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남편이다. 7일 서울 목동 SBS 사옥 13층에서 제작발표회를 가진 SBS <천사의 유혹>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SBS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의 또 다른 ‘유혹 시리즈’인데다 MBC <선덕여왕>을 피해 한 시간 빠르게 방영하는 파격 편성 등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천사의 유혹>은 <아내의 유혹>에 이은 또 한 번의 복수극이다. 부모의 원수를 알게 된 주아란(이소연)이 원수의 아들이자 재벌 2세인 신현우(한상진)와 결혼해 신현우를 파멸시키고, 주아란에 의해 식물인간이 된 채 실종된 신현우가 성형수술 후 안재성(배수빈)으로 신분을 바꿔 복수하는 것이 <천사의 유혹>. 마치 속편이 나올수록 스케일이 몇 배씩 커진다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처럼, <천사의 유혹>도 <아내의 유혹>보다 복수가 두 배 많아진 셈이다. 전작과 달리 일일 드라마가 아닌 미니시리즈 기대작으로 편성됐기 때문인지 보다 화려해진 영상과 ‘더 강하거나 더 야한’ 씬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선덕여왕>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재밌는 작품”

그만큼 <천사의 유혹>은 대중성에 모든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소연, 한상진, 배수빈, 홍수현, 김태현, 진예솔 등 이 날 제작발표회에 참가한 모든 배우들은 한결같이 “대본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수빈은 “처음 캐스팅 됐을 때는 MBC <선덕여왕>과 같은 시간대에 편성됐었다. 그런데도 출연을 결정할 만큼 드라마적 재미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했고, 한상진은 “‘막장 드라마’라는 말 때문에 처음에는 선입견도 있었지만 <아내의 유혹>을 본 40% 정도의 시청자들이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천사의 유혹>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더 무겁고 극적으로 다룬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막장 드라마’라기 보다는 장면 중 조금 막가는 부분이 있다 (웃음)”며 또 한 편의 ‘막장 드라마’가 아니냐는 세간의 인식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최근 SBS는 주중 미니시리즈 시간대에서 눈에 띌만한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간대를 변경하며 승부수로 꺼낸 <천사의 유혹>이 시청자들을 유혹할 수 있을까.

“임팩트 있는 6회 출연이 밋밋한 20회보다 낫다” 신현우, 한상진
신현우는 주아란에게 복수하려는 안재성(배수빈)의 원래 신분. 부모를 잃은 복수를 하기 위해 접근한 주아란을 사랑하게 돼 결혼까지 하지만, 주아란의 정체를 알게 된 뒤 큰 충격을 받고,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는 캐릭터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초반 6회까지만 출연할 예정인 캐릭터. 그만큼 한상진이 신현우의 배역을 선택한 것은 의외지만, 대본이 재밌어서 “임팩트 있는 6회”에 출연하고 싶었다고. “초반에 순수하게 한 여자를 사랑하다 배신을 당해 극단적인 복수심을 갖게 되는 등 감정기복이 굉장히 큰 역할이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대해 걱정이 많이 된다. 보는 분들이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수빈 씨와는 서로 같은 사람이 느낌이 들도록 손짓이나 말하는 버릇까지 맞춰서 연기한다. 막가는 장면이 있을지는 몰라도 연기를 막하지는 않는다. (웃음)”

키다리 아저씨에서 옴므파탈로 변신 안재성, 배수빈
배수빈은 얼마 전 SBS <찬란한 유산>에서 한 여자를 조용히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남자다. 주아란의 정체를 안 뒤 성형수술을 하고 돌아와 주아란을 유혹, 나락에 빠뜨리는 것이 안재성의 목표. 배수빈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복수는 내가 잘 되는 건데 안재성이라는 캐릭터는 내가 잘 된 다음 복수하려는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복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안재성을 소개하면서 “6회까지 한상진 씨가 모든 일들을 겪다 갑자기 내가 그 배역을 이어받아서 연기해야 해서 고민이 많다. 한상진 씨의 감정을 이어받기 위해서 편집실에 가서 한상진 씨의 연기를 보면서 내가 당한 것처럼 상상하고 있다”며 안재성을 연기하는 것의 어려움을 말했다. <아내의 유혹>이 장서희에게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듯, 배수빈도 <천사의 유혹>으로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을까.

복수하고, 복수당하고 주아란, 이소연
주아란은 설정상으로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장서희)와 신애리(김서형)를 합친 듯한 캐릭터. 어렸을 때 자신의 눈앞에서 사고로 죽은 부모님이 사실은 신현우의 아버지의 음모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신현우에게 접근해 복수한다는 점은 구은재와 비슷하지만, 그 후 안재성이 된 신현우에게 유혹 당해 복수 당하는 것은 신애리와 비슷하다. 음모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동정 받을 부분도 다분하지만, 복수의 과정이나 신현우와 결혼한 뒤에도 자신의 후견인 노릇을 했던 남주승(김태현)과 불륜 관계를 갖는 등 악녀의 모습도 함께 갖고 있다. 이소연 역시 캐릭터의 이런 양면적인 모습을 함께 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무조건 나쁜 캐릭터가 아니라 힘든 인생을 살아온 여자라고 생각한다. 연기할 때도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복수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연기한다.”

유일하게 안 독한 캐릭터 윤재희, 홍수현
홍수현이 “시청자들이 숨 돌릴 시간을 주는 캐릭터”라고 말했듯, 그가 연기하는 윤재희는 주요 캐릭터들이 모두 극단적인 복수로 치닫는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막 가지 않는’ 인물이다. 신현우가 후원하는 보육원에서 자라 보육원을 찾아오는 신현우를 먼발치에서 보며 짝사랑하게 되고, 간호사가 됐다가 식물인간이 된 신현우를 간호하게 되면서 그를 돕는 인물. “시청자들이 재희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드라마를 보게 될 것 같다”는 홍수현의 말처럼 복수극에 얽힌 인물들을 지켜보는 쪽에 가깝다. 드라마 중반이 지나면 “착하기만 하지 않고, 보다 강하고 똑똑한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 같다”고.

관전 포인트
<아내의 유혹>은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는 동시에 기존의 상식을 깨버린 빠른 전개와 극단적인 전개로 이 드라마에 비판적인 사람들마저도 대중성만큼은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아내의 유혹>을 통해 ‘김순옥 드라마’를 학습한 시청자들이 비슷한 얼개를 가진 복수극에 어느 정도의 호응을 보내 줄지는 미지수. <천사의 유혹>이 <아내의 유혹>의 남자 버전일 뿐인지, <아내의 유혹>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김순옥 작가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꿰뚫고 있는 대중 작가일지, <아내의 유혹>과 같은 복수극을 재생산하는 작가일 뿐일지, 첫 방영인 오는 12일 밤 9시에 결정될 듯 하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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