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10 Voice] 메이크업을 지운 민호의 얼굴
[위근우의 10 Voice] 메이크업을 지운 민호의 얼굴
아다치 미츠루의 스포츠 만화 주인공이 책 바깥으로 튀어나온다면 저런 모습일까.
지난 설 연휴에 방영됐던 MBC 에서 활약하는 샤이니 민호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영과 높이뛰기, 50m 허들 경기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잘생긴 남자 아이돌. 물론 여자부의 씨스타 보라나 제국의 아이돌 동준, 지난 추석 대회 최고의 히어로였던 2AM 조권 등 탁월한 기량의 ‘체육돌’들은 많다. 50m 너머의 벽을 뚫을 기세로 열심히 달리는 아이돌 역시 많다. 하지만 출발선에 선 순간부터 조금의 웃음기도 없이 결승선을 향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보내는 건, 그리고 50m 달리기 우승자인 동준과의 50m 허들 대결에서 막판 거의 몸을 집어던지는 스퍼트를 하며 1위를 하고선 세상을 다가진 듯한 표정을 짓는 건 역시 민호다. 하지만, 그 다음이 더 중요하다. 기뻐 날뛰던 승부욕의 화신은 그제야 카메라를 보고 세리머니를 하며 싱긋 웃는다. 해맑게.

KBS 시즌2에서부터 불꽃 카리스마 민호의 활약은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활약보다 인상적인 건, 시청자의 눈에 띌 정도의 열정이 남자의 터프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의 승부욕에는 공격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20대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소년 같은 그의 외모, 훤칠하지만 테스토스테론 과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유선형의 몸매 때문일 수도 있다. 소의 눈처럼 선하고 그렁그렁한 눈에 무슨 공격성을 담을 수 있겠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토록 열심히 뛰는 중에도 그는 경쟁 자체에는 무심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의 에서 상추와 리키 김이 벌이는 신경전처럼 경쟁은 경쟁자에 대한 우월함 혹은 결핍을 동반한다. 하지만 민호는 최고 기록자가 우승을 차지하는 안에서 상대방이 아닌 상대방의 기록과 싸운다. 이번 수영대회 결승에서 ‘다른 분들이 잘하기 때문에 저 끝 결승선만 보고 달리겠다’던 그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1등을 하는 건 중요하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남과의 경쟁을 동반하지만 정작 민호는 ‘누군가를 이기는 것’보다는 최고 기록을 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1등이 되었을 때 2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받게 되는 환호와 관심, 그리고 우월감은 그의 관심 바깥처럼 보인다.

승부의 결과와는 상관 없다, 거기 소년이 있다
[위근우의 10 Voice] 메이크업을 지운 민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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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근육질의 ‘체육돌’들이 의 등장인물들이라면, 민호는 < H2 >의 히로다. 북산이나 해남의 선수들은 도내 넘버원, 혹은 전국 제패라는, 승리 너머의 타이틀과 영광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하지만 시속 150㎞대의 강속구를 경기 내내 던져대고, 프로팀의 주목을 받는 갑자원 최고의 괴물 투수인 히로는 진로에 대해 ‘동네 야구든 뭐든 괜찮다’고 말한다. 경기에서는 최선을 다해 이기지만 그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바라는 것이 없다. 소년의 열정이란 그런 것이다. 더 큰 세계를 바라는 야망도, 어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도, 분수에 만족하는 안분지족도 아닌, 온전히 그 순간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는 순수한 열망. 데뷔작인 KBS 에서 민호가 보여준 연기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드라마의 주인공 제로는 피아노 조율 일을 하며 독학한 것만으로 쇼팽의 곡을 현란하게 칠 수 있는 능력자지만 대학에 진학하거나 피아니스트로 대성하고 싶다는 바람이 없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의 설정이다. 하지만 제로를 완성한 건, 인사(한지혜) 앞에서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치고 난 뒤, 아무 말 없이 상기된 표정으로 긴장과 희열에 떠는 민호의 표정이다. 어린 시절의 미숙함이 아닌 유일한 시절의 순수함이 얼굴에 어린다.

물론 민호는 마음 속 독백까지 독자에게 다 공개되는 만화 속 주인공이 아니다. 실제로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뛰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앞서 말했던 몇 가지 요건들이 맞아떨어지며 다른 아이돌들, 심지어 ‘링딩동’을 부르던 민호에게서도 느낄 수 없던 판타지가 충족되는 유일무이한 순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메이크업을 지운 민호가 오직 결승선만을 바라보며 물살을 가른다. 수영모를 벗고 자신이 1등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주먹으로 수면을 크게 때리며 환호한다. 그리고 해맑게 웃는다. 거기, 소년이 있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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