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스태프인줄 알았다. 머리띠로 정리했지만 여기저기 삐져나온 머리카락과 가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먼지 쌓인 자취방에서 라면 먹을 때나 어울릴 ‘츄리닝’ 바지, 그것이 김남길의 첫인상이었다. 용인 야외촬영 현장까지 오는 두 시간 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했던 비담의 이미지와 들어맞는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시간이었다. 도저히 서울에서는 만날 수 없는 스케줄이라 촬영 현장까지 왔지만 이곳에서도 언제쯤, 또 얼마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을지 확정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매니저의 한 마디. “여기, <선덕>이에요.” 수많은 인물이 나오는 대하사극을 밀도 있는 서사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건 다른 말로 연기자 모두가 드라마 하나만 보고 움직인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다렸다. 하릴없이 기다리는 동안 쨍쨍하던 해는 저 멀리 뉘엿뉘엿 지고 산 속의 온도는 빠르게 떨어졌다. 춥고 지치고 배고파서 까닭 없는 원망이 생길 즈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그가 걸어왔다. ‘츄리닝’을 벗고 분장을 마친 그는 스태프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잘생긴 배우 같지도 않았다. 그냥, 비담이었다. 브라운관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스태프에서 비담으로 이미지가 급반전된 것처럼 기다리며 쌓인 원망 역시 그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을 밝혀야겠다. 다음 신이 언제 들어갈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매니저에게 “언제 부르더라도 그때까진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어야지”라고 그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그토록 편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을 이용해 현장에 임시로 만든 세트를 보고 “와, 이런 거 처음이야. 스태프들한테 자랑하고 싶은데”라고 눈을 빛낸 그가 아니었다면 포토그래퍼 역시 부담 없이 사진을 찍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배려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원망이라니. 게다가 인터뷰 중간 중간 보여주는 허물없는 태도는 비담의 팬이 아니더라도 김남길의 팬이 될 만한 것이었다.

[스타 ON] 진행을 위한 “내가 좋아, 알천랑이 좋아?”라는 그의 즉석질문에 C기자가 “그것 참 고르기 어렵다”고 대답하자 그는 마시던 음료에 사레가 들려“켁…켁…그래도…제 인터뷰에…켁…오신 건…데 제가 좋다고…말을…해주셔야죠”라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런 인간적 허술함과 대화 소리가 안 들릴 정도의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헬기를 가리키며 “저거 떨어뜨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난기에선 본인 말대로 “비담처럼 장난과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신과 알천이 회의하는 심각한 장면에서 “혼자 놀아보라는데 마땅히 할 게 없어서” 장풍으로 촛불을 끄는 애드리브를 보여준 건 우연이 아니다. 주위가 캄캄해져 어둠 위에 둥둥 뜬 그의 하얀 치아만 보일 때 즈음 인터뷰는 끝이 났다. 지금 서울에 올라가려면 길이 너무 막힐 거라는 걱정과 함께 그는 “먼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면을 통해 확실히 밝혀야겠다. 당장의 휴식이 아쉬운 현장에서 시간을 내줘서 감사한 건 우리라고. 그리고 왕복 4시간의 거리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인터뷰였노라고.

[스타ON]은 <10 아시아>(www.10asia.co.kr)와 네이트(www.nate.com)가 함께 합니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