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낯익은 모습이다. 패딩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나영석 PD를 보며 든 첫 생각이다. 그만큼 KBS ‘1박 2일’에서 패딩 점퍼에 백팩을 메고 멤버들을 어르고 달래 촬영을 이끄는 그의 모습은 이제 눈에 익숙하다. 30퍼센트에 달하는 시청자들은 ‘1박 2일’을 진두지휘하는 존재로서 그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해 연출자로서 더 많은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오히려 최근 들어 위험을 무릅쓰고 더 많은 실험적 기획을 시도하며 ‘1박 2일’의 영역을 더욱 넓혀가는 중이다.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대표자, 그리고 도전적이어야 할 예능 연출가라는 두 영역 사이에서 그는 과연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지난주 금, 토에 ‘1박 2일’ 촬영이었던 걸로 아는데 어디로 갔던 건가.
나영석 PD : 강원도 홍천에 있는 자연 휴양림에 가서 가볍게 찍고 왔다. 요즘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그 날도 날씨가 영하 17도였다. 늘 갈 때는 가볍게 간다는 생각으로 가는데 촬영 갈 때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지난 방송에서도 (김)종민이 겨울 바다에 입수했었는데 사실 그건 계획에도 없었던 거다.

“멤버들의 맷집과 잠재된 능력이 굉장히 크다”
나영석 PD│“‘1박 2일’이 겁이 없어졌다” -1
나영석 PD│“‘1박 2일’이 겁이 없어졌다” -1
가볍게 갔다면 특별한 기획은 없었던 건가.
나영석 PD : 간만에 계속 복불복하고 그러면서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예전 포맷을 보는 기분이겠다. 최근 몇 달 동안은 계속 특집이지 않았나.
나영석 PD : 그냥 우리가 별 거 아니더라도 특집이라고 이름 붙이는 거지. (웃음)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게, 멤버들도, 시청자도, 스태프도 어느 순간부터는 콘셉트가 확실하지 않으면 방송이 안 풀린다. 시청자부터 더는 복불복으로 밥 먹는 거 결정하는 정도로는 즐거워하지 않고, 멤버들도 자신들이 뭘 위해 이러고 있는지 확실하게 머리에 박혔을 때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언제부터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보나.
나영석 PD : 그런 변화를 인지하며 기획에서부터 반영한 건 작년 초부터였고, 본의 아니게 그런 요소가 더 강해진 건 김C와 MC몽이 빠지면서부터다. 전에는 게임 같은 걸로 가도 방송 분량이 쉽게 뽑혔는데 사람이 적어지니 그 부분을 스태프가 콘셉트로서 채워줘야 한다. 이 친구들에게 이번 주는 이러이러한 거다, 가령 쉬면 쉬는 거라고 던져줘야 그들도 그걸 머릿속에 넣고 움직인다. 그러면 그들이 만드는 이야기에 일관성이 생기면서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다.

그런 콘셉트는 명확해졌지만 예능적인 웃음 포인트를 잡긴 더 어려워졌을 것 같다. 6대 광역시 특집이나 스태프 없는 여행의 경우 어떤 장치 없이 그냥 리얼한 분위기로 소소하게 쭉 간다. PD 입장에선 좀 더 개입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나영석 PD : 사실 6대 광역시 투어에서는 야구선수들이 그렇게 많이 섭외될지 몰랐다. 나는 강호동 씨를 따라 대구에 갔는데 양준혁 선수에게 전화를 하더라. 나는 ‘아싸, 방송 분량 뽑겠다, 재밌겠다’ 이러고 있는데 (웃음) 다른 도시에 간 작가와 PD들에게 기쁨에 찬 문자가 속속 오는 거다. 선배님, 이종범 잡아왔어요, 이대호 섭외됐어요, 이러면서. 그때부터 고민이 되는 거다.

아무래도 출연자들이 너무 겹친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
나영석 PD : 이거 누가 보면 짰다고 할 거 같기도 하고, 천편일률적으로 야구선수만 나오는 것 같고. 제작진이 많은 걸 컨트롤 하는 상황이면 야구선수는 한 명이면 됐으니까 다른 사람 만나라고 했겠지. 그래도 그냥 찍는다. 오해 받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친구들이 직접 만든 백퍼센트이지 않나. 그걸 내는 게 맞는 거 같다. 양준혁 선수가 마지막까지 따라오기로 했으니 양준혁 선수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주고 이대호 선수 분량을 덜어내는 식으로 제작진이 분량을 조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이)승기가 자기가 섭외를 잘못한 건가 생각할 수 있다. 연출자는 방송으로 출연자에게 말을 하는 거라고 보는데, 나는 방송으로 ’너희는 잘한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과거 예능과도, 초기 ‘1박 2일’과도 다른 방식인데 멤버들의 반응은 어떤가.
나영석 PD : 두 가지다. 예전처럼 몸으로 구르고 웃음을 뽑아내는 걸 왜 안 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어려운 미션을 던져줄 때마다 어떻게든 뭔가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놀이공원에서 새 놀이기구를 만난 것처럼 즐거워하는 게 있다. 가령 이번에 휴양림 가서는 정말 쉬러 왔으니 기상 미션도 두 팀으로 나누어서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지는 걸로 하자고 했다.

예능인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난감한 미션이었겠다.
나영석 PD : 난감해하지. 정말 계속 자도 되냐고 물어보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단 해보자며 재밌어 한다. 이런 일련의 실험으로 알 게 된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멤버들의 맷집과 잠재된 능력이 굉장히 크다는 거다. 전에는 데리고 가서 다치지 않을 정도, 난감해하지 않을 정도의 기획을 했다면 이제는 그런 걸 고려하지 않아도 다들 척척 해낸다. 어떤 기획에서도 크게 망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내가 3년을 넘게 하면서도 이들을 얕보고 있었구나 싶다.

“우리끼리 즐거우면 됐다는 분위기가 있다”
나영석 PD│“‘1박 2일’이 겁이 없어졌다” -1
나영석 PD│“‘1박 2일’이 겁이 없어졌다” -1
실제로 스태프 없이 떠난 여행의 경우 밥 먹고 자는 게 전부인데도 남자들끼리 북적대는 분위기 안에서 예능의 호흡을 만들어내더라.
나영석 PD : 방송에 안 나와서 그렇지 굉장히 오랫동안 카메라를 돌려서 별별 내용이 다 있었다. 자기들끼리 복불복하고 벌칙 주는 것도 있더라.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아서 빼고 가장 기본적인 먹고 자고 설거지하고 씻는 부분만 내보냈다. 요즘 시청자들이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는 건 출연자가 그 상황에 몰입하는 거다. 강호동 씨가 제작의 전반적 여건까지 통틀어 생각한다면 다른 멤버들은 상황에 몰입하려 한다. 승기가 불을 피우려고 한 시간 동안 부채질을 하는데 나가는 건 10초 밖에 안 나갔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 그렇게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한 시간을 했는데도 이거 밖에 안 나오네, 이러면서 다음에는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안할 수도 있다. 욕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거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그런 게 없다. 이제는 방송은 어떻게 되든 우리끼리 즐거우면 됐다는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그게 우리 방송에는 더 맞는 분위기 같다.

그야말로 멤버들의 힘을 믿고 그냥 가는 건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뭔가.
나영석 PD : 우리가 겁이 없어졌다 (웃음) 프로그램이 수비적으로 바뀌는 순간 오히려 그때부터 내리막을 걷더라. 그렇기 때문에 더 공격적인 한 수를 두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전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텐데.
나영석 PD: 산촌에 멤버들만 갈 때는 연기자 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황당해 했다. 그냥 거기 카메라 설치해놓고 5㎞ 떨어진 곳에 펜션 잡고 있었는데 다들 PD가 시킨 일을 하면서도 불안해했다. 이렇게 있어도 돼? 나 PD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그런 것들이 있지만 그러면서도 서로를 믿는 거다. 스태프들은 연기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고 연기자들은 방송 분량 생각 안 하고 불이나 붙이면서 속으로는 연출진이 알아서 편집하겠지, 생각하고. 어떤 면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지. (웃음)

각자의 포지션에서 서로 요구하는 걸 해줄 거라는 합의라고 해야 할까.
나영석 PD : 그런 건 분명히 있다. 만약 팀워크라면 그런 게 팀워크겠지.

이런 변화 속에서 ‘1박 2일’이 만들어 가는 재미라는 것이 과거의 그것과는 달라지는 것 같다. 웃음에 대한 강박이 없어진 것 같은데 예능 PD로서 예능의 재미에 대한 관점 역시 바뀌지 않았나.
나영석 PD : 내가 볼 때 리얼 버라이어티는 아직 초창기다. 이나 ‘1박 2일’ 같은 프로그램은 으로 치면 이제 집합을 푸는 느낌이다. 아직도 뻗어나갈 분야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재미는 스토리인 것 같다. 예전에 박찬호 씨 불러서 복불복하고 그럴 땐 재미가 웃음에 있었다. 내가 봐도 웃기고. 그게 스토리의 재미보다 낮은 단계인 건 아니지만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스토리다. 앞서 콘셉트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콘셉트 안에서 이렇게 여행을 떠나 이러저러해서 끝났다는 기승전결이 만들어질 때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우리 프로그램이 시청률은 높지만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웃긴 프로그램은 아니다. 웃음으로 보면 10등 안에 들기도 간당간당 할 거다. 하지만 스토리가 주는 재미, 흡인력은 웃음만큼이나 강력하다. 그에 대한 믿음이 커졌기 때문에 겁 없이 멤버들에게 상황을 던져주게 되는 거지.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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