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영화 의 시작을 연 것은 그동안 공개된 스틸이나 예고편에서 봤던 웅장한 대저택이나 귀부인의 고급스러운 옷자락이 아니었다. 영화는 신도시의 급조된 먹자골목에서 고기를 굽거나 전을 부치고, 전단지를 돌리는 여성들의 피로함을 한참 비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웃고 있는 은이(전도연)를 발견하는 순간, 이 천진한 여성이 하녀의 옷을 입은 뒤 어떻게 변할지 불안감 섞인 기대를 품게 된다. 3일 언론시사에서 공개된 는 임상수 감독이 “원작 영화의 리메이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만큼 고 김기영 감독의 와는 사뭇 달랐다. 에서 빌려온 네 인물의 캐릭터 드라마에 가까운 2010년의 는 은이의 몸부림을 통해 과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강렬하게 묻는다.

양치질을 하다가도 풀썩 풀썩 웃음을 터뜨리는 소녀 같던 은이가 해라(서우)와 훈(이정재) 부부의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면서, 늙은 하녀 병식(윤여정)이 은이를 만나면서, 은이와 훈, 해라가 마찰하면서 피어나는 변화의 연기는 처음에는 희미하지만 이내 큰 저택을 한 치 앞도 안보일 만큼 가득 채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기 이전에 타인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은이는 가련하고, 충격적이다. 그러나 완벽할 정도로 치장된 매끈한 외양에 비해 영화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한 꺼풀만 벗겨도 금새 밋밋하게 건조된다. 자신의 영화를 “있는 척하지 않는 예술품과 세련된 오락물 사이 어디쯤”이라고 한 감독의 말처럼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볼 것을 권한다. 영화는 5월 13일 개봉한다. 다음은 영화가 공개된 직후 이루어진 기자 간담회 내용이다.
를 50년 만에 다시 만들면서 새롭게 하거나 아니면 지키고 싶었던 영화의 의미 같은 것들이 있었나?
임상수 감독: 이번에 영화를 하면서 김기영 감독님의 를 많이 봤지만 잊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잊었다. 이전의 에 나왔던 캐릭터들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만든다고 생각했지, 리메이크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진 않았다.

“노출신은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려고 했다”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파격적인 노출 신이 화제가 될 것 같다.
전도연: 배우이기 때문에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이번 영화 찍으면서 좀 답답했다. 몸으로 뭔가를 표현할 때 아직도 내가 내 몸을 극복하지 못했단 생각에 답답했다.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려고 했다.
임상수 감독: 전도연은 이번 영화에서 물불 안 가리고 다 했다. 영화를 하면서 여배우의 노출을 상업적인 의도로 생각하지 않았고, 가리느냐 벗느냐보단 자연스럽게 가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런 마음을 전도연이 너무 잘 읽어줘서 고마웠다.

대저택의 주인이자 하녀 은이와 관계를 맺게 되는 남자 훈은 온화한 겉모습 안에 사악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한,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 내면을 가졌다.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남성 캐릭터다.
이정재: 이런 역할은 나도 못 봤던 거 같다. 내 입장에선 이상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 되는데 감독님이 조금씩 더 깊은 표현을 요구했다. 대사도 새로 만들어오고, 여기서 더 익살스럽게 혹은 약간 더 야비하게 등의 주문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하기 싫고 의문이 났는데 (웃음), 하녀 역할을 맡은 두 인물에게 좀 더 모멸감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그런 거라면 감독님 말대로 혹은 어떨 때는 더 나가보자는 마음으로 찍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의 이런 캐릭터가 나왔다. (웃음)
임상수 감독: 사실 훈은 나쁜 남자가 아니다. 젠틀하고 속에 뭔가는 있겠지만 이 정도 나쁜 짓 안 하는 사람은 없다. 해라 또한 나쁜 짓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만 계속 현실을 강조하는 어머니에 의한 측면이 크고. 이 영화 속에는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영화 안에서 라는 타이틀이 사실 병식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에게서 많은 의미가 나온다.
윤여정: (전)도연이는 신세대 하녀고, 난 뼛속까지 하녀인 사람이다. 임상수 감독의 첫 대본에 있던 말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우리 모두 다 하녀근성이 있다’였다. 날 더러 들으라 하는 말 같아서 뜨끔했다. (웃음) 구세대가 그렇지 않나? 여러분이 보기엔 우리 세대가 다 그래 보이지 않나? 내 세대에 맞춰 병식을 표현하려고 했다.
임상수 감독: 어쩌면 은이는 너무 예쁘고 귀엽고 가슴 아프긴 하지만 비현실적일 수 있다. 그러나 병식은 우리 주변의 누군가 혹은 자신과도 같은 역할이었다. 이 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가 우리 안의 하녀근성이었는데 그걸 드러내는 캐릭터였다.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너무 신기했다”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전도연, 윤여정, 이정재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연기 하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부담도 많이 되고.
서우: 처음 다 같이 식사한 날 이정재 선배님처럼 나도 체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해라란 역할이 작지만 중요한 역인 것 같은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서 그 자리가 끝나고 나서도 많이 울었다. 촬영하는 동안은 선배들을 보면서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하실 수 있을까, 감독님의 디렉션에 맞춰서 연기하는 걸 보고 많이 배웠다.

영화의 주배경이 되는 훈과 해라 부부의 저택도 그렇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고급스럽게 나왔다.
임상수 감독: 김기영 감독님의 작품은 1960년도 작품으로,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바탕이 깔려있다. 그때 당시가 한국에서 비로소 중산층이란 집단이 생기기 시작했고, 도농간의 경제적인 격차가 커서 농촌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올라왔다. 그 중에 여자들은 식모라고 불리던 하녀들이 되어 부자가 아닌 중산층에도 있었다. 그런 문제가 김기영 감독님의 작품 근저에 깔려있는 거고. 를 50년 만에 다시 하면서 생각한 건 부자들이 대단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억만장자 같은 부자들. 아무래도 그런 것들이 영화에도 반영됐다. 그러나 몇 천만 원짜리 포도주를 하루 저녁에 마시고, 몇 억짜리 그림을 집에 걸어놓는 그런 사람들이 생긴 반면에 중산층의 밑동이도 해체됐다. 영화의 앞부분에 나오지만 보통의 가정주부들이 식당일이나 힘든 일에 내몰리는 사회, 경제적인 바탕을 영화에 깔고 싶었다.

배우들 모두 경험해보지 않은 최상류층의 삶이나 하녀의 일상을 연기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선 어땠나?
이정재: 최대한 뻔뻔해지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감독님의 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이런 역할이 처음이라 많이 꺼리기도 아무래도 하기로 결정을 했다 해도 힘든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도 참 재미나게 한 거 같다.
전도연: 배우는 항상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과 감정에 놓여 있다. 경험하지 못한 걸 하니까 촬영하면서 알아가고, 경험했다.
임상수 감독: 실은 첫 촬영하고 나서 이정재와 대책회의를 했다. 이 여배우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할까, 괜히 K.O.펀치를 날리려다가 헛손질하면 안되니까 잽이나 날리면서 아웃복서로 선방하자로 결론이 났다. (웃음) 그 결과가 오늘 보신 건데, 사실 잽이 무서운 거다. (웃음) 전도연도 이 영화를 짧은 기간에 순서대로 찍지도 않았다. 훈에게 아침을 배달하는 장면 서로 다른 두 장면 같은 경우, 전후 상황이 없이 찍는데 두 신을 전혀 다른 바디랭귀지로 찍는 것에 감탄했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예술가 지망생인데 전도연은 이미 완성된 예술가다.

“칸 경쟁부문에서 가장 지루하지 않은 영화가 될 것”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임상수 “난 예술가 지망생, 전도연은 완성된 예술가”
은이가 보이는 모성애나 아이와의 밀착된 관계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전도연: 촬영할 때는 온전히 나 자신만 생각한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를 생각해서 없던 모성을 더 느끼진 않았다. 내 자체가 원래 모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때도 이창동 감독님께 왜 날 캐스팅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모성애가 제일 강할 거 같아서라고 하시더라. (웃음) 결혼해서 아이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온전히 내 안에 갖고 있던 걸 가지고 촬영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와 함께 칸으로 떠나게 됐는데.
임상수 감독: 칸에 가게된 것은 김기영 감독님과 전도연 덕분이다. 칸은 근엄한 영화제이고 근엄한 감독들의 근엄한 작품들이 오는 곳인데 전혀 근엄하지 않은 내 영화가 끼게 되서 나로선 통쾌하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경쟁부문에서 상영되는 작품 중에 가장 지루하지 않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자신한다. (웃음)
전도연: 칸에 가는 두 번째 작품인데, 처음 갔을 때 너무 긴장하고 떨려서 즐기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는 마음 편히 가서 많이 보고 즐기다 와야겠다.
이정재: 개인적으로는 처음 가는 칸이고 솔직히 TV나 매체에서만 분위기를 봤는데 떨리고 기대된다. 잘 즐기고 왔으면 좋겠다.
윤여정: 칸이란 도시를 처음 가보게 되서 우선 좋다. (웃음) 김기영 감독이 옛날에 갔어야 하는데 못 갔다. 우리 시대만 해도 임상수 감독이 하녀근성이 뼈에 박혔다고 놀릴 정도로 칸 영화제라는 게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가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김기영 감독이 있었으면 갔을 텐데 난 그냥 감독 대신 가는 걸로 생각한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슬프네. (웃음)
서우: 우리 영화가 칸에 가게 되서 너무 너무 영광이다. 그리고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건데 이렇게 칸에 갈 수 있는 영화에 참여하게 되서 행복하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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