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은 예측하기 힘든 얼굴을 갖고 있는 배우다. 코믹하면서도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듯한 이목구비로 그는 경찰과 깡패, 광대와 칼잡이, 백치와 악인 사이를 넘나들고 자신이 연기 해 온 수많은 ‘양아치’ 들에게 서로 전혀 다른 얼굴을 부여한다. 영화 에서 그가 맡은 경상도 선원 박상업 역시 뇌수술 후 해맑은 태도와 기억을 되찾으며 보이는 섬뜩한 광기의 간극만큼 코미디와 스릴러를 팽팽하게 오간다. 그러나 이 배우가 예측하기 힘든 것은 단지 연기를 할 때 뿐만은 아니다. 생생한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직접 현지를 찾아다니고 동물(영화 )을 연기할 때조차 수십 가지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현장에 오는 것으로 유명한 이 완벽주의자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를 꼽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냇 킹 콜의 “키자스, 키자스, 키자스~”를 흥얼거리기도 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코미디가 장기인, 이른바 ‘감초 조연’ 배우 특유의 좌중을 장악하는 입담도 실제의 그에게서는 듣기 힘들다.
기자들의 시선이 한 몸에 쏟아지는 기자간담회 자리를 영 어려워하고 혼자 있을 때 제일 마음이 편하다는 유해진을 위해 매니저는 인터뷰 전, 그와 교제 중인 여배우에 대한 질문은 되도록 삼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언급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진 바였다. 그러나 사진 촬영을 위해 인사동 골목을 걷던 유해진에게 손자 업고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는 “얼른 결혼해요~”라는 덕담을 건넸고 그를 보자마자 “와악!”하며 반기던 여고생들은 큰 소리로 “김혜수 짱!!”이라 외쳤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슬쩍 눈치를 봤지만 그는 불편한 기색 없이 웃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유해진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으신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동안 작품에서 코믹하거나 친근한 캐릭터를 많이 맡으셨잖아요. 그래서 좀 전처럼 현실에서 마주치는 분들도 영화 속에서와 비슷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굉장히 친하게 말을 붙이시는 것 같아요. 당황스럽지는 않으세요?
유해진 : 좋아요, 진짜로. (웃음) 이런 일을 하면서 대중들한테 외면당하는 것만큼 힘든 게 없거든요. 그런데 저를 그렇게 반가운 친구 만나듯 대하시면 저도 반갑죠. 다른 분들한테처럼 스타라고 멀리서 ‘어머 어머!’ 하고 그냥 가 버리시는 것보다 좋기도 하고, 그렇다고 저한테 그분들이 막 극성스럽게 대하시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시사회 때는 말씀이 참 없으시더라구요. (웃음)
유해진 : 사실 기자간담회 같은 자리는 좀 부담스러워요.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들 외에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거고, 촬영이 작년 여름에 끝났으니까 그 뒤로 1년 만에 영화를 보여드리는 거였거든요.
“작년 여름은 정말 화끈하게 보낸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신체적으로 부자유스런 두 남자가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상황이나 전개 방식 같은 게 유럽식 코미디 같기도 하고, 천호진 씨와 유해진 씨의 2인극을 보는 것 같기도 했어요. 이렇게 독특한 시나리오를 선택하신 계기는 뭐였나요.
유해진 : 일단 내용 자체가 신선하고 특이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2인극이나 부조리극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처음에 연극을 하다가 영화 일을 주로 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 두 사람이 누워 있는 병실 침대 세트 앞 쪽에는 관객들이 앉아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구요. 어쩌면 그게 처음 이 작품을 하고 싶었던 이유였던 것 같기도 해요.
박상업 역시 어떻게 보면 흔한 양아치인데 그런 캐릭터가 갖는 특유의 전형성은 없었던 것 같아요.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거나 말을 툭툭 던져놓는 태도 같은 것도 그 사람이 실제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었구요.
유해진 : 대사에도 있지만 박상업은 “농업도 아니고 공업도 아니고 아주 이상한 놈”이죠. (웃음) 뇌수술을 몇 번 받을 때마다 상태가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무지하게 상스런 말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진실은 이렇다고 외치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보시는 분들도 ‘저 놈은 뭐야?’ 하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사실 배우들에게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고 무기인데 이 작품에서는 두 분 다 침대에 묶인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안에서 발산하려는 에너지는 필사적이고 엄청난데 그걸 동작으로는 나타내기 힘든 상황적 제약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유해진 : 그렇지 않아도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인물이 나오는 것도 아닌 작품인데 그 심리적인 표현을, 장애가 있는 상태로 표현을 하다 보면 너무 단조로워 보일까봐 걱정이었어요. 두 분 감독님, 천호진 선배님과 현장에서 굉장히 얘기를 많이 했어요. 마지막에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싸우는 신에서는 이렇게 몸도 못 움직이는 사람들이 침대 아래 바닥에서 어떻게 만날 것인지, 어떤 도구를 쓸 것이냐까지 끊임없이 의논을 했던 것 같아요.
정말 두 사람의 클라이막스 격투 신은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느낌이었어요.
유해진 : 네, 게다가 장편영화를 찍기에는 빠듯한 스케줄에 예산도 좀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여유 있는 환경은 아니었거든요. 넉넉잡아 두 달 안에 영화 한 편을 끝내야 하는 작업이었으니까 작년 여름은 정말 화끈하게 보낸 것 같아요.
“주연과 조연의 차이? 흥행에 대한 부담감” 이미 개봉한 와 개봉을 앞둔 , 까지 올해 개봉작만 4편이나 되는데 혹시 그 당시에 촬영을 병행하신 작품도 있었나요?
유해진 : 없었죠. 이런 걸 하면서 또 다른 건 못해요. 같이 할 수가 없죠.
처럼 도 오랜만의 공동 주연작인데 혹시 이런 경우 흥행에 대한 부담 같은 게 좀 더 있으신가요.
유해진 : 많은 분들이 저한테 주연과 조연을 맡을 때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으시는데, 사실 다른 차이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흥행에 대한 부담만은 유일한 차이인 것 같아요. 책임감이랄지, 아무래도 짊어질 게 더 있는 느낌이에요.
그러면서도 배우에게는 일종의 극한의 경험을 맛보게 하는 작품이었을 것 같은데, 단지 ‘이 시나리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결정 한 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자처했을까’ 라는 후회를 하실 때는 없으신가요.
유해진 : 굉장히 모험인 것 같다거나 되게 힘들 것 같은 작품을 결정할 때는 저한테 질문을 딱 하나 던져 봐요. “내가 안 하면 딴 사람이 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못할 이유는 뭔가? 그래 하자.” 그렇게 해서 시작해 버려요. (웃음)
같은 경우는 원작 만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셨기 때문에 영화에 꼭 출연하고 싶어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요.
유해진 : 어느 날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연재분을 다 보게 되더라구요. 굉장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와, 이건 정말 재밌는 얘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체 이 얘기가 어떻게 끝을 맺으려는 건가 하는 궁금함도 있었구요. 또, 살아 있는 대사들, 사투리 같은 것들도 만화를 보고 있으면 사운드가 그대로 들리는 것처럼 너무 잘 쓰셨더라구요.
의 김덕천이나 의 육갑, 의 고광렬처럼 그 동안 여러 작품에서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맡으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강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게 배우로서 부담되는 면도 있나요.
유해진 : 그렇게 한번 강한 캐릭터로 인상이 남고 나면 선택하시는 분들이 다시 그 비슷한 느낌을 원해서 저를 캐스팅하시려는 경우도 있어요. 배우로서 썩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캐릭터가 들어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할 거야’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경우에는 스스로 그 안에서 변화를 조금씩 줘 보려고 하죠.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기자들의 시선이 한 몸에 쏟아지는 기자간담회 자리를 영 어려워하고 혼자 있을 때 제일 마음이 편하다는 유해진을 위해 매니저는 인터뷰 전, 그와 교제 중인 여배우에 대한 질문은 되도록 삼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언급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진 바였다. 그러나 사진 촬영을 위해 인사동 골목을 걷던 유해진에게 손자 업고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는 “얼른 결혼해요~”라는 덕담을 건넸고 그를 보자마자 “와악!”하며 반기던 여고생들은 큰 소리로 “김혜수 짱!!”이라 외쳤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슬쩍 눈치를 봤지만 그는 불편한 기색 없이 웃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유해진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으신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동안 작품에서 코믹하거나 친근한 캐릭터를 많이 맡으셨잖아요. 그래서 좀 전처럼 현실에서 마주치는 분들도 영화 속에서와 비슷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굉장히 친하게 말을 붙이시는 것 같아요. 당황스럽지는 않으세요?
유해진 : 좋아요, 진짜로. (웃음) 이런 일을 하면서 대중들한테 외면당하는 것만큼 힘든 게 없거든요. 그런데 저를 그렇게 반가운 친구 만나듯 대하시면 저도 반갑죠. 다른 분들한테처럼 스타라고 멀리서 ‘어머 어머!’ 하고 그냥 가 버리시는 것보다 좋기도 하고, 그렇다고 저한테 그분들이 막 극성스럽게 대하시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시사회 때는 말씀이 참 없으시더라구요. (웃음)
유해진 : 사실 기자간담회 같은 자리는 좀 부담스러워요.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들 외에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거고, 촬영이 작년 여름에 끝났으니까 그 뒤로 1년 만에 영화를 보여드리는 거였거든요.
“작년 여름은 정말 화끈하게 보낸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신체적으로 부자유스런 두 남자가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상황이나 전개 방식 같은 게 유럽식 코미디 같기도 하고, 천호진 씨와 유해진 씨의 2인극을 보는 것 같기도 했어요. 이렇게 독특한 시나리오를 선택하신 계기는 뭐였나요.
유해진 : 일단 내용 자체가 신선하고 특이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2인극이나 부조리극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처음에 연극을 하다가 영화 일을 주로 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 두 사람이 누워 있는 병실 침대 세트 앞 쪽에는 관객들이 앉아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구요. 어쩌면 그게 처음 이 작품을 하고 싶었던 이유였던 것 같기도 해요.
박상업 역시 어떻게 보면 흔한 양아치인데 그런 캐릭터가 갖는 특유의 전형성은 없었던 것 같아요.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거나 말을 툭툭 던져놓는 태도 같은 것도 그 사람이 실제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었구요.
유해진 : 대사에도 있지만 박상업은 “농업도 아니고 공업도 아니고 아주 이상한 놈”이죠. (웃음) 뇌수술을 몇 번 받을 때마다 상태가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무지하게 상스런 말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진실은 이렇다고 외치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보시는 분들도 ‘저 놈은 뭐야?’ 하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사실 배우들에게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고 무기인데 이 작품에서는 두 분 다 침대에 묶인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안에서 발산하려는 에너지는 필사적이고 엄청난데 그걸 동작으로는 나타내기 힘든 상황적 제약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유해진 : 그렇지 않아도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인물이 나오는 것도 아닌 작품인데 그 심리적인 표현을, 장애가 있는 상태로 표현을 하다 보면 너무 단조로워 보일까봐 걱정이었어요. 두 분 감독님, 천호진 선배님과 현장에서 굉장히 얘기를 많이 했어요. 마지막에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싸우는 신에서는 이렇게 몸도 못 움직이는 사람들이 침대 아래 바닥에서 어떻게 만날 것인지, 어떤 도구를 쓸 것이냐까지 끊임없이 의논을 했던 것 같아요.
정말 두 사람의 클라이막스 격투 신은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느낌이었어요.
유해진 : 네, 게다가 장편영화를 찍기에는 빠듯한 스케줄에 예산도 좀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여유 있는 환경은 아니었거든요. 넉넉잡아 두 달 안에 영화 한 편을 끝내야 하는 작업이었으니까 작년 여름은 정말 화끈하게 보낸 것 같아요.
“주연과 조연의 차이? 흥행에 대한 부담감” 이미 개봉한 와 개봉을 앞둔 , 까지 올해 개봉작만 4편이나 되는데 혹시 그 당시에 촬영을 병행하신 작품도 있었나요?
유해진 : 없었죠. 이런 걸 하면서 또 다른 건 못해요. 같이 할 수가 없죠.
처럼 도 오랜만의 공동 주연작인데 혹시 이런 경우 흥행에 대한 부담 같은 게 좀 더 있으신가요.
유해진 : 많은 분들이 저한테 주연과 조연을 맡을 때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으시는데, 사실 다른 차이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흥행에 대한 부담만은 유일한 차이인 것 같아요. 책임감이랄지, 아무래도 짊어질 게 더 있는 느낌이에요.
그러면서도 배우에게는 일종의 극한의 경험을 맛보게 하는 작품이었을 것 같은데, 단지 ‘이 시나리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결정 한 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자처했을까’ 라는 후회를 하실 때는 없으신가요.
유해진 : 굉장히 모험인 것 같다거나 되게 힘들 것 같은 작품을 결정할 때는 저한테 질문을 딱 하나 던져 봐요. “내가 안 하면 딴 사람이 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못할 이유는 뭔가? 그래 하자.” 그렇게 해서 시작해 버려요. (웃음)
같은 경우는 원작 만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셨기 때문에 영화에 꼭 출연하고 싶어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요.
유해진 : 어느 날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연재분을 다 보게 되더라구요. 굉장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와, 이건 정말 재밌는 얘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체 이 얘기가 어떻게 끝을 맺으려는 건가 하는 궁금함도 있었구요. 또, 살아 있는 대사들, 사투리 같은 것들도 만화를 보고 있으면 사운드가 그대로 들리는 것처럼 너무 잘 쓰셨더라구요.
의 김덕천이나 의 육갑, 의 고광렬처럼 그 동안 여러 작품에서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맡으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강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게 배우로서 부담되는 면도 있나요.
유해진 : 그렇게 한번 강한 캐릭터로 인상이 남고 나면 선택하시는 분들이 다시 그 비슷한 느낌을 원해서 저를 캐스팅하시려는 경우도 있어요. 배우로서 썩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캐릭터가 들어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할 거야’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경우에는 스스로 그 안에서 변화를 조금씩 줘 보려고 하죠.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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