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희 : 처음부터 유별났다. 겨울처럼 차가운 도시 여자였다. 안 좋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이겨냈다. 지금도 김기덕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평생을 여배우로 사는 여자의 기록.
장미희
장미희
이덕화 : 장미희의 첫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장미희는 27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공개 오디션을 통해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춘향하면 연약한 이미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장미희는 당시엔 키가 큰 편이어서 배구와 농구를 했고, “두 달에 하루는 꾀병을 부려서라도 학교에 안 가는” 말괄량이였다. 또한 드라마 를 찍을 때는 하루 10시간씩 수영과 자맥질을 연습하며 수영을 배웠다. 춘향이에 어울릴 얼굴에 튼튼한 몸, 작품에 대한 오기를 함께 가진 여배우의 데뷔.

김호선 : , 등 장미희와 많은 영화를 함께한 영화감독. 장미희를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간드러지는 분위기, 사람을 비수처럼 꿰뚫는 요녀 같은 투시력을 가졌다”고 평한바 있는 그는 에서 그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았다. 자기 의지대로 사랑을 선택하고, 때론 사랑 없이도 남자와 잘 수 있는 여성 이화는 한 영화평론가가 영화에 대해 “어안이 벙벙한 난장판”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는 서울에서 59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웠고, 장미희는 청순가련, 혹은 섹시한 이미지만을 강조한 여성 캐릭터가 대부분이던 시절 복잡한 내면의 도시여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장미희는 의 원작 소설을 읽으며 “이건 꼭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오래전부터 이화의 캐릭터를 준비했고, “무모하리 만큼 캐릭터를 닮아내려고 했었”던 것을 “나의 20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윤희 : 장미희와 여러 작품에 함께 출연한 배우. 장미희, 유지인과 1970년대 트로이카로 불렸다. 두 사람은 드라마 의 납량특집에서 귀신과 산장주인으로, 드라마 에서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로 출연하는 등 계속 라이벌 관계였다. 1977년 한 여론 조사에서는 ‘미인으로 생각하는 배우’에서 세 사람이 1~3위를 모두 차지했고, 장미희는 여배우 중 최고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동시녹음 기술이 없어 성우가 배우 대신 녹음했는데, 장미희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의 출연료가 제일 비쌌을 정도. 하지만 장미희는 연극 에 출연하거나, “좋은 영화라면 상하반기에 한편씩 무료 출연하겠다”며 영화 에서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그만큼 연기를 위해 노력하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장미희가 지금까지 스타성을 유지하는 건 그 때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본능적으로 찾아내는 감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배창호 : 장미희의 1980년대 대표작들을 연출한 감독. 배창호는 에서 생긴 장미희의 ‘도시 여자’ 이미지를 1980년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에서는 아파트에서 외롭게 사는 여자였고, 에서는 미국에서 절망적인 인생에 빠진 여성이 됐다. 특히 은 에 이어 다시 한 번 흥행 기록을 세웠다. 당시 장미희는 KBS 촬영 펑크와 확인되지 않은 루머, 그리고 미국 유학 등으로 국내 활동이 위축됐었다. 은 장미희의 위치가 여전함을 증명했고, 로 여배우 중 최고 출연료를 받으며 귀국한다. 또한 은 “캐릭터를 닮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를 이해하고 만드는 경험”을 한 첫 작품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세상의 시선을 연기와 스타성으로 돌파한 것. 장미희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렇다면 피해자를 보호해줄 의무가 있다. 난 연기자이기 이전에 여자”라고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관희 : MBC 의 연출자. 장미희가 이 작품에서 연기한 육남매의 어머니는 이관희의 어머니를 모델로 했다. 6.25 전쟁 이후 떡을 팔며 육남매를 키우는 강인한 어머니는 장미희의 이전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하지만 40대에 들어선 장미희가 “떡 사세요~”를 외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고, IMF와 함께 ‘고난 극복’이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장미희는 지저분한 차림의 육남매에 비해 지나치게 깨끗한 모습으로 리얼리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제작진이 분장과 의상을 지저분하게 해도 곧바로 얼굴을 깨끗하게 고쳤다고. 변신에 대한 시도는 좋았지만 20여 년 동안 도도한 톱스타로만 살았던 배우에게 그리 어울리는 역할은 아니었던 셈. 장미희는 “대중이 장미희에게 보고 싶어 하는 이미지는 여성성이 강조된, 매력적이고 화려하고 섹시한 여성”이라며 “의 장미희보다 , , 의 장미희가 더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경실 : 장미희가 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당시 했던 “아름다운 밤이에요”를, 에서 했던 “떡 사세요”를 흉내냈다. 1970~80년대에는 장미희 특유의 감정 표현이나 제스처가 ‘여배우’의 우아함을 상징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며 연예인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부각되면서 그의 모습은 과장된 것으로 인식됐다. 이경실의 흉내는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하지만 장미희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어 서운하기도 했지만 배우란 대중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했고, 이후 MBC 에서 딸과 옷을 두고 다투는 철없는 엄마, SBS 에서 돈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밤무대 가수 등을 연기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코믹하게 뒤틀었다. 전에도 그랬듯, 자신의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일을 찾아낸 셈. 또한 문제의 수상 소감은 1920년대를 산 의 주인공 윤심덕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었다고.

카트린 드뇌브 : 장미희가 “청춘 여배우에서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이자 젊은 감독들과 더불어 열정적으로 영화 제작과 연기를 병행하는 아이콘으로 변신”한 점 때문에 닮고 싶은 배우. “스스로를 여배우로 규정하면서 산 건 30대까지”고, “‘결국은 여배우가 그렇지’라는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장미희는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학 교수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한다. TV에서는 철없는 소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생활에서는 “평소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라서 불편할 때도 있다”고 말할 만큼 철저한 성격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셈. 또한 그는 “유일하게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건 작품 속에서의 삶”이라는 이유로 독신으로 살고, “연어는 산란기에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게 영적인 생물인 것 같아 안 먹는다”고 하는 감수성을 가졌다. 말 그대로 여배우의 삶.

교수 장미희 : 장미희는 1989년 명지대 사회교육원 강사로 임용된 이후 지금까지 명지 전문대에서 강의 중이다. 1997년에는 학교에서 공로상을 받을 만큼 강의 능력을 인정받았고, 학과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학력위조 문제와 함께 논란을 빚었다. 그는 알려진 바와 달리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지 않았고, “(포털 사이트에서) 나에게 직접 사실 여부를 물어 온 적이 없다”고 했지만 고교 학력도 사실과 다르게 알려졌다. 그가 처음 출강할 당시 명지대 사회교육원은 학위가 필요한 교육기관이 아니었고, “내가 가르치는 영역이 학위보다는 내 연기 경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했지만 비난은 피할 수 없었던 상황. 특히 대중에게 우아한 이미지의 여배우로 인식돼 있는 상황에서 학력문제는 그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던 악재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이 상황을 단번에 뒤집는다. 장미희다운 선택으로.

김수현 : 장미희가 출연한 KBS , SBS 를 집필한 작가. 연출자인 정을영 감독이 장미희의 캐스팅을 제안하자 “그 아가씨가 나를 무서워할 텐데, 그래도 한다고 하면 해보자”고 답했다. 김수현은 “그 나이에도 무너지지 않고 너무 예뻤”던 장미희에게 “미워하고 싶었지만 밉지 않은 캐릭터”인 고은아를 연기하도록 했다. 평생 아쉬울 것 없이 살면서 도도한 언행이 몸에 베였고, 허영기 때문에 종종 망신을 당하는 고은아의 캐릭터는 그 당시 장미희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뒤섞였다. “선생님의 대본은 이미 그 뿌리를 쥐고 있어서 배우가 대본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작품에 쉽게 안착할 수 있다”던 장미희는 고은아를 평생 자신의 세계에서만 산 사람으로 해석, 과장되면서도 현실적인 선을 유지하는 독특한 경지를 보여줬다. 고은아는 김수현의 말대로 “철 안 든 채로 늙어가는” 여자였고, 장미희는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걸 입증했다. 구설수에 올랐던 50대의 여배우가 다시 아름답고, 귀여워지기까지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 순간.

마르탱 마르지엘라 : 디자이너. 장미희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그가 디자인한 속옷이 그려진 옷을 입어 화제에 올랐다. 이에 대해 장미희는 “판타스틱 영화제의 콘셉트에 맞춰 재밌는 의상을 설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에서는 고은아의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의상은 광택 나는 옷감일 것, 움직일 때마다 옷에 실루엣의 여운이 느껴질 것, 귀걸이는 달랑거리며 시선을 뺏으면 안 된다, 가급적 목걸이 대신 반지, 팔찌, 귀걸이 세트를 한다” 등의 원칙을 세운 스타일링을 했다. 패션지 에서는 50대의 장미희를 모델로 선정했고, 그는 베스트 드레서 시상식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중년이면서도 흘러간 배우가 아니라 트렌드의 한 축에 있는 여배우의 입지를 굳힌 셈. 물론 이는 “디자이너의 실험 정신이 살아 있는 디자인을 요란하지 않게 입는” 감각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2~3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꾸준한 자기관리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상중 : 에 함께 출연중인 배우. 장미희는 극 중 김상중과 로맨스를 벌이는 여성 조아라를 연기한다. 가 자칫하면 불명예와 함께 흘러간 배우가 될 뻔 했던 그에게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면, 는 그를 다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재일교포의 설정에 맞춰 대사에 미묘하게 일본식 발음을 남기고, 여전히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을 가졌으면서도 그 모습 그대로 감정을 토로하는 장미희의 연기는 한국에서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왕년의 스타가 아니”고, “결혼을 안했고 자식도 없기 때문에 엄마 역할을 잘 할 수 없는 사람”이라던 그는 결국 자신의 방식으로 여전히 로맨스가 가능한 여배우로 남았다. 처음부터 스타였고, 지금도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그야말로 여배우가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인기는 누릴 만큼 누렸고, 이런 저런 일도 겪을 만큼 겪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답다. 정말로, 장미희는 ‘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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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희의 캐릭터를 패러디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경실과 MBC 에 출연 중인 이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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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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