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이돌에게 예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는 가요 프로그램과 함께 개개인의 매력이나 캐릭터를 알릴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아이돌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더 이상 아이돌들은 차출된 멤버가 쭈뼛거리며 개인기를 선보이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춤이나 노래 이상의 개인기를 개발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소비하는 예능 프로그램 또한 그에 맞게 진화하고 있을까? 윤이나, 김교석 TV평론가 예능 프로그램이 아이돌을 대하는 자세를 KBS 과 MBC 을 통해 점검해보았다. /편집자주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KBS 4회에 고정 출연자가 된 슈퍼주니어의 은혁은 13명이나 되는 멤버들 사이에서 자신을 PR하는 방법을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말은 의 PR 방법에 더 어울리는 것이다. 동시간 대 타사의 예능 프로그램은 안정권에 돌입한 상태고, KBS에서는 이미 로 인지도도 인기도 다양한 아이돌을 모아놓고 다양한 시도들도 해봤다. 그렇기에 이 공략해야 하는 것은 “틈새시장”이다. 아이돌이 케이블의 리얼 버라이어티도, 가상 결혼도, 연애도 점령한 시대에 공중파는 아이돌과 함께 어떤 예능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학교’를 내놓았다. 하지만 “톱스타 되기”를 목표로 하는 학교는 새롭지 않다. 예능으로서도 그렇고, 학교로 보아도 마찬가지다. 매주 각기 다른 주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이 실제로는 장기자랑이나 개인기 퍼레이드가 될 수밖에 없는 형식의 코너이고, 1회성 미션이나 창의성이 엿보이지 않는 게임이 대부분이다. 그런 미션과 게임을 통해 결국 1등과 꼴찌가 생기고 상벌이 주어지는 것 역시 익숙한 경쟁의 체제다. 이미 음악 프로그램에서, 다른 예능에서 경쟁에서 올라가는 법만 배워왔을 스타들은 의 학교 내에서도 경쟁을 해야만 한다.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학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새로운 캐릭터의 가능성이 보인다 vs <꽃다발>│아이돌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예능" />대신 의 가능성은 생각지 않은 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출연자들의 개인적인 재능, 혹은 출연자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새로운 캐릭터의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가상의 학교라는 공간에 모여 학생이라는 역할을 부여받게 되면서, 아이돌을 주축으로 한 신인 연예인들은 기존 예능에서 단발적으로 보여주었던 자신들의 캐릭터를 그 안에서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게 되었다. 쌈디의 능글맞고 천연덕스러운 태도는 MBC 에서보다 동생뻘의 출연자들과 함께해야 하는 에서 더 빛을 발한다. FT 아일랜드의 홍기는 밖에서는 꽃미남 취급을 받지만 에서는 푸대접을 받는 것을 어필하며 홍초딩과 홍스타 사이를 오간다. 가장 확실한 캐릭터는 샤이니의 민호다.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민호는 진짜 이라는 학교의 학생처럼 행동한다. “에서 예능을 배운” 민호의 승부근성과 아이돌의 모범답안 같은 행동은 박명수의 유행어를 시의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센스와 합쳐지며 하나의 확실한 캐릭터로 부각된다. 똑똑하게 할 말 다 하는 레인보우의 재경이나, 뭘 해도 뻔뻔스럽게 해내며 귀여움을 어필하는 미스에이의 민도 있다. 고정 출연자인 아이돌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확고히 하고 그 캐릭터대로 행동해 나가면서 정체성이 불분명했던 은 한 편의 시트콤 같은 재미를 주기 시작했다. 이태성의 비현실적이고 독특한 예능감이 빛을 발한 건, 가장 시트콤 같았던 반장선거 에피소드에서 곧바로 캐릭터를 확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아이돌, 멈춰있는 예능 프로그램
하지만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 의 구성은 이런 출연자들의 예능감이나 새로운 캐릭터들을 하나로 엮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기에 적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출연자들은 보는 사람까지 어색하게 만드는 상황극과 고려가요를 랩이나 발라드로 불러보라는 식의 무리하고 즉흥적인 시도들, 식상한 게임들까지도 최선을 다해서 소화한 뒤에 ‘참 잘했어요’ 배지를 받아간다. 은 아이돌을 포함한 청춘스타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예능형의 연예인으로 거듭나고 있는지, 그럼에도 예능프로그램이 이들을 소비하는 방식이 얼마나 기존의 고정관념에 얽매여있는가를 확인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표다.
“3회째 촬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배운 게 있으십니까?” 3회, 반장선거에 나선 쌈디는 선생님의 영입과 교체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출연자들이 토론을 하면서 실제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웠거나, “잇몸이 보이면 비호감”이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자기PR의 방법을 배웠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MC들의 존재감 역시 미미하다. 하지만 한 회 한 회가 지날수록 점차 이라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확하게는 프로그램의 게스트가 아니라 구성원이 되어가고 있는 고정 출연자들에게는 이 진짜 예능학교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건 배웠다기보다는 스스로 체득한 것에 가깝다. 그들에게는 ‘참 잘했어요’ 배지가 어울린다. 남아있는 ‘분발하세요’ 배지가 누구의 몫인지 제작진은 알고 있다면, 시작은 거기서 부터다.
글 윤이나
MBC 은 자신의 매력을 네 가지로 자평했다. 첫 번째가 활력 넘치는 볼거리고, 두 번째가 깜짝 놀랄만한 힘이고, 세 번째가 열정, 네 번째가 꽃이란다. 정리해보면 생기 넘치는 여자 아이돌들이 출연한다는 거다. KBS 가 여러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한 팀으로 엮고, ‘몸빼’를 입혔다면 은 풀메이크업으로 치장한 아이돌 그룹이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도록 무대를 마련했다. 따라서 청춘 버라이어티라 쓰고, 여자 아이돌의 마이너리그라 읽는 은 여자 아이돌의 예능 분투기처럼 느껴진다. 지난 여름 첫 방송 이후 수차례 가해진 포맷의 변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대중의 기호에 대처해야만 하는 여자 아이돌의 숙명이다.글. 김교석(TV평론가)
무엇을 위해 변하는 지 모르는 쇼 vs <꽃다발>│아이돌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예능" />무엇을 위한 꽃다발인지는 명확했다. 최대한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면서도 큐사인 한 번이면 섹시해질 준비가 된 여자 아이돌들이 단체로 아양과 관능을 넘나든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자 아이돌을 소개해서 ‘국민돌’로 만들겠다는 제작진은 섹시댄스 퍼포먼스를 제외한 다른 장치는 모조리 걷어냈다. 초창기 은 한 시간 분량의 방송에 오프닝만 20분이 넘어갈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었던 ‘징거타임’의 시크릿의 징거나 시스타의 효린, 포미닛의 남지현, 전지윤 등은 이 피워낸 꽃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보여주는 섹시 퍼포먼스는 기존의 수많은 여자 아이돌이 남성들에게 소비되는 방식이었고, 몰개성을 넘어 지루함과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다. 그제야 엉뚱하고 털털하면서도 친근한 매력을 부각할 수 있는 선착순 퀴즈와 게임으로 아이돌의 무식과 망가짐을 애교와 웃음으로 승화시켰지만 이미 가 지나간 뒤였다. 결국 가을 개편에서 실제 1위를 하면 영화나 CF에 캐스팅되는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또 다시 포맷이 바뀌었고, 모든 변화의 몸부림이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하는 과정에서 은 최초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졌다.
쉴 새 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치면서 은 점점 다른 쇼로 변화한다. 작곡가 신사동호랑이의 캐롤송을 부를 팀을 선발하는 지난 19일 방송의 출연진에는 쿨룰라, 조혜련이 합류한 숙녀시대, 채연과 홍진영의 솔로시대, LPG 등 아이돌과 거리가 먼 팀들이 과반을 넘어섰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여자 아이돌 그룹이 뒤로 빠지자 쇼의 재미가 조금씩 드러난다. 이미 예능 캐릭터를 잡은 현아만이 쇼의 전면에 나설 뿐, 결국 조혜련, 채연, 고영욱 등이 이끌어가는 류의 선착순 퀴즈 및 게임 쇼가 된 셈이다. 초반 의 핵심이었던 퍼포먼스 무대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팀별로 미션을 완수하는 대결을 넣었다. 이로 인해 서로 본인의 무대만 집중하며 주인공과 방관자가 나뉘던 지루한 프로그램이 팀별 서바이벌 양상으로 흐르며 생기가 돌았고, 세대 간 혹은 아이돌 간의 다각적인 승부욕이 맞부딪치면서 MC들 또한 진행의 묘를 살릴 수 있게 됐다.
여자 아이돌 예능의 실패 선언문이 될 것인가
은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엉뚱하게도 기획 의도와 매우 동떨어진 지점에 와서야 그럴듯한 예능 프로그램의 꼴을 갖춰가고 있다. 아이돌이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굳이 예능으로 가져오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의 문제가 여기 있다. 그녀들을 전시하는 것에서 만족 할 것이 아니라 각자 개성이 드러나도록 쇼의 장치들을 갖추었어야 했다. 결국 초기 제작 의도와 상관없이 변화에 변화를 계속 모색하는 이런 의 처지는 여자 아이돌 예능의 실패 선언문처럼 보인다. 방송 시작 20분 동안 퍼포먼스를 보여줘도 시청률은 오르지 않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아이돌의 등장만으로는 아무런 볼거리가 될 수 없다. 은 그걸 처절한 시험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글 김교석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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