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메시’도 프리미어리그 가는 거야?
이제 ‘지메시’도 프리미어리그 가는 거야?
너 이번에 여자 월드컵 좀 봤지? ‘지메시’인가 하는 그 여자 선수가 그렇게 잘해?
지소연 말이지? 오, 잘해, 잘해. 사실 그 전의 경기는 하이라이트로만 봤는데 독일과의 4강전에서 드리블로 상대 수비 제치고 골까지 넣는 거 보니까 ‘지메시’라는 별명이 설레발이 아니더라고.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그런 상황에선 당황해서 우주 멀리 공을 차기 십상인데 정말 침착하고 집중력 있게 공을 다루더라.

그럼 이제 그 지소연은 엄청 스타가 되는 거야?
아무래도 우리나라 여자 축구 역사상 최고로 인지도 높은 스타가 되긴 하겠지. 과거 ‘여자 박주영’이라 불렸던 박은선 같은 선수도 대중적인 이름은 아니었는데 지소연 같은 경우에는 너조차 어느 정도는 알고 있잖아.

그럼 이렇게 유명해졌으니까 박지성처럼 해외 유명한 팀으로 가는 거야?
음, 현재로선 여자 프로 리그가 있는 미국이나 1, 2부 리그에 총 36개 팀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축구의 종가 잉글랜드도 내년부터 여자 프로 리그를 만들 거라고 하니 그곳에 갈 수도 있고.

그럼 돈도 많이 벌겠네? 막 억대 연봉 받는 거 아니야?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나 봐. 우리나라 여자 실업축구 팀에서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약 4000만 원 정도를 연봉으로 받는데, 미국 여자 프로리그 선수들 평균 연봉도 3800만 원 수준이라고 하더라고. 물론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독일 분데스리가의 모 팀이 연봉 1억 원을 제시했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해외진출을 한다고 해도 최대치가 그 정도일 거 같아.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적은 돈은 결코 아니지. 하지만 박지성이 맨유에서 받는 연봉이 약 60억 원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여자 축구 시장이 남자 축구의 그것에 비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지.
이제 ‘지메시’도 프리미어리그 가는 거야?
이제 ‘지메시’도 프리미어리그 가는 거야?
그래도 박지성이랑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박지성은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 스타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현재 박지성이 뛰는 맨유나 지소연이 뛸지도 모를 외국 클럽 모두 우리나라에서의 이름값에 따라 연봉을 책정하는 건 아니야. 클럽끼리의 경기나 국제 대회 A매치 성적, 즉 세계무대에서의 실력을 보고 결정하는 거라고. 박지성도 물론 월드 클래스의 좋은 선수지만, 지소연 같은 경우에는 이번 U-20 여자 월드컵 최고의 스타야. 말하자면 이번 남아공 월드컵의 비야(스페인)나 뮬러(독일), 포를란(우루과이) 같은. 물론 지소연이 뛴 경기가 20세 이하 경기였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남자가 이렇게 큰 국제 경기에서 8골을 넣는 괴력을 보여줬다면 수백억의 이적료와 함께 팀을 옮기고 수십억의 연봉을 받았을 거야.

왜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 남자와 여자 실력 차이 때문인 건가?
물론 몸으로 하는 운동인 만큼 남자와 여자의 실력 차는 있을 수밖에 없지. 하지만 결국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큰돈이 움직일만한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거야. 꼭 국내로 한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결국 리그 자체가, 그리고 그 스포츠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최종적으로는 여자가 운동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기반이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지.

뭐야, 그럼 이게 모두 남녀 차별 때문이라는 거야?
그렇게 쉽게 환원하려 하진 말고. 기본적으로 스포츠라는 건 인간의 호전성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해소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보니 남자들 위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의 역사는 남자 스포츠의 역사와 일치하게 돼. 그러니 대부분의 종목에 있어 협회를 만들고 경기를 운영하고 프로 리그를 만드는 것이 남자 위주일 수밖에 없지. 그래서 여자들의 스포츠 진출은 이미 남자 위주로 짜인 영역에 여자라는 타자가 진출하는 것이 되는 거고. 우리가 남자 월드컵은 그냥 월드컵이라고 하면서 여자 월드컵은 여자 월드컵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여자 스포츠는 그 인프라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좋은 실력을 갖추기도 어렵지. 가령 미국의 미아 햄이 여자 축구의 아이콘으로 꼽힐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성장기에 남녀의 동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했던 미국의 공공정책 덕분이야. 지소연 역시 육상 같은 다른 종목에서 축구로 넘어왔던 선배들과 달리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배웠기에 지금 같은 실력을 얻게 된 거고. 그건 반대로 그 외의 수많은 선수들이 제대로 된 축구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러니 동시대에 메시, 호날두, 카카, 샤비, 토레스 같은 슈퍼스타들이 활약하는 남자 축구에 비해 눈에 띄는 스타가 적을 수밖에 없지.

그럼 스타도 없으니 이 모든 무관심을 여자들이 감내해야 한다는 거야?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이제 ‘지메시’도 프리미어리그 가는 거야?
이제 ‘지메시’도 프리미어리그 가는 거야?
난 지금 그렇게 들은 거 같은데? 여-러분, 여기 여자 스포츠가 인기 없는 건 그냥 참으라고 말하는 ‘10관왕’입니다.
넌 좀 그렇게 쉽게 결론내리지 좀 마라, 제발. 물론 나는 기본적으로 의무감으로 어떤 종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래서 월드컵에 열광하고 K-리그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하지만 중요한 건, 적어도 관심 받을만한 여러 요소가 있음에도 어떤 편견 때문에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건 피하자는 거야. 가령 선수 연봉으로 따지면 K-리그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부족하겠지만, 그게 실력 역시 비교도 안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거든. 그런데도 K-리그는 수준이 낮을 거라는 어떤 편견 때문에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그 편견만큼은 제거해야 하겠지. 마찬가지로 여자 축구는 지루하고 어설플 거라는 편견이 있다면 그것만큼은 사라져야 할 테고. 팬들의 관심과 종목에 대한 육성, 그리고 종목의 실력 상향평준화와 스타플레이어의 등장, 그리고 더 큰 팬들의 관심이라는 선순환은 그 이후에 가능한 거라고 봐.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번 여자 월드컵에서 주목하는 건 우리나라가 3위를 했다는 것보다는 여자 축구 자체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거야.

전체적인 판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지. 나는 프로 스포츠 중 여자들의 활약이 가장 돋보이는 걸로 미국 여자 프로 골프를 꼽고 싶은데 비교적 여자의 진출이 빠른 편이라 그 역사가 거의 반세기에 달하거든. 그 세월 동안 차곡차곡 인프라가 쌓이면서 줄리 잉스터나 아니카 소렌스탐, 로레나 오초아 같은 스타가 등장했고, 덕분에 우리나라의 박세리, 신지애 같은 선수들이 진출할 기반이 마련됐지. 덕분에 한국 여자 프로 골프도 활성화 될 수 있는 거고.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여자 스포츠 스타인 김연아가 활약하는 여자 피겨스케이팅도 마찬가지야. 물론 김연아는 스케이팅 인프라가 취약한 한국에서 등장한 돌연변이지만 어쨌든 과거의 미쉘 콴처럼 여성 피겨스케이터가 스타가 될 수 있을 만큼 그 종목의 성격과 인기가 확고하기 때문에 김연아라는 스타가 등장할 수 있었겠지.

결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단 결론이네?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지. 아직까진 여자의 스포츠 실력에 대한 어떤 편견이 있으니 여자 스포츠에 있어 ‘여자’가 더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스포츠’에 방점이 찍혀야 할 거야. 만약 너처럼 여자로서 여자 스포츠가 잘 되길 바란다 해도 그만큼 스포츠에 관심을 둬야 할 거고.

솔직히 나도 여자 축구나 이런 게 잘 되면 좋겠는데 스포츠는 아직도 어려워.
그럼 안 어려울 때까지 내가 옆에 있지, 뭐.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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