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이겠지만, 안일권의 말투는 느릿느릿하지도 조곤조곤하지도 않았다. 스스로를 ‘애닐권’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는 뱃속부터 쩌렁쩌렁 울렸고, 종종 터뜨리는 웃음도 호탕했다. 말하자면 KBS ‘슈퍼스타 KBS’에서 시청자들을 빵빵 터뜨리게 하던 ‘챔기름’의 사나이는 여기 없었다. 하지만 “사실 이정섭 씨는 성대모사보다는 얼굴모사에 가깝다”며 손가락으로 눈을 밑으로 주욱 당기자 목소리부터 분위기까지 “댁개슴살과 챔치를 챔기름”으로 버무리라던 캐릭터가 정말 툭, 하고 등장했다. 그는 그렇게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별다른 준비 없이 툭툭 꺼내들었다. 눈을 내리깔고 턱을 앞으로 내밀면 개그맨 임혁필이 등장하고, 팔을 슬쩍 허우적거리는 것만으로 갓 태어난 소가 나온다. 그리고 마치 자판기처럼,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풉’하는 웃음 역시 툭, 튀어나온다.
관찰력은 나의 힘 “개그라는 게 어렵게 짜는 개그가 있고 좀 쉽게 나오는 개그가 있는데 솔직히 ‘슈퍼스타 KBS’에서 제가 맡은 부분은 좀 쉽게 나오는 개그죠. 그냥 개인기로 가는 거니까.” 어쩌면 쑥스러워하는 그의 말은 정말일지 모른다. 별다른 설정이나 밑밥 없이도 그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웃음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으니까. 하지만 자판기 버튼을 눌러 내용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안에 쟁여놓는 과정이 필요하고, 틀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뒤에는 상수도의 거대한 메커니즘이 있는 법이다. 이미 고등학교 때 이정섭 얼굴모사를 자신의 개인기 목록에 포함시킬 정도로 타고난 그의 관찰력은 그래서 흥미롭다.
“관찰력은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면 나중에 디테일한 습관이나 옷차림 같은 것들을 다 떠올릴 수 있더라고요.” 꼭 성대모사를 비롯한 흉내 개그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날카로운 관찰력은 안일권의 개그 스타일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에게 코미디 신인상을 안겨줬던 ‘고교천왕’의 비굴한 깡패는 영화 의 김인권을 관찰하며 만들어졌고, 마니악한 재미에 비해 저평가되었던 ‘어색극단’의 어색한 분노 연기는 어린이 뮤지컬에서 함께 공연한 악당 캐릭터의 어색한 연기에서 포인트를 잡아낸 것이다. 홈쇼핑에서 만두를 홍보하던 이정섭에게서 “‘챔기름’에 찍어 먹으면 좋다”는 말투를 매의 눈으로 캐치해 ‘슈퍼스타 KBS’의 캐릭터를 만든 것과 “항상 수첩에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가득 적었던” 신인 시절의 습관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황현희, 최효종과 새로운 법정 개그를 준비 중” 하지만 단순히 디테일을 잘 잡아내 자기 안에 담아내는 것만으로 머물렀다면 하나의 완결된 코너를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는 에서 지금까지 그를 볼 수는 없었을지 모른다. “사실 ‘고교천왕’ 때는 이대로 가면 스타 되는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코너가 없어지면서 쉬게 됐죠. 그 때는 이 코너와 이 캐릭터로 계속 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쉬는 날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어떨 땐 한 달 내내 술을 마시며 “낮부터 갤갤거리기도” 했다. 새 코너를 짜서 연출진의 오케이 사인들 받고 녹화를 떴지만 그 모든 게 편집으로 날아가는 것도 종종 경험해야 했다. “아, 그래서 분위기 좋을 때 새 코너를 짜야 하는 거구나 싶었죠.”
그래서 앞서 자신의 개그를 “쉽게 가는 개그”라 말하는 그의 말은 괜한 겸손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다잡는 주문과도 같다. “‘챔기름’에 웃고 좋아해주시는 건 고마운데, 코너 새로운 거 빨리 쳐야 해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치열하지 않아서 문제네요.” 살짝 눈초리가 올라가며 고민스레 말할 때, 그리고 황현희, 최효종 등과 새로운 법정 개그를 준비 중이라면서도 “멤버들은 좋은데 또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아직 짜는 중이니까”라고 경계할 때, 이정섭과 임혁필을 담아내던 그 얼굴에 비로소 개그맨 안일권의 절박함이 슬며시 떠오른다. 꼭지를 돌리면 웃음이 나오는 이 웃음의 수도꼭지 뒤편 거대한 상수도의 정체를 이제야, 본 것 같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관찰력은 나의 힘 “개그라는 게 어렵게 짜는 개그가 있고 좀 쉽게 나오는 개그가 있는데 솔직히 ‘슈퍼스타 KBS’에서 제가 맡은 부분은 좀 쉽게 나오는 개그죠. 그냥 개인기로 가는 거니까.” 어쩌면 쑥스러워하는 그의 말은 정말일지 모른다. 별다른 설정이나 밑밥 없이도 그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웃음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으니까. 하지만 자판기 버튼을 눌러 내용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안에 쟁여놓는 과정이 필요하고, 틀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뒤에는 상수도의 거대한 메커니즘이 있는 법이다. 이미 고등학교 때 이정섭 얼굴모사를 자신의 개인기 목록에 포함시킬 정도로 타고난 그의 관찰력은 그래서 흥미롭다.
“관찰력은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면 나중에 디테일한 습관이나 옷차림 같은 것들을 다 떠올릴 수 있더라고요.” 꼭 성대모사를 비롯한 흉내 개그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날카로운 관찰력은 안일권의 개그 스타일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에게 코미디 신인상을 안겨줬던 ‘고교천왕’의 비굴한 깡패는 영화 의 김인권을 관찰하며 만들어졌고, 마니악한 재미에 비해 저평가되었던 ‘어색극단’의 어색한 분노 연기는 어린이 뮤지컬에서 함께 공연한 악당 캐릭터의 어색한 연기에서 포인트를 잡아낸 것이다. 홈쇼핑에서 만두를 홍보하던 이정섭에게서 “‘챔기름’에 찍어 먹으면 좋다”는 말투를 매의 눈으로 캐치해 ‘슈퍼스타 KBS’의 캐릭터를 만든 것과 “항상 수첩에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가득 적었던” 신인 시절의 습관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황현희, 최효종과 새로운 법정 개그를 준비 중” 하지만 단순히 디테일을 잘 잡아내 자기 안에 담아내는 것만으로 머물렀다면 하나의 완결된 코너를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는 에서 지금까지 그를 볼 수는 없었을지 모른다. “사실 ‘고교천왕’ 때는 이대로 가면 스타 되는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코너가 없어지면서 쉬게 됐죠. 그 때는 이 코너와 이 캐릭터로 계속 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쉬는 날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어떨 땐 한 달 내내 술을 마시며 “낮부터 갤갤거리기도” 했다. 새 코너를 짜서 연출진의 오케이 사인들 받고 녹화를 떴지만 그 모든 게 편집으로 날아가는 것도 종종 경험해야 했다. “아, 그래서 분위기 좋을 때 새 코너를 짜야 하는 거구나 싶었죠.”
그래서 앞서 자신의 개그를 “쉽게 가는 개그”라 말하는 그의 말은 괜한 겸손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다잡는 주문과도 같다. “‘챔기름’에 웃고 좋아해주시는 건 고마운데, 코너 새로운 거 빨리 쳐야 해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치열하지 않아서 문제네요.” 살짝 눈초리가 올라가며 고민스레 말할 때, 그리고 황현희, 최효종 등과 새로운 법정 개그를 준비 중이라면서도 “멤버들은 좋은데 또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아직 짜는 중이니까”라고 경계할 때, 이정섭과 임혁필을 담아내던 그 얼굴에 비로소 개그맨 안일권의 절박함이 슬며시 떠오른다. 꼭지를 돌리면 웃음이 나오는 이 웃음의 수도꼭지 뒤편 거대한 상수도의 정체를 이제야, 본 것 같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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