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현역 레전드 박태환이 첫 금메달을 향해 물살을 가르고 있을 때, 같은 시간 방영된 KBS ‘1박 2일’에선 그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다, 스포츠 이벤트. 강호동과 이만기라는, 씨름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시절을 대표하는 두 레전드의 20여년만의 리벤지 매치는 온전히 승부 그 자체에만 집중됐다. 결과는 모두 알고 있듯 이만기, 그리고 ‘1박 2일’의 승리였다. 이날 ‘1박 2일’ 시청률은 아시안게임 중계까지 제치며 소폭 상승했고, 수많은 연예 매체는 ‘훈훈, 감동’이라는 수사와 함께 호평을 쏟아냈다.
모래판에서 그러했듯, 예능에서도 하지만 한국 스포츠 역사에 남을 특급 이벤트를 유치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번 ‘1박 2일’이 첫 시청자 참여 특집이나 글로벌 특집, 혹은 화이트 아웃을 경험한 지난해 혹한기 캠프 수준의 베스트 에피소드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왜 강호동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는 최고의 에피소드일 수 있겠다. 이번 씨름 대결을 비롯해 그는 종종 자신의 씨름 커리어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그 엄청난 기록 이상으로 중요한 건 씨름인으로서의 정체성 혹은 습관이다. 은지원이 강호동의 머리를 언급하며 샅바를 잡은 그 짧은 시간 온갖 생각을 하는 강호동의 표정을 언급한 건 정확한 지적이다. 씨름은 모든 격투기 중 가장 짧은 호흡으로 승부가 나는 종목이다. 샅바를 붙잡고 맨몸을 맞댄 상태에서 느껴지는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판단을 내려야하지만 바둑이나 장기처럼 장고(長考)가 허용되지는 않는다. 그의 전성기 승률은 77.3퍼센트. 이것은 그 짧은 판단이 22.7퍼센트 틀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망설이면 100퍼센트 진다. 때문에 순간적으로 승부를 걸어야한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인 과정이다. 울릉도로의 단풍놀이가 태풍으로 취소됐을 때, 빠른 시간 안에 이만기와의 씨름 대결이라는 대박 카드를 제시하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샅바를 잡은 승부사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는, 모래판에서 그러하듯 순식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지지 않기 위해 ‘올인’하는 게 가능한 유일한 MC 물론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 단순히 복불복에서 전원 야외취침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과도한 승부욕을 부리며 제작진과 무모한 협상을 할 때, 혹은 미션에서 동생들을 다그칠 때의 강호동을 보는 건 종종 불편하다. 그가 목청껏 외치는 ‘버라이어티 정신’이 쿨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에게선 승과 패, 그 중간은 없는 세계를 살아온 사람 특유의 조급증이 있다. 그리고 그 조급증이 충분한 재미와 감동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때, 그의 방식은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라이벌 유재석도 흥행에 실패할 때가 있지만 위기론은 있을지언정 불편하다는 반응은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이만기와의 재대결도 불안 요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분명 두 사람의 대결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채널을 고정할 이유는 충분했지만, 그것이 ‘1박 2일’ 특유의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보장은 없었다. 가정법이지만 이 대결에서 강호동이 2 대 0 정도로 승리했더라면, 그냥 제작진이 멤버들에게 저녁을 샀더라면 후반부가 그처럼 훈훈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강호동이 모래판에서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달려들어 팽팽한 승부의 질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만기의 승리와 배려가 빛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조금이라도 예능감이나 꼼수가 개입했더라면 아무 것도 남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승부는 온전한 스포츠였다. 많은 이들이 스포츠에 대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어떤 선수도 드라마와 명승부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단지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그 과정에서 그런 예상 밖의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뿐이다.
그래서 지난 ‘1박 2일’은 궁극적으로 승부사 강호동의 승리였다. 물론 여전히 그의 승부사적 방식이 예능 MC로서 최적화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분명 그는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린 기획을 만드는 설계자 타입이 아니다. ‘올인’한 패가 졌을 때의 복안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니, 지지 않기 위해 ‘올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때론 어떤 치밀한 설계와 논의로도 만들 수 없는, 오직 자신이 내린 결단에 한 치의 의혹 없이 뚝심 있게 스스로를 밀어붙일 때만 나올 수 있는 벅찬 순간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이것이 가능한 예능 MC는 단 한 명이고, 그의 이름은 강호동이다.
글. 위근우 eight@
모래판에서 그러했듯, 예능에서도 하지만 한국 스포츠 역사에 남을 특급 이벤트를 유치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번 ‘1박 2일’이 첫 시청자 참여 특집이나 글로벌 특집, 혹은 화이트 아웃을 경험한 지난해 혹한기 캠프 수준의 베스트 에피소드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왜 강호동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는 최고의 에피소드일 수 있겠다. 이번 씨름 대결을 비롯해 그는 종종 자신의 씨름 커리어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그 엄청난 기록 이상으로 중요한 건 씨름인으로서의 정체성 혹은 습관이다. 은지원이 강호동의 머리를 언급하며 샅바를 잡은 그 짧은 시간 온갖 생각을 하는 강호동의 표정을 언급한 건 정확한 지적이다. 씨름은 모든 격투기 중 가장 짧은 호흡으로 승부가 나는 종목이다. 샅바를 붙잡고 맨몸을 맞댄 상태에서 느껴지는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판단을 내려야하지만 바둑이나 장기처럼 장고(長考)가 허용되지는 않는다. 그의 전성기 승률은 77.3퍼센트. 이것은 그 짧은 판단이 22.7퍼센트 틀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망설이면 100퍼센트 진다. 때문에 순간적으로 승부를 걸어야한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인 과정이다. 울릉도로의 단풍놀이가 태풍으로 취소됐을 때, 빠른 시간 안에 이만기와의 씨름 대결이라는 대박 카드를 제시하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샅바를 잡은 승부사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는, 모래판에서 그러하듯 순식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지지 않기 위해 ‘올인’하는 게 가능한 유일한 MC 물론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 단순히 복불복에서 전원 야외취침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과도한 승부욕을 부리며 제작진과 무모한 협상을 할 때, 혹은 미션에서 동생들을 다그칠 때의 강호동을 보는 건 종종 불편하다. 그가 목청껏 외치는 ‘버라이어티 정신’이 쿨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에게선 승과 패, 그 중간은 없는 세계를 살아온 사람 특유의 조급증이 있다. 그리고 그 조급증이 충분한 재미와 감동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때, 그의 방식은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라이벌 유재석도 흥행에 실패할 때가 있지만 위기론은 있을지언정 불편하다는 반응은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이만기와의 재대결도 불안 요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분명 두 사람의 대결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채널을 고정할 이유는 충분했지만, 그것이 ‘1박 2일’ 특유의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보장은 없었다. 가정법이지만 이 대결에서 강호동이 2 대 0 정도로 승리했더라면, 그냥 제작진이 멤버들에게 저녁을 샀더라면 후반부가 그처럼 훈훈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강호동이 모래판에서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달려들어 팽팽한 승부의 질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만기의 승리와 배려가 빛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조금이라도 예능감이나 꼼수가 개입했더라면 아무 것도 남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승부는 온전한 스포츠였다. 많은 이들이 스포츠에 대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어떤 선수도 드라마와 명승부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단지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그 과정에서 그런 예상 밖의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뿐이다.
그래서 지난 ‘1박 2일’은 궁극적으로 승부사 강호동의 승리였다. 물론 여전히 그의 승부사적 방식이 예능 MC로서 최적화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분명 그는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린 기획을 만드는 설계자 타입이 아니다. ‘올인’한 패가 졌을 때의 복안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니, 지지 않기 위해 ‘올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때론 어떤 치밀한 설계와 논의로도 만들 수 없는, 오직 자신이 내린 결단에 한 치의 의혹 없이 뚝심 있게 스스로를 밀어붙일 때만 나올 수 있는 벅찬 순간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이것이 가능한 예능 MC는 단 한 명이고, 그의 이름은 강호동이다.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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