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이긴다는 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과정인건데 스스로 먼저 무너질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없나.
김명민
: 그런 두려움은 없다. 몰아붙일수록 내가 편해지니까. 가령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할 때 내가 지휘자라고, 내가 강마에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다. 그 많은 대사들을 순간적으로 숙지해서 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고. 그러니 그 사람이 빨리 되어야 어떤 대본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다 된다. 손동작, 발동작, 입술 모양과 안면 근육 움직임까지. 다른 분들은 대단하다, 독하다 그러는데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런 거다. 만약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데도 편하게 연기를 잘할 수 있으면 미쳤다고 그러겠나. 자기 안의 흰 도화지에 파란 물감을 칠하면 파랗게 되고, 빨간 물감을 칠하면 빨갛게 되는 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자의 몫이다.

금욕 중인 수도승 같다. (웃음) 하지만 모든 배우가 당신처럼 연기하는 건 아닐 텐데.
김명민
: 내가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그런다. 타고난 재능이 많았으면 그렇게까지 신경 안 쓰고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장준혁이 죽은 후 멍하니 2~3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연기 이후의 과정은 어떤가. 작품을 끝내고 나로 돌아오기 어렵진 않나.
김명민
: 굉장히 힘들다. 쉽게 예를 들어 여자 친구를 사귈 때 육체적인 관계만 맺었던 사람은 헤어지기 쉽지만 정신적인 관계를 맺었던 사람은 헤어지기 어렵지 않나. 마찬가지로 배우도 자신이 연기하는 허구의 인물과 사랑에 빠지는 거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지 않나. 그러니 내가 그 인물과 사랑에 빠져야 하는 거다, 지독하게. 상대배우와 사랑에 빠지면 안 되고. (웃음) 그게 어느 정도 지나면 얘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 얘의 목표나 상태 같은 게 고스란히 느껴지게 된다. 많이 사랑할수록 많이 느껴진다. 그러니 그 역과 이별할 때 힘들 수밖에 없지. 배역의 깊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의 내장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불멸의 이순신>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 눈물이 났다.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이렇게 죽게 된다는 것이, 그리고 1년 반 동안 이순신으로 살았던 시간에 종지부를 찍는 게 너무 슬픈 거다. 의연하고 담담하게 눈을 감아야 하는데 눈물이 계속 나서 NG가 8번 정도 났다. 장준혁이 죽은 이후에도 멍하니 창을 쳐다보다가 두 세 시간이 훌쩍 지날 때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순신과 장준혁은 죽었고, 강마에는 떠났다.
김명민
: 그래서 강마에는 좀 괜찮았다. (웃음) 그나마 조금 벗어나기 쉬웠던 역할이었다.

도화지 얘기를 했는데 당신은 그 도화지에 다른 무언가를 모방해 그리는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걸 그리는 느낌이다. 즉 제1의 장준혁, 제1의 강마에였다.
김명민
: 자존심은 있다. 타고난 재능은 조금밖에 없어도 자존심은 세다. 누가 우리나라에서 한 걸 답습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나만의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사실 장준혁의 경우 이미 일본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답습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저 사람은 천재 외과의사인데 왜 저렇게 수술하는 게 어설플까, 저건 아닌데 싶었다. 장준혁을 설명하는 첫 번째 특징은 수술 실력이다. 성격이 못되거나 착하거나 하는 건 둘째 문제인 거다. 장준혁의 야심을 쉽게 욕하지 못하는 건 그가 천재 의사이기 때문인 거고, 수술을 잘해야 시청자가 ‘아, 진짜 천재 의사구나’라고 인정한다. 그래서 계속 꿰매고 연습한 거다. 의사 같은 손놀림을 만들려고.

그러면서 안판석 감독이 말한 소위 ‘시적 발화’의 순간이 생긴다. 담관암 환자로서의 장준혁이 감각을 잃고 신문을 헛짚는 장면 같은.
김명민
: 그런데 찍는 사람은 잘 모른다. 그건 내가 환자 장준혁이라 했던 거지, 그걸 가지고 감독님께 ‘제가 이거 할 테니까 잡아주세요’라고 할 필요가 없는 거다. 만약 감독님이 알았다면 아마 손가락부터 잡았을 거다. 그런데 실제로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구두코에 스크래치를 내거나 이런 것들 모두 카메라에 잡히든 안 잡히든 그래야만 하니까 하는 거다. 그러다가 그게 우연히 어느 순간 잡혔을 때 경악감이 크게 느껴지겠지. 예전에 치매 걸린 할머니가 나오는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할머니가 자식들이랑 얘기하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데 엉덩이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화장실 간다고 나가지만 이미 오줌을 싼 상황인 거다. 풀 샷으로 잡은 거라 몇 번 돌려봤다. 만약 감독이 알았다면 그 부분만 잡아줬겠지. 그런데 그 사람은 감독님께 어떻게 한다고 말하지 않고 스스로 치매환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리 물을 뿌려놓은 거다. 그 때 보는 사람은 그가 정말 치매환자라는 것에 한 치 의심을 할 수 없다. 그냥 본질로, 드라마의 본질로 확 들어가게 된다. 이 영화는 치매를 그린 드라마라고 설명할 것 없이 그 한 정면에 시청자는 빠지는 거다. 그게 중요하다.

“인간을 단면적으로 그리는 작품은 짜증난다”

말하자면 <내 사랑 내 곁에>의 백종우에게 있어선 엄청난 감량을 통한 죽음의 표현이 본질인 셈인데 그런 특징이 뚜렷하지 않은 일상적 인물은 잘 연기하지 않는 것 같다.
김명민
: 생활 연기에 대한 건데, 일단 내가 선택하지 않는다. 재미없지 않나. 각기 다른 A, B, C라는 사람을 데려다 놓고 시켜도 다 비슷하게 할 거 같다. 그게 가장 어려운 연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생활적인 연기, 뭔가 새로운 걸 끄집어내지 않는 연기는 창작 열의를 식게 만든다. 그게 처음 얘기했던 요리 재료 같은 거다. 두세 가지 재료를 던져놓고 요리를 시켜 봤자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열 가지 이상의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건 그만큼의 폭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한 가지 면만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옆에서 계속 괴롭히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고, 나쁜 사람이라도 어떤 지점에선 어린애 같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다. 그게 바로 인간인 건데, 인간을 단면적으로 그리는 드라마나 영화는 짜증나는 거지.

그런 인간의 복합적인 면을 시청자나 관객에게 설득시킬 때 분명 드라마의 긴 호흡이 영화보다 유리한 지점이 있겠다.
김명민
: 그래서 어떤 인물의 일대기 같은 건 영화로 만들면 안 된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영화가 잘 안 된 건 그래서다. 그런 이야기는 100부작짜리 드라마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영화는 후반 작업을 통해 감독의 의도와 주제의식에 맞게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결과물 자체는 배우의 손을 떠나 만들어진다. 간혹 내가 보면서도 ‘나는 저렇게 연기한 게 아닌데’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럼 <내 사랑 내 곁에>와 그 안의 백종우는 어떨 거 같나.
김명민
: 영화는 정말 모르겠다. 다만 이번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우위에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에 만족한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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