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드라마라는 신분을 노출했을 때 야유를 듣던 시대는 지났다. 한동안 공중파와 다름을 보여주기 위해 ‘19금’에 매달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의 케이블 드라마는 오히려 공중파 드라마의 지독한 습관에 답답해 있던 시청자의 리모컨을 빼앗는다. 특히 매회 치밀한 과정 끝에 결론을 도출해내는 장르물은 빠른 스피드와 과감한 연출, 신선한 발상으로 케이블 드라마의 꽃이 되었다. 현재 방송 중인 MBC DRAMA의 와 tvN의 역시 조선시대 ‘수사’에 초점을 맞춰 눈길을 끈다. < CSI >류의 과학수사를 펼치는 와 < X-file >류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 각각 혼란의 시대인 구한말과 광해군 원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집단 속으로 윤이나, 김교석 TV평론가가 뛰어들었다. / 편집자주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짓을!” 참혹한 죽음을 바라보며 내뱉는 비통한 한마디도, 어느 순간의 인간이 금수보다 못한 존재임을 가려주지는 않는다. MBC DRAMA (이하 )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경계에 서 있다. 마치 너무도 다른 것이 아무렇게나 뒤섞여있어 언제 어디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개화기의 조선처럼 위태롭다. 아주 작은 변화로 균형이 깨지는 순간, 인간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금수가 된다. 의 순검들은 그런 인간들이 저지른 일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만 그 일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의 탓을 쓰고는 저지를 수 없는 일”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존재들이다. 언제 어떤 상황일 때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지, 이미 인간이기를 저버린 인간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알아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검들의 어깨 위에는 생각보다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다.

구한말의 숨은 얼굴을 꿰뚫어보다
세 번째 시즌에 이르러 의 순검들은 더 자주 실패하기 시작했다. 5화 ‘멸족’에서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의 일족을 모두 죽여 버렸던 청년은 채 수사를 마치기 전에 자수했고, 범인보다 계속 한 발자국 늦은 상태로 이야기를 끝맺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이미 해결했다고 믿었으나 명료한 결말을 맺지 못한 사건은 오히려 나중에 순검들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지혜로 진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실패들은 가 철저한 사건수사와 순검들의 뛰어난 활약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전 시즌들에 비해 장르물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의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퇴보가 아니라 드라마로서의 진보에 가깝다. 모든 면에서 딱 떨어지게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미완일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의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 의 목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 ‘조선과학수사대’에서 과학이 아닌 조선에 방점을 찍는다. 순검들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과학적인 방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추리의 방식이 아니라 죽음에 숨겨진 사연들이었다. 구한말. 의 망자들은 사연과 슬픔에 더해 시대의 아픔까지 끌어안고 죽어간다. 인간을 순식간에 금수만도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가난이, 목을 졸라오는 계급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바꾸어 버린 약한 개인의 인생이,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 아귀 같은 탐욕이 그 안에 있다. 그 시대의 조선은 개인의 삶을 지켜주기는커녕 나라 그 자체를 지키기도 어려웠으므로, 눈앞의 권력과 돈 앞에서 가장 약한 것부터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슬픈 비밀을 간직한 숫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시절부터 부국(富國)에 굴복해 온 역사의 아픈 상처는, 아이를 살해하고도 처벌받지 않은 양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려는 아비의 애끊는 부정으로 드러난다.(‘공사관 유괴사건’) 이 참혹하고 슬픈 죽음들 앞에서 순검들은 수사를 하다 말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 깊이 비통해할 수 밖에 없다. 인간으로 살 수 없어 금수가 된 자 앞에서 그럼에도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슬픈 얼굴, 이 보여주려는 구한말의 표정이다.

인간의 슬픔을 정직하게 녹여내기 위해
그렇기 때문에 10화에서 표면 위로 부상한 차건우 순검(민석)과 서연두 순검(민지아)의 러브라인은 지금까지 이 쌓아온 탄탄한 스토리 위에 어색하게 튀어나온 못처럼 보였다. 유괴된 아이의 이야기에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며 우는 서순검을 위로하는 것과 당장 최도곤 순검(성지루)의 목숨이 위태로운 판국에 부적이라며 나누는 입맞춤은 전혀 다르다. 이 망자들의 사연 이면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면서 순검들의 사연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해결책이 러브라인이라면 그것은 너무 안일한 선택이다. 많은 의미와 사연을 담아 무거운 사건들과 순검들의 이야기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면 지금까지 쌓아온 캐릭터들의 이야기 내에서 살을 붙여가는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은 100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슬픔을 정직하게 녹여낸 시즌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음 시즌의 긍정적인 모델로 남는 것, 그게 의 남아 있는 절반의 숙제다.
글 윤이나

몸을 사리지 않는 불나방 같은 남자가 있다. 그의 스승은 괴이한 것(UFO)을 보고 역모의 빌미가 될까 장계를 올렸으나 오히려 혹세무민한 반역자로 몰린다. 사헌부 감찰인 김형도(김지훈)는 그런 스승을 구하기 위해 모종의 세력들과 협상하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이 올가미였고 스승은 그가 벌인 상황들까지 모두 떠안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 뒤에는 상상치도 못한 미지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김형도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신비로운 비밀, 미천한 인간이 알 수 없는 현상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신무회에 합류하게 된다.

케이블 드라마의 변모
<별순검3> vs <기찰비록>│‘시대’가 만드는 드라마
vs <기찰비록>│‘시대’가 만드는 드라마" />tvN 은 케이블 드라마이기에 흥미롭다. 예전 케이블 드라마가 저예산이 도드라지는 섹시코드 일색이었다면, 2007년 방송된 시즌제 드라마 tvN 를 거친 케이블드라마는 ‘미드’를 벤치마킹한 다양한 장르물을 속속 제작하고 있다. 단순히 공중파에서 시도할 수 없는 자극적인 소재로 틈새를 노린 것이 그 출발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공중파 드라마와 아예 지향점을 달리하는 것이다. 매회 다른 에피소드와 기승전결이 필요한 단막극 형식의 장르물. 감정선이 얽히고설키는 것이 아니라 매회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 공중파의 천편일률적인 연속극들과 달리 배경은 우리의 것이나 내용은 ‘미드’를 차용한 벤치마킹 전략으로 케이블 드라마만의 역사와 영역을 만들고 있다. 은 이 모든 흐름의 가장 정확한 현재 좌표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 갈등은 있지만 스토리가 뻔한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때, 은 그 기획만으로도 드라마 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중이다.

허나 기획의 참신함만을 논하기에 이 갖는 의미는 조금 남다르다. 은 기존의 공식과 새로운 명제의 만남이다. 조선시대와 < X-file >의 결합. 하지만 이 < CSI >를 조선의 아날로그적 수사기법으로 풀어낸 MBC DRAMA 과 다른 점은 다루는 대상이 기이하다는 점이다. 하여 그냥 범죄가 아닌 UFO, 음모론, 환상 등 지금도 풀리지 않은 의문을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어떻게 그릴지, 그 거대한 현상 앞에 맨몸으로 선 김형도의 수사는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설정 자체에서부터 궁금증이 배가 된다. 과거를 무대로 삼는 사극과 상상력이 기반이 된 SF가 조우한 시대 배경, 공포와 SF와 미스터리와 액션을 오가는 데서 발생하는 혼란스러운 감정은 이 과정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한 예로 반상의 차별이 없고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는 무릉도원, 죽고 살기를 반복하는 새 땅이 있다는 사차원 마을 에피소드에서부터 현실과 환상이 뫼비우스 띠처럼 엉킨 실타래를 풀려는 김형도를 쫓다 보면 그 몽환이 영화 아니 보르헤스의 미로까지 언급할 수 있을 지경이다. 치밀하게 깔아놓은 복선들과 스테디캠과 지미짚의 카메라워크가 만들어낸 긴장은 작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큰 흡입력을 만들어낸다.

은 딴짓을 하지 않는다
또한 현재 드라마 판도라는 공시적인 흐름에 입각해볼 때 의 가장 큰 매력은 당연하게도 공중파 드라마는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스토리 라인에 있다. 김형도를 꼭짓점 삼아 허윤이(임정은)가 머리, 장만(조희봉)이 수족(및 사건유발자) 역할을 하며 세 가지 맛 파스타처럼 각자 자신의 영역 내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극의 흐름과 긴장감을 만드는 데 있어 연애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선남선녀인 김형도와 허윤이 사이에 모호한 감정이 쌓이긴 하지만 본격 러브라인으로 발전해 수사과정에 할애할 러닝타임을 잡아먹지 않는다. 연애타령뿐만 아니라 정교하게 그려놓은 미로와도 같은 수사과정 역시 인물 간의 갈등으로 슬쩍 피해 넘어가지 않는다.

는 더 이상 참신하다는 평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틈새시장이 아닌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해 노하우를 쌓았다. 소재의 흥미로움과 스토리의 흡입력으로 승부하는 ‘이야기꾼’ 드라마라 불릴만하다. 또한 ‘미드’의 수혜를 받고 자란 세대의 발전 가능성과 사극의 진화 역시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진실은 아니어도 사실일 수는 있는 일, 그리고 사실이 아닐지라도 현실일 수 있는 것. 속의 기묘한 세상과 달리 이 드라마를 위시한 케이블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상은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라 현실이고 사실이다. 을 거쳐 은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르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글 김교석

글. 윤이나(TV평론가)
글. 김교석(TV평론가)
편집. 장경진 thre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