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쉽게도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거나, “지금껏 시청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대신 거짓말처럼 내리기 시작한 싸락눈을 배경으로 삽입된 “2010.5.16~12.19 ”이란 한 줄의 자막과 “수고하셨습니다”라는 MC들의 목소리만이 마지막 회라는 것을 알려줬다. 밤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포부로 시작되었던 KBS (이하 )의 마지막 회는 그렇게 아련하게 끝났다. 시청률이 높았던 편은 아니었지만 MC들의 호흡이 한창 물이 오른 시점에서 갑자기 결정된 폐지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마지막 회 편집이 한창이던 16일, 의 조승욱 PD를 만났다. 담담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한 조승욱 PD는 “프로그램의 선장으로서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지켜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 하고 있었다.의욕적으로 하던 프로그램이 막을 내린다. 마지막 촬영은 어땠나.
조승욱 PD: MC들이나 같이 일한 제작진들이나 고생만 하고 끝나는 거 같아 프로그램의 선장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폐지가 급하게 결정이 나서 19일에도 원래는 특선 영화가 편성되어 있길래 “그럴 순 없다.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오래된 초등학교 담장에 새 벽화를 그렸다. 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땀 흘려 좋은 일을 했다는 흔적을 남겨두면 보람이 있을 거 같았다. 마지막으로 컷을 부르는데, 허탈하고 쓸쓸한 마음도 좀 있었지만 의외로 담담하더라.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이 새 벽화를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다른 PD가 찍어 왔는데, 끝날 무렵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거다. 하늘에서 엔딩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웃음)
“미완의 그릇처럼 개발되고 있던 중인데, 아쉽다” 조승욱 PD “유쾌하면서도 끝날 때는 따뜻함이 0.5% 정도 남았으면”" />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최근엔 점점 감을 잡고 있지 않았나.
조승욱 PD: 우리도 MC들의 호흡이 맞으면서 우리만의 색깔이 나오고 있다 생각했다. 사실 상대할 예능 프로그램이 있는 시간대로 가서 6개월 정도만 더 해보고 싶었다. 그랬다면 뭔가 성과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고, 설령 처참하게 깨질지라도 제대로 한 번 붙어 보고 싶었는데. 싸워보지도 못 하고 링에서 내려오는 느낌이 가장 아쉽다.
시간대에서 오는 고충이 컸던 모양이다.
조승욱 PD: 원래 시작시간은 밤 11시 15분인데, 부터 시작해서 까지 시간이 조금씩 오버된다. 그러면 우리는 11시 25분, 30분 이렇게 들어가는 거다. 일요일은 다들 월요일 출근을 준비하다 보니 밤 11시가 넘으면 시청률이 확 빠진다. 한 주를 정리하는 시간대의 특성상 같은 잔잔한 기획물이 더 강세를 이룰 거 같단 생각도 했다. 실제로 < SBS 스페셜 >이 강할 때는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잘 안 나왔다. 일요일 밤 11시 시간대가 예능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더라. 핑계라고 이야기하면 할 말은 없지만. (웃음)
심야 토크쇼와 공익 코드 사이에서 헤매는 시행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
조승욱 PD: 그런 점도 있다. 을 시작할 때 회사는 공익적인 예능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밤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열기를 그리면 좋겠단 생각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점차 야외 버라이어티보다 토크에 능한 MC들의 장점을 좀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게 되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걸 무기로 삼아야 하니까.
처음에는 일반인들을 모아서 같이 착한 일을 하는 ‘착한 번개’의 비중이 컸다.
조승욱 PD: 원래 매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던 자원봉사 번개의 느낌보다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특히 온유를 보기 위해 모이는 번개처럼 흘러가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샤이니 팬들이 프로그램을 위해서 열심히 도와준 점은 정말 고맙지만, 처음 의도와는 좀 다른 그림이 나오기도 했다. 매주 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다 싶더라.
오히려 ‘착한 번개’의 비중을 줄이고, 야행카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호흡이 좋아졌단 느낌이 든다.
조승욱 PD: 사실 불특정 다수의 번개 인원을 부르면 100명이 넘을 때도 있다. 우리가 목표했던 좋은 일들은 분명 진행이 되지만, 그 안에서 MC들의 호흡을 보여 주기는 어려워지는 거다. 선행 중심으로만 스토리가 진행되어 버리니까. 오히려 야행카 안에서 MC들이 하는 토크가 우리만의 색깔을 만들어 가기엔 더 좋았다.
특히 신동엽과 윤종신의 호흡을 중심으로 MC들의 역할이 명확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조승욱 PD: 그 두 사람이 같이 방송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서로 이렇게까지 잘 맞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우리도 처음엔 둘 다 약간 깐죽거리는 진행 스타일이라서 겹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더 상승작용을 일으킨 거 같다.
다른 MC들도 제 역할을 잘 해줬다.
조승욱 PD: 길은 선이 굵고 거친 캐릭터를 잘 소화해줬고, 장항준 감독도 프로그램 색깔을 만들어 가는 데 크게 일조했다. 온유 같은 경우는 공익 콘셉트에 맞게 모범적이고 착한 청년이기도 하고, 3,40대 MC들 사이에 젊은 피가 한 명 있었으면 했다. 주변 MC들이 도와주면서 온유의 캐릭터도 부각 되던 차였다. 미완의 그릇처럼 개발되고 있던 중인데, 아쉽다.
하지만 그의 딱밤은 이미 완성형 아닌가. (웃음)
조승욱 PD: 아, 딱밤. (웃음) 우리도 온유가 그렇게 딱밤을 잘 때릴 줄은 몰랐는데, 정말 맛깔나게 때리는 거다. (웃음) 나중엔 공식 홈페이지에 “온유의 딱밤에 도전하고 싶다”는 신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런 것도 해볼까 생각했었다.
“성인 코드 개그로는 신동엽은 가히 신이다” 조승욱 PD “유쾌하면서도 끝날 때는 따뜻함이 0.5% 정도 남았으면”" />
외부와 차단된 공간인 야행카 안에서의 토크는 친구들의 회합 안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도 있었다. MC들도 모두 남자고.
조승욱 PD: 기획단계에서부터 골방 내지는 해적방송 토크를 표방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만의 아지트에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고, 그렇지만 기동성을 갖춰서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 갈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 했던 게 야행카의 기본 콘셉트였다.
이 호흡이 좋아진다고 느꼈던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식의 필요에 따라 포맷이 변할 수 있는 유동성이었다.
조승욱 PD: 리얼 버라이어티들도 매주 새로운 포맷을 실험하는 것처럼 우리도 매주 새로운 장치를 넣으려 했다. 밤참만 대접하고 돌아오는 건 너무 뻔하니까. 예를 들면 야간 시프트를 도는 간호사를 찾아갔던 편에서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아직 한 번도 연애를 못 해 봤다는 말에 작가들과 고민해서 매니저들과의 미팅을 준비해서 가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은 공익 콘셉트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강요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껏 고향 음식을 마련해서 갔더니 ‘우리 이거 매일 먹는다’고 대꾸하는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은 감동을 기대하다가 허를 찔린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조승욱 PD: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옳다고 봤다. 억지로 포장하면 시청자들이 다 안다. MC들이 그런 돌발상황도 훈훈한 웃음으로 승화시킬 역량이 되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소소한 기쁨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도 잠시 일손을 내려놓고 함께 족구도 하고, 고향에 보내는 영상 편지도 찍으면서 즐거워해 줬으니까. 감동에 대한 접근 부분은, 처음 MC진을 꾸릴 때부터 장난기도 많고 착한 것과는 어쩐지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사람들로 구성하려 했다. 그러면 착한 일을 할 때도 너무 뻔하게 착한 사람들하고는 또 다른 재미가 나올 거라고 봤다
‘부엉할매의 이야기마을’ 코너도 시각장애아동들을 위한 소리책 녹음을 하는 코너인 동시에, 훌륭한 콩트 토크이기도 했다.
조승욱 PD: 녹음하는 과정만 내보내면 짧게 한 꼭지 나가겠지만, 우린 그걸 큰 코너로 만들고 싶어서 설정 토크를 도입한 거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책을 만드는 코너니까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그런데 공교롭게 신동엽과 윤종신이 콩트 중에 주고 받았던 애드리브가 논란이 되었지.
심야 토크쇼라는 정체성 안에서 이해되기를 바랐던 건가.
조승욱 PD: 사실 할머니가 손주 고추 좀 보자는 차원의 콩트였는데, 성인 남자가 성인 남자의 성기를 보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웃음) 그걸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여서 더 선정적으로 해석하는 게 문제지, 그 자리에 초대받았던 카라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 거북하게 받아들인 분들이 있었다면 물론 우리 잘못일 것이다. 웃음에 집착하느라 편집에서 더 걸러야 했던 걸 놓친 거겠지. 하지만 이렇게 논란이 될 정도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신동엽은 그런 미묘한 성인코드의 개그를 민망하지 않게 구사한다. 또 그런 개그는 능숙하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윤종신이 참 훌륭한 파트너였다.
조승욱 PD: 윤종신도 그런 개그를 좋아하고, 잘 구사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아는 것처럼 토크 주워먹기는 윤종신이 대한민국 최고 아닌가. 신동엽의 개그를 주워먹으며 잘 살려줬다. 를 같이 할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런 방면에선 신동엽이 국내 최고다. 유재석, 강호동이 해줄 수 없는 부분이고, 어떻게든 거부감 없이 포장해서 방송용으로 만들 줄 안다. 수위를 절묘하게 넘나들면서 가려운 부위를 긁어주는 성인 코드 개그로는 신동엽은 가히 신이다.
사실 코너 자체의 의의는 공익적이었는데, 그런 논란 때문에 어느 정도 빛이 바란 듯한 느낌도 있었다.
조승욱 PD: 우리도 꾸준히 밀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녹음하는 과정에서의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는 코너였고. 시각장애인 연합회에서도 아이들 반응이 좋다고 이야기해줬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목소리를 알고 있는 연예인들이 동화를 읽어주니까 재미있었을 것 같다. 방송엔 안 나가지만 후반작업을 통해 제대로 된 효과음도 넣고 성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소리책 코너로 넘어가면 분당 시청률이 떨어지더라. 시간이 늦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가만히 앉아 주어진 텍스트를 읽는 게 답답하다고 느낀 분들도 계시더라. 그 코너 안에서 실험을 더 해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혹시 TV 매체에는 안 맞는 건가 하는 고민도 했다. 아무래도 오디오북을 녹음하는 과정을 다룬 거라 듣는 재미에 치우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고.
“하늘에서 엔딩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조승욱 PD “유쾌하면서도 끝날 때는 따뜻함이 0.5% 정도 남았으면”" /> 그러다 보니 시청률도 낮은데 논란만 일으킨다는 식의 의견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런데 시청률 자체는 동시간대 1위할 때나 아닐 때나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진 않지 않았나.
조승욱 PD: 시청률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사를 하지 않고 단편적인 인상으로만 글을 쓴 분들도 있는 거 같고. 최근에는 계속 8% 정도의 시청률이 나왔다.
폐지를 맞이하게 된 이유 중에는 결국 시청률과 논란의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작용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조승욱 PD: 뭐…. 아쉽다. (웃음) 어떻게든 내가 프로그램을 지켜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을 통해서 그리고 싶었던 큰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조승욱 PD: 유쾌하면서도 끝날 때는 따뜻함이 0.5% 정도는 남는 그런 프로그램. 너무 웃기만 하다가 끝나 버리면 가끔 사람이 허탈할 때도 있지 않나. 독한 이야기만 듣다가 보면 나중에 질리는 것처럼. 게스트들도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던 에너지를 잘 전달하고 싶었고. 중장기적 기획도 이야기를 해보려던 차였는데. (웃음)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리고자 했던 그림은 어느 정도 그려 낸 것 같나?
조승욱 PD: 다사다난한 7개월이었다. 시작하자마자 KBS 새노조 파업에, 월드컵도 있었고. 초반 마음 고생이 심했다. 시청률에 대한 압박이 회사에서 오는 것뿐 아니라, 창작하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에게 주는 것도 컸으니까. 우리가 과연 뭘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컸고. 그런 것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는데… (웃음) 특히 신동엽이 한동안 침체기였는데 유능한 예능인인 동시에 좋은 친구이기도 한 그가 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길 바랐다. 본인도 그런 의지가 강했고. 그래서 그에게 참 미안하다.
당신에게 은 어떤 걸 남겼을까.
조승욱 PD: 글쎄. MC들과의 호흡, 제작진들의 호흡. 그 팀워크의 경험은 앞으로도 쭉 가져가고 싶다. 나에게 남은 건 그 정도인 것 같다. 우리끼리는 또, 다들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새벽에 촬영이 끝나면 헤어지기 아쉬워서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하고 들어가고 그랬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앞으로 자주 보기 어려울 테니까, 그런 것들이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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