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이런 문제를 특별히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으로 인지도를 높였을 뿐, 멤버들에게 작위적으로 공통된 특성 같은 것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난해한 가사와 파격적인 전개를 가진 ‘NU 예삐오’를 타이틀로 삼았다. 대중성을 위해 쉽게 우회로를 택하는 대신 뚝심있게 f(x)만의 색깔을 밀어붙인 것이다. ‘NU 예삐오’는 데뷔곡 ‘LA CHA TA’ 보다 더욱 파격적으로 나서면서 오히려 화제가 됐고, ‘NU 예삐오’의 독특하고 긴장감 있는 완성도 또한 대중들에게 인정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f(x)의 첫 정규 앨범 <피노키오>가 데뷔 이래 처음으로 음원 차트를 석권하고 오프라인 앨범 판매량에서도 의미 있는 판매량을 보인 것은 흥미롭다. f(x)는 여전히 파격적인 `피노키오`를 타이틀로 내세웠고 분방한 멤버의 이미지를 크게 바꾸지도 않았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큰 도움을 줬다 해도 싱글이 아닌 앨범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인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앨범을 가득 채운 독특한 개성들
f(x)의 ‘피노키오’는 샤이니의 ‘루시퍼’를, DSP와 주로 작업해 온 스윗튠의 ‘아이’는 가장 걸그룹 다운 노래다. |
각 멤버의 강렬한 개성도 대중들이 설리, 빅토리아, 엠버 등 멤버의 특징적인 캐릭터에 익숙해지자 팬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장치가 됐다. 특히 제 자리를 찾은 엠버의 성장으로 더욱 강조된 멤버들의 다양한 개성은 앨범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멤버들의 뚜렷한 개성은 같은 그룹이 한 앨범 안에서 전혀 다른 색깔의 곡을 불러도 어색함을 주지 않는데 크게 기여한다. 처음부터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색깔을 가진 그룹이다 보니 앨범 안에서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곡에 따라 보컬의 구성을 바꾸거나 특정 캐릭터를 가진 멤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유롭게 그룹의 색깔을 변신시켜도 위화감이 없는 앨범이 된 것이다.
실제로 비교적 단일하고, 통일성 있는 음악적 색깔을 유지했던 기존의 SM 소속 가수들의 앨범과는 다르게 <피노키오>에 수록된 곡들은 저마다 완전히 다른 색깔이다. < Nu 예삐오 >에 수록된 ‘아이스크림’의 연장선상에 있는 ‘빙그르’는 히치하이커 특유의 리듬감이 통통 튀는 발랄한 하우스 댄스곡으로 그 어느 걸그룹의 곡보다 소녀적인 상상력이 빛난다. 히치하이커 외에도 SM은 앨범을 더욱 다양한 색깔로 채우기 위해 페퍼톤스와 스윗튠 등 강한 개성을 가진 외부 작곡가를 적극적으로 기용한다. 페퍼톤스가 선사한 ‘Stand Up!’은 마치 페퍼톤스의 앨범을 듣는 듯 밝고 건강한 노래다. ‘아이’는 DSP 소속 걸그룹들의 노래를 주로 작업한 것으로 유명한 스윗튠의 곡으로 지금까지 나온 f(x)의 댄스 넘버 중 가장 대중적이고 걸그룹다운 곡이라 오히려 눈길을 끈다. 항상 다른 걸그룹과는 다른 음악적 성향을 보여온 f(x)이기 때문에 이렇게 대중적이고 걸그룹다운 곡이 오히려 새로운 시도가 되는 것이 재미있다. 다른 아이돌이라면 지나치게 산만한 구성이 될 수도 있었지만, <피노키오>의 곡들은 f(x)의 개성과 맞물려 최근 아이돌의 앨범 중에서도 손 꼽을만한 수작이 됐다.
특히 <피노키오>에 페퍼톤스와 스윗튠의 참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곡을 좌지우지 하는 영향력을 가진 역량 있는 보컬 대신 걸그룹 위주로 곡을 선사하거나, 보컬의 음색이나 톤을 더 중요시하는 곡을 쓰는데 능하다. f(x)의 변신이 가능한 이미지와 개성은 페퍼톤스나 스윗튠처럼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곡을 써내는 뮤지션과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피노키오’-‘빙그르’-‘아이’-‘Stand Up!’이 앨범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된 이유다. 그밖에도 루나와 크리스탈의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두 발라드 곡 ‘Beautiful Goodbye’, ‘So into you’와 강렬한 SM표 하이브리드 록넘버라고 할 수 있는 ‘Dangerous’나 걸스힙합인 ‘My Style’ 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는 다 시도해본 것 같은 이 앨범은 감상 중에 통일성이나 일관성에 대한 걱정 따윈 떠오르지 않는다. 각각의 곡은 모두 다른 색깔을 가졌지만, f(x)의 독특한 색깔이 모든 곡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f(x)만이 가능한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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