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 시청률이 하늘로 치솟았던 NBC <제이 레노 쇼>가 이제야 예상했던 정상 궤도로 돌입하고 있다. 미국에서 황금 시간인 밤 10시에 TV를 장악한 <제이 레노 쇼>는 지난 3개월간 “TV의 미래를 바꾸는 쇼”라는 문구 아래 수천억 원을 투입한 대대적인 홍보와 예상치 못한 호재까지 겹쳐 9월 14일 첫 방송에서 1840만 명이라는 어마 어마한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바로 전날 <2009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고 여자 비디오상을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마이크를 가로채 “비욘세가 탔어야 했다”며 횡설수설했던 카니예 웨스트가 게스트로 출연, 인터뷰까지 하면서 예상치 못한 화제를 모았던 것이다.

제이 레노, 매주 1300만 달러를 절감하다

하지만 <제이 레노 쇼>는 처음 방송을 시작한 주의 마지막 방송일인 18일 금요일에 시청률이 760만 명으로 떨어졌고, 다음 월요일에는 570만 명으로 메이저 네트워크 방송 중 3위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시청률만으로 볼 때 엄청난 폭으로 감소한 것이지만, 제이레노는 이같은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애초에 <제이 레노 쇼>는 처음부터 다른 미드와의 첫 방송 대결에서 ‘전혀 이길 가망성이 없는’ 프로그램이란 것을 인정한 토크쇼이기 때문이다. 또 시청률이 5백만 명대로 떨어져도, 전체적인 시청률을 따져본다면 그리 낮은 수치도 아니다.

대신 제이 레노는 동시간대 경쟁 시리즈들이 재방송에 들어가는 시기를 노린다. <투나잇 쇼>로 연간 2천만 달러를 받았던 제이 레노는 <제이 레노 쇼>로 3천만 달러를 받는 대신 보통 연간 22주 분으로 제작되는 미드 시리즈와 달리 46주 분으로 자신의 쇼를 제작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미드 시리즈가 휴식을 갖는 여름이나 연말 연휴 등에도 빠짐없이 시청자들을 찾아갈 수 있다. <제이 레노 쇼>는 1시간짜리 미드 시리즈의 경우 보통 3백만 달러가 소요되는데 반해 에피소드 당 제작비가 35만-40만 달러가량에 불과해 NBC에 매주 1300만 달러를 절감시켜준다.

하지만 <제이 레노 쇼>는 방송사 측에는 좋을지 몰라도, TV 업계 종사자나 이들이 이용하는 관련 업종 종사자들,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는 큰 손해를 끼친다. <제이 레노 쇼>가 제작비용 절감을 할 수 있는 것은 전문 작가들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배우와 촬영 스태프를 축소한다는 점이 크다. 이에 따라 제작진과 관련된 케이터링, 소품 등 기타 업종 종사자들도 모두 설 곳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 시청자들도 재정이 든든한 메이저 네트워크 방송사가 제작할 수 있는 양질의 미드를 접할 기회도 줄어든다.

TV에서 농담 따먹기만 살아남는다면?

평론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을 들어보면, <투나잇 쇼>와 <제이 레노 쇼>에 다른 점이 있다면 테이블 없이 의자에 앉아서 인터뷰를 한다는 것뿐이다. 본래 정치적인 성향을 배제한 레노는 <제이 레노 쇼>에서도 안전하게, 시청률을 올릴만한 ‘농담 따먹기’ 정도로 변함없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제이 레노는 TV의 미래’라는 헤드라인으로 커버를 장식한 <타임>의 말처럼, <제이 레노 쇼>가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결국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TV 세계를 바꾸게 될 것은 분명하다. 성공할 경우 타 방송사 역시 제작비를 축소한 프로그램을 더욱 추진할 것이고, 실패할 경우 시청률 하락세를 몇 년 간 면하지 못하고 있는 NBC는 더 커진 구멍을 메우기 위해 계속 절감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든 TV의 황금기는 이제 지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 채널과 온라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메이저 네트워크들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혹시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버라이어티쇼나 리얼리티쇼만이 생존하지 않을까 하는 ‘악몽’ 같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글. 뉴욕=양지현 (뉴욕 통신원)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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