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직업은 약을 만드는 건데 이 분의 노래가 더 멋진 약이 될 때가 많습니다.” 루시드폴이 KBS 에 출연하자 MC이자 그의 지인인 유희열은 이렇게 소개했다. 이 한 마디엔 미선이 시절부터 시작되는 루시드폴의 디스코그래피와 그의 스웨덴, 스위스 유학 과정에 대한 바이오그래피를 나열하고, 그것을 치유라는 공통분모로 묶어내는 수미일관한 담론이 압축되어 있다. 사람들은 흔히 루시드폴의 음악에 대해 치유와 위로라는 수식을 붙인다. 이것은 음악이 좋다, 나쁘다는 것과는 다른 범주이기에 흥미롭다. 치유란 근본적으로 다른 한쪽의 병, 혹은 결핍을 전제한다. 그래서 루시드폴의 음악과 인기에 대한 이야기는 동시에 그와 마주선 청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루시드폴이 사랑받는다는 것의 의미 사실 루시드폴의 음악은 꾸밈없는 어쿠스틱 반주와 차분한 멜로디 때문에 사랑 받는다고 쉽게 말하기엔 어려운 어떤 극단적 성격이 있다. 그는 자신만의 음악적 취향을 가진 작곡가이기 이전에 극도로 낮은 음역대의 보컬이다. 앨범 작업할 때 자기 목소리 믹싱이 가장 큰 과제라는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목소리는 온풍기의 가동 소리에 묻힐 정도로 낮고 작아서, 인터뷰 녹음 파일을 녹취할 땐 이퀄라이저로 음역 조절을 한 뒤 몇 번씩 반복해 들어야 할 정도다. 이런 그의 목소리와 호흡에 맞춘 음악은 미선이 시절의 절창인 ‘시간’에서처럼 나른하면서도 허무함이 짙게 배어나온다. 물론 그 감성은 절절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대중보단 평론가가 좋아할만한 음악이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마스터플랜의 이종현 대표가 “루시드폴 정도의 음반 판매력과 인기를 가진 뮤지션 10명만 있어도 인디 신이 엄청나게 부흥할 것”이라 말할 정도의 인지도를 얻었다. 좋은 음악이 인기를 얻는 건 당연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코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심지어 연가의 느낌이 강했던 2집 과는 달리, 제3세계 노동력 착취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람이었네’가 타이틀이었던 3집 은 발매된 주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루시드폴의 음악이 과거에 쉽게 들을 수 없던 음악이었다면 그의 인기 역시 과거에 쉽게 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듣는 이와 함께 공유하는 울림 지난 해 말 발매한 4집 의 초도 물량 1만장이 3일 만에 품절된 건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공학 박사 학위를 따느라 “한 발은 유럽에 한 발은 한국에 걸친 느낌”으로 지내던 그가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와 만든 음반의 제목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음반을 구매하고 열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 것인가. 스스로 자신의 음악에 대해 “큰 그림을 디렉팅 한 이후 거기서 파생된 우연의 결과들이 모인 것도 편곡”이라 말하고 가사에 대해서도 “청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생각을 갖고 쓰면 안 되겠다”고 할 정도로 그는 청자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타입은 아니다. 대신 그는 풍족하지 않지만 왠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저녁 밥상을 환기하는 ‘고등어’처럼,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민감한 촉수로 찾아내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그런 면에서 그는 동시대 한국에 대한 일종의 지진계일지도 모르겠다. “복원되지 않은 경희궁 대신 공룡처럼 들어선”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오피스텔을 보고서는 몸서리를 치는 그의 정서는 사회를 향한 말을 내뱉을 때도 과거의 넥스트 같은 밴드처럼 공격적이거나 직설적이지 않다. 대신 우리, 즉 ‘너무나 평범한 사람’(‘평범한 사람’)들이 막연히 느끼고 있던 상실감을 자극한다. 모든 음악이 궁극적으로는 그렇겠지만 루시드폴의 음악과 그 인기를 CD 안에 박제된 텍스트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청자와 공명하는 과정 혹은 현상으로서 이해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때문에 지금 루시드폴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그의 가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동시대의 어떤 결핍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이 빠르게 등장한다는 것은 과거의 것이 빠르게 폐기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서서히 밀려오던 군화 소리 대검의 빛’(‘레미제라블 Part1’) 같은 어떤 역사적 상흔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눈물 나게 아름답다는 말’(‘외톨이’)처럼 듣고 싶지만 들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다. 물론 현실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그의 가사가 너무 관념적이거나 감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그의 관점이나 진정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 이곳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루시드폴이라는 지진계는 우리가 느끼는 아쉬움들을 자신의 노래에 담아낼 것이고, 우리는 종종 그것을 들으며 ‘심장 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걸어가자’)는 치유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루시드폴이 사랑받는다는 것의 의미 사실 루시드폴의 음악은 꾸밈없는 어쿠스틱 반주와 차분한 멜로디 때문에 사랑 받는다고 쉽게 말하기엔 어려운 어떤 극단적 성격이 있다. 그는 자신만의 음악적 취향을 가진 작곡가이기 이전에 극도로 낮은 음역대의 보컬이다. 앨범 작업할 때 자기 목소리 믹싱이 가장 큰 과제라는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목소리는 온풍기의 가동 소리에 묻힐 정도로 낮고 작아서, 인터뷰 녹음 파일을 녹취할 땐 이퀄라이저로 음역 조절을 한 뒤 몇 번씩 반복해 들어야 할 정도다. 이런 그의 목소리와 호흡에 맞춘 음악은 미선이 시절의 절창인 ‘시간’에서처럼 나른하면서도 허무함이 짙게 배어나온다. 물론 그 감성은 절절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대중보단 평론가가 좋아할만한 음악이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마스터플랜의 이종현 대표가 “루시드폴 정도의 음반 판매력과 인기를 가진 뮤지션 10명만 있어도 인디 신이 엄청나게 부흥할 것”이라 말할 정도의 인지도를 얻었다. 좋은 음악이 인기를 얻는 건 당연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코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심지어 연가의 느낌이 강했던 2집 과는 달리, 제3세계 노동력 착취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람이었네’가 타이틀이었던 3집 은 발매된 주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루시드폴의 음악이 과거에 쉽게 들을 수 없던 음악이었다면 그의 인기 역시 과거에 쉽게 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듣는 이와 함께 공유하는 울림 지난 해 말 발매한 4집 의 초도 물량 1만장이 3일 만에 품절된 건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공학 박사 학위를 따느라 “한 발은 유럽에 한 발은 한국에 걸친 느낌”으로 지내던 그가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와 만든 음반의 제목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음반을 구매하고 열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 것인가. 스스로 자신의 음악에 대해 “큰 그림을 디렉팅 한 이후 거기서 파생된 우연의 결과들이 모인 것도 편곡”이라 말하고 가사에 대해서도 “청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생각을 갖고 쓰면 안 되겠다”고 할 정도로 그는 청자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타입은 아니다. 대신 그는 풍족하지 않지만 왠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저녁 밥상을 환기하는 ‘고등어’처럼,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민감한 촉수로 찾아내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그런 면에서 그는 동시대 한국에 대한 일종의 지진계일지도 모르겠다. “복원되지 않은 경희궁 대신 공룡처럼 들어선”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오피스텔을 보고서는 몸서리를 치는 그의 정서는 사회를 향한 말을 내뱉을 때도 과거의 넥스트 같은 밴드처럼 공격적이거나 직설적이지 않다. 대신 우리, 즉 ‘너무나 평범한 사람’(‘평범한 사람’)들이 막연히 느끼고 있던 상실감을 자극한다. 모든 음악이 궁극적으로는 그렇겠지만 루시드폴의 음악과 그 인기를 CD 안에 박제된 텍스트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청자와 공명하는 과정 혹은 현상으로서 이해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때문에 지금 루시드폴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그의 가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동시대의 어떤 결핍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이 빠르게 등장한다는 것은 과거의 것이 빠르게 폐기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서서히 밀려오던 군화 소리 대검의 빛’(‘레미제라블 Part1’) 같은 어떤 역사적 상흔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눈물 나게 아름답다는 말’(‘외톨이’)처럼 듣고 싶지만 들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다. 물론 현실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그의 가사가 너무 관념적이거나 감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그의 관점이나 진정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 이곳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루시드폴이라는 지진계는 우리가 느끼는 아쉬움들을 자신의 노래에 담아낼 것이고, 우리는 종종 그것을 들으며 ‘심장 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걸어가자’)는 치유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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