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개봉한 은 지난 해 12월 방송된 MBC 특집 다큐 의 극장 판이다. 86년 MBC에 입사해 25년간 보도국 기자로 일해온 황석호 감독은 1년 전 한 일간지의 단신 기사에서 영화의 주인공 이상호 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흔네 살의 나이에도 정신 연령은 예닐곱 살 수준에 불과하고 함께 사는 가족 하나 없는 ‘동네 바보’ 상호 할아버지는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으로부터 출발한 황석호 감독은 울릉도로 날아가 상호 할아버지의 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루할 틈 없이 웃음과 눈물이 고이는 다큐멘터리 영화 의 황석호 감독으로부터 상호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들었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황석호 감독 : ‘동네 바보’가 주인공인 영화다. 어릴 때 동네마다, 초등학교 교실마다 조금 모자라는 친구가 있었다. 남들에게 해코지할 줄도 몰랐고 놀림 받아도 씩 웃는 이들이었다. 그 시절 그 ‘바보’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발 디디고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이었다. 아이들이 심하게 놀리거나 괴롭히면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이 그러지 말라고 먼저 혼을 내셨다. 넉넉하지 않아도 더불어 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우리가 마을을 떠나고 고향의 풍경도 변하고 어르신들도 세상을 떠나신 뒤, 정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곳에 혼자 남은 그 바보는 어떻게 됐을까. 그런 경우 대개 젊은 나이에 병이 들어 죽거나 보통 사람들은 당하지 않을 어이없는 사고로 죽게 마련이다. 그런데 상호 할아버지는 일흔 네 살까지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신선의 경지까지 가지 않으셨나 싶다. 짐승도 오래 살면 영물 취급을 하는데 상호 할아버지는 바둑으로 치면 9단, 생존 10단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울릉도에서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건 본인의 생존 의지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정과 지역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상호 할아버지를 철저히 챙긴다”
보다 감동 백배, 재미 백배”"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22618214370034_2.jpg" /> 1년에 걸쳐 촬영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황석호 감독 : 텔레비전 취재는 현장에 나가면 화면과 현장음으로 보여줘야 하니까 양동암 촬영 기자가 고생이 많았다. 한 번 촬영을 가면 열흘에서 보름 정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상호 할아버지에게 따라붙었는데 의사소통이 잘 안 되시니까 인터뷰를 하기도 어려웠다. 주민들 얘기에 의하면 할아버지가 예전에는 정신 연령이 일곱 살 정도였는데 나이가 드시면서 지금은 다섯 살 약간 못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아이 같으신 분이라 처음 만났을 땐 반기시더니 나중에는 왜 계속 찍냐고 짜증내시고, 그래서 간다고 하면 또 오라고 하시고. 촬영 기자가 성격이 무던해서 할아버지에게 온갖 지청구를 당하면서도 잘 견디더라. (웃음)
영화를 보면 상호 할아버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실 수 있는 데는 울릉도라는 따뜻한 공동체의 특성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 겪어보니 어떤가.
황석호 감독 : 옛날 시골 마을들이 다들 그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고 누구 하나 안 보이면 어디 갔나 챙겼던 것처럼 상호 할아버지가 사는 도동항이 그렇다. 만약 아저씨가 도회지로 나왔다면 부랑자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도동항은 서울로 치면 압구정이나 명동 같은 번화가인데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 있는 CCTV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호 할아버지 일을 철저히 감시하고 챙긴다. (웃음) 정이 많으셔서 우리도 몇 번 갔더니 오징어 한 축 사면 열 마리쯤 공짜로 주시고 아침에 촬영 나가면 더덕즙도 그냥 주시곤 했다.
동네 분들이 상호 할아버지에게 잔일을 부탁하고 수고비를 드리던데 할아버지는 돈 벌면 주로 어디에 쓰시나?
황석호 감독 : 젊어서는 부둣가 짐꾼으로 돈도 꽤 버셨다는데 친척들 병원비나 학비를 많이 도와주셨다고 한다. 지금은 조금씩 받는 돈을 계속 저축하시는데 가끔 자기한테 잘 해주는 사람 있으면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주시고, 교회에 오천 원이나 만 원씩 헌금 내시고, 가끔 동네 애경사에 부주도 하신다.
인터뷰나 설명적인 내레이션 대신 상호 할아버지의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영상이 대부분을 구성한다. 주인공의 특성과 상황을 살리기 위해 형식적인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황석호 감독 : 르포라면 직접 리포팅을 하거나 현장 인터뷰를 쓸 수 있는데 상호 할아버지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으니까 인터뷰 대신 어떤 방식으로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본인의 멘트를 직접 끄집어내는 대신 수십 년 동안 상호 할아버지를 겪어온 사람들을 통해 대화 겸 인터뷰를 이끌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동네 아주머니나 이장님께 부탁을 드렸다. 처음에는 촬영하자고 하면 “내가 뭘” 하시다가도 두 번쯤 가면 이야기를 좌악 풀어주시면서 “잘 됐능교?” 묻기도 하셨는데 다들 애드리브를 잘 해주셨다. 필요한 이야기의 앞뒤까지 알아서 물어봐 주신 덕분에 일이 효율적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게 진행됐다. 그리고 내레이션을 쓴다면 동화 스타일로, 성우는 아역 배우가 어떨까 했는데 울릉도 첫 출장을 갔을 때 1회를 보고 바로 남지현 양에게 맡기기로 결심했다.
“장편 영화로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 소재가 흔치는 않다”
와 극장판인 은 얼마나 차이가 있나?
황석호 감독 : 취재를 몇 번 다니면서 영화로 만드는 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래서 는 이미 80분 분량으로 만들어져 있던 내용을 38분 정도로 짧게 편집해 내보낸 거다. 방송에서는 재미가 있더라도 시간관계상 전후 맥락을 설명하기 힘든 장면을 편집해야 했지만 영화에서는 거의 살렸고 주민들의 인터뷰 대신 상호 할아버지의 생활을 더 많이 보여줬다. 아마 80% 정도 차이가 날 것 같다.
방송이 나간 후 상호 할아버지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
황석호 감독 : 교회에 갔더니 사람들이 인사를 많이 하더라고, TV 보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셨다. 이가 많이 빠지셔서 군청에서 며칠 전 틀니를 완성해 끼워드렸더니 밥 먹을 때마다 불편하다며 빼 버리신다고 한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황석호 감독 : 방송제작비는 광고 판매 등으로 이미 충당이 됐고 영화화하면서 더 쓴 돈은 5백만 원도 되지 않아 조금 민망할 정도다. 장사익 씨의 ‘달맞이꽃’과 ‘귀천’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는데 원래 알던 사이라 “음악 좀 공짜로 쓸게요” 하고 부탁드렸더니 허락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흐르는 김목경의 ‘부르지 마’는, 사실 김목경과 초등학교 동창이라서 전화로 이야기했다. “굿 뉴스와 배드 뉴스가 있다. 굿 뉴스는, 내가 영화를 만드는데 니 음악을 배경에 쓸 거고, 배드 뉴스는 돈을 못 준다는 거다”라고. (웃음)
제작비가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방송 다큐멘터리의 영화화를 종종 시도할 만하지 않을까?
황석호 감독 : 돈이 문제가 아니라 소재가 문제다. 에서 고향, 소, 부모님들이 나왔다면 에서는 고향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는데 장편 영화로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 소재가 흔치는 않은 것 같다.
“마음만 달리 먹으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보다 감동 백배, 재미 백배”"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22618214370034_1.jpg" />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면.
황석호 감독 : 상호 할아버지가 혼자 달리기 하고 나서 “둘이 해도 일등, 셋이 해도 일등, 혼자 해도 일등”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돈 가지고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 말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치면 상호 할아버지는 아예 등수 외에 있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사람 다 줄 세웠을 때 뒤에 설 사람이 얼마 없다. 하지만 과연 일등들은 행복할까, 일등 보고 따라가는 이등, 삼등은 행복할까? 정해진 트랙 없이 마음대로 가는 게 인생인데 꼴찌가 어디 있고 일등이 또 어디 있겠나. 그러면 행복이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얘기 하셨 듯, 상호 할아버지는 배부르면 걱정이 없다. 자기가 일해서 버는 돈도 얼마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서 가장 원초적인 행복을 느끼는 거다. 그러니까 마음만 달리 먹으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고 누구든 인생의 일등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기를 기대하나.
황석호 감독 : 솔직하게 말하면 미친놈이라고 할 것 같은데. (웃음) 품질 면에서는 보신 분들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보다 감동 백배, 재미 백배라고 믿고 싶다. (웃음)
혹시 상호 할아버지도 이 작품을 영화로 보실 수 있을까?
황석호 감독 : 내 개인적인 소망은 이 영화를 가지고 울릉도에 가서 상영하고 할아버지께 보여드리는 거다. 그런데 그러려면 영화가 좀 수익을 내야겠지.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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