이의 장점 중 하나도 자신의 이상과 맞는 PD와 일하는 시야를 가졌다는 거다. ‘라디오스타’도 출연자들은 마음대로 놀고, 제작진이 그걸 재해석한다. PD의 기획과 사후 편집이 제일 중요하다. 영화처럼 연출자의 문화가 된 거다. 도 그렇고.

도 ‘라디오스타’ 못지않게 당신의 특기가 잘 발휘되는 것 같다. 성시경이 출연했을 당시에는 거의 음악 토크쇼 같았다. 당신의 역할이 뭔지 보여준 것 같다.
윤종신: 어느 순간 내가 호동이나 재석이와 일을 같이하지 않게 됐다. 두 사람하고 사이가 나빠서 안 하는 게 아니고 (웃음)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진 프로그램을 끌고 가게 됐다. 나도 어느 순간 1인자나 2인자에 상관없이 내 색깔을 가지고 싶더라. Mnet 가 그런 실험 중 하나다. 가끔 같이 하는 (유)세윤이하고 이야기하는데, 우리 둘이 코드는 조금 다르지만 함께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해보니까 우리식의 웃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뭔가 익스트림이지. (웃음)
윤종신: 그렇지. 나는 나 좋아하는 사람들만 상대하는 게 좋다. 기본적으로 나는 ‘국민가수’나 ‘국민MC’라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다. (웃음) 정말 국민MC라고 할 만한 재석이나 호동이는 아주 특수한 경우다. 내 코드를 모르는 사람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소재가 줄어든다거나, 어떤 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한다거나 하는 건 MC를 창작자로 생각했을 때 어려운 일이다. ‘국민’자 붙으면 다 힘들다. ‘국민 심사위원’ 같은 거 정말 안 돼. (웃음) ‘국민 심사위원’은 황문평 선생님 같은 분이고. (웃음)

황문평, 정영일 이런 분들. (웃음)
윤종신: 나는 앞에 ‘국민’자 붙을 사람이 아니다. (웃음) 대신 ‘국민’ 자가 안 붙는 사람들이 잘 먹고 살 수 있으려면 마켓이 잘 형성 돼 있어야 한다. 일본처럼 오타쿠적인 음악을 해도 앨범이 5만 장씩은 나갈 수 있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내년 행보는 그 마켓에 관한 행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윤종신: 맞다. 나도 많이 애를 써야지.

그러면 ‘인간 윤종신’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윤종신: 트위터에 ‘윤종신당’이 있는데, 캐치프레이즈가 ‘존재감 있는 비주류’다. 주류가 계속 쳐다보는 비주류. 그 정도 포지션이면 만족한다. 나를, 또는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빵빵 터뜨릴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웃음)

글. 강명석 two@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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