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는 삶의 가혹함에 대한 사례집이다. 이영애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들은 끊임없이 조금이라도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누구도 자기 마음껏 살지 못한다. 바라던 연애는 깨지고, 직장에서는 퇴직의 압력이 돌아오며, 아무리 돈을 모으려 해도 생계의 벽은 높기만 하다. 하지만 가 만 3년, 일곱 시즌동안 계속될 수 있었던 건 그 모든 고난을 유쾌한 찌질함으로 견뎌내는 기막힌 삶의 긍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찌질한 행동을 하고, 그 행동들 때문에 삶의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살기 때문에, 그래서 매 순간마다 그럭저럭 버텨가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이영애를 연기하는 김현숙에게도 물어봤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끌어안고 여기까지 왔는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린 끝에 연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불안하고, 아직 목마르며, 그러면서도 예전보다 자신의 상황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는 김현숙이 한 명의 연기자로 어떻게 변해 가는지 보여주는 기록과도 같다. 그리고 지금, 김현숙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할까. 이영애와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이영애와는 또 다른 삶을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시즌 7까지 왔다. 제작발표회에 오는 기자들 얼굴도 외웠겠다. (웃음)
김현숙: 최소한 3분의 1은 아는 분들이더라. (웃음) 그래서 시즌 5때처럼 격식 차리고 CGV에서 제작발표회하면 민망해 죽는다. (웃음) 앞으로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편하게 하고 싶다.
“이제 영애 씨는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 시즌 7은 시즌 6과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김현숙: 솔직히 개인적으로 시즌 7이 더 재밌다. (웃음) 시즌 6에서는 계속 가야된다는 부담 때문인지 연기자나 스태프들 모두 이야기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생 뭐 있어?” 하면서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가니까 더 재밌어진 것 같다.
하지만 시청률을 보면 tvN에서는 계속 가고 싶어 할 것 같다.
김현숙: 그러게. 시즌 7에서도 딱 한 번 빼고 케이블 채널 중에 계속 동시간대 1위를 하니까. 그리고 회사에서 내용도 만족하는 반응이어서 가능하면 오래 갔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팬층이 점점 늘어나는 게 좋다. 처음에는 안 보던 분들도 입소문이 나고서는 다시 보기로 다 보면서 새 시즌 시작할 때 팬이 돼서 합류하니까. 그래서 첫 시즌에는 여자 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남자들이 게시판에 “미치겠어요, 여기까지 보다 군대가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한다. (웃음)
그렇게 점점 팬이 늘어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오르는 추세인데.
김현숙: 무엇보다 공감대를 건드리는 부분 같다. 가 100회를 넘기고 나서 에 나갔을 때 골드 미스든지 골병든 미스든지 (웃음) 3~40대 여성들을 상대로 설문을 했다. 지금 가장 고민되는 게 뭐냐는 질문이었는데, 1~3위가 연애, 직장, 재테크였다. 그게 에 모두 있는 내용 아닌가. 영애씨도 직장, 연애 다 안 되고 재테크도 그나마 엄마가 지원해서 연립주택 하나 사놨지만 값이 자꾸 떨어지고. 그런 고민들을 건드리다 보니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초반 시즌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시즌 1에서는 이상한 남자들 사이에 있는 영애 씨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시즌 7은 영애의 고민들이 늘어났다.
김현숙: 이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는 다큐 드라마라는 형식도 생소했고, 내용도 여성의 판타지를 거의 배제한 것이라 이런 걸 대중이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시작할 때는 영애는 이래요, 우리 드라마는 이래요 하는 설명이 필요했다. 변태가 나타날 때는 영애는 이렇게 대처하는 캐릭터라는 식으로. 그런데 그걸 시즌 7까지 하면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변태를 매일 만날 리도 없고. (웃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애와 주변사람들의 현실을 더 부각하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디테일한 공감대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팬층도 넓어진 것 같다. 이제 영애 씨는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여자가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연기의 방향도 달라지지 않았나. 시즌 1이 영애의 과격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면, 요즘은 현실적인 상황에서 디테일한 연기가 눈에 띈다.
김현숙: 시즌 1은 몸이 힘들긴 했지만 견딜 만 했다. 그런데 시즌 7은 얼마 전에 촬영을 마치고 입원을 했다. 장 과장과 잘 안 되는 상황을 연기하고 나서 3~40이 정상인 간수치가 갑자기 1000이 넘게 올라간 거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영애의 삶을 사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점점 영애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니까 너무 힘든 거다.
몇 개월 쉬고 바로 다시 영애를 연기하는데, 드라마 내용은 점점 더 영애의 내면을 보여주니까 점점 더 그렇게 되겠다.
김현숙: 시즌제 드라마도 미국 같은 겅우는 1년에 한 작품 정도 하지 않나. 그리고 내용도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강한 게 대부분이지 처럼 사람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요즘 조증이 좀 심해졌다. 내가 무생물이 아니라서 작품 끝나면 곧바로 영애 씨에서 김현숙으로 돌아올 수 없다. 거기다 내용도 점점 영애 씨의 내면으로 들어가니까 시즌이 끝날수록 이런 기간이 길어진다. 거기다 시즌마다 엔딩도 그리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매주 촬영을 마치면 여운이 남고, 시즌이 끝나고 그 감정을 추스를만하면 또 시즌이 시작된다.
“영애와 나의 삶이 헷갈리기도 한다” 영애와 자신의 삶이 헷갈릴 때도 있겠다.
김현숙: 스스로는 정말 영애의 삶을 느끼면서 연기하는데, 촬영이 끝나면 난 다시 연예인이 돼야 하니까 헷갈리기도 한다. 심지어 만화 처럼 영애 씨에게 일어난 일이 얼마 뒤에 나한테 똑같이 벌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영애 씨와 당신의 삶은 다르다. 이제 당신은 영애 씨처럼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고 진상 부릴 수 없다. (웃음)
김현숙: 그래서 요즘 영애를 연기할 때는 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것 같다. 사실 옛날엔 영애보다 경제적으로 더 처절했다. 학교에서 육성회비 몇 만원을 못 내기도 했었고. 그렇다고 너무 처절한 기억만 끌어오면 그건 김현숙이지 영애가 아니라서 상상력을 결합해서 연기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과 영애는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것 같다. 영애는 일이 안 풀리긴 하지만 집에서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준다. 그래서 당신처럼 자수성가하려는 의지도 크게 없고.
김현숙: 어머니가 날 홀로 키우셨는데,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주셨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불안정했다. 그래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았고, 배우를 하면서도 그렇게 배부른 적은 없었다. 거의 10년 이상을 가장 노릇 하면서 살았고, 아직 내 마음에 풍요를 느낀 적은 없다. 물론 서울에 처음 와서 옥탑방에서 보증근 300에 14만원 내면서 살던 때보다는 풍요롭지만. 그런데 영애는 그렇게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다. 자기 명의의 연립주택도 있고.
하지만 반대로 요즘엔 당신이 영애 씨보다 경제적으로 낫다. (웃음) 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리고, 당신도 집을 마련한 걸로 알고 있다.
김현숙: 내 집은 대출금이 많이 남아있다. (웃음) 사실 그 부분이 고민이기도 하다. 지금도 난 목마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노희경 작가의 를 읽었다. 거기에 나문희 선생님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그분이 노희경 작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더라. “시장에 자주가라, 서민들의 삶을 느껴봐라, 골프는 치지마라” 그걸 읽는데 내가 실생활이 풍요해지면 옛날보다 감이 떨어지거나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배우에게 경제적 풍요로움은 필요악인가 싶기도 하고. 예전에 천재 극작가나 예술가들도 훗날에는 인정받았지만 그 때는 정말 괴롭게 사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었나. 배우들은 고통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거다. 그러면 내가 죽기 전까지 고통을 피하는 건 불가피한가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
당신은 점점 삶이 안정되는데 영애 씨는 요즘 직장과 연애 모두 위기다. 영애 씨한테 몰입할 때 더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겠다.
김현숙: 그런 부분은 문득문득 느낀다. 영애는 돈 쓸 때 월급 계산해서 빠듯하게 사는 데, 나는 이제 후배들에게 쏴야할 때는 어느 정도까지는 돈 걱정 크게 안하고 살 수 있으니까. 영애 씨와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이다.
“배역에 그 사람의 인생이 없는 작품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 고민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보는 게 좋을 텐데.
김현숙: 그런데 를 하면 다른 작품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드라마가 좋은 것 중 하나가 모든 인물들의 인생이 살아있다는 거다. 누구든 초반에는 마냥 찌질해 보이지만 결국 그 이유를 다 설명해주면서 그 사람을 이해시킨다. 그래서 나 혼자 작품을 끌고 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댈 수 있다. 그런데 나한테 드라마나 영화가 들어오면 주인공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출연 분량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배역에 그 사람의 인생이 없다는 거다. 예전에 조혜련 선배님이 우스갯소리로 “조연의 인생은 없다”고 했는데, 딱 그런 느낌의 배역들이 많다. 아무리 시나리오를 보고 있어도 그 사람의 내용 뒤에 있는 인생이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주인공 친구 같은 역할이 많이 들어온다는 건가.
김현숙: 분량이 어떻건 그래도 연구할 거리가 있는 배역을 연기하면 좋겠는데, 이 사람이 왜 이 대사를 하고, 왜 이 환경에서 사는지 전혀 유추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내가 케이블 TV 드라마에 출연하니까 공중파 작품이 들어오면 해야 되지 않냐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어디에 출연하느냐보다 어떤 작품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 참 딜레마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작품이 있으면 연극을 하고 싶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연극에 출연하면 영화나 드라마 수입에는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배우로 깊어지기 위한 자양분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작품만 좋으면 가리지 않고 하고 싶다.
영화 에서는 감독에게 캐릭터의 역사를 써가면서 연기했다고 들었다.
김현숙: 는 그래서 좋았다. 오랜만에 학교 워크샵 하는 기분이었다. 학교에서 연기 공부할 때는 다 그런 식으로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어오라고 하니까. 김용화 감독님이 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 적어오라고 하셔서 계속 썼다. 그러면서 김아중과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서 리허설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캐릭터가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생명력을 얻었던 것 같다. 그런 작품이라면 언제든지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강명석 two@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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