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 본인에게 잘 맞는 옷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다.
이민기
: 내가 쓰는 말투에 내가 쓰는 행동에 내 목소리, 웃음소리가 자연스레 묻히는 캐릭터라면 더 자연스러운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아직도 글로 쓰인 인물에 가까워지려면 그 사람과 비슷하게 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의 형식은 정말 일상적인 인물이지 않나. 말하자면 나는 26년 동안 형식과 비슷하게 살아왔으니까 그 캐릭터를 표현하기 쉬웠던 거지.

그러면 형식과 본인은 좀 닮은 것 같나.
이민기
: 그건 아니고 감독님이 잘 맞춰주신 거 같다. 나는 처음에 부산 사나이 같은 느낌으로 가려고 했다. 무뚝뚝하고 그 안에 있는 부끄러움도 되게 투박하게 표현하는 딱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그런데 감독님께서는 부산 소년 같은 느낌을 원하셨다. 부끄러움 많고 되게 밝은 그런 느낌을. 초반에 그런 얘기 많이 했다. 내가 뭘 하면 그건 너무 남자 같다고. 그렇게 맞춰가며 형식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내가 특별히 잘한 건 없다.

“나는 아직도 시간의 힘을 믿는다”

하지만 이민기이기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가령 <10억>에서 순간 위험한 인물로 돌변하는 철희 같은 경우 감정이 좀 불균일하게 느껴졌다.
이민기
: 이런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악역이란 이미지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걸 표출하는 연기를 해야 하나, 싶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철희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봤다. 터프하지도 거칠지도 않다. 단지 며칠째 잠도 못자고 쫓기는 절박한 상황에서 마지막에 자기가 살기 위한 선택을 하는 건데 악인은 아닌 거다. 즉 캐릭터적인 인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인물로 봤다. 문제는 결국 설득력인데 감정이 불균일하게 느껴졌다면 설득력이 부족했던 거겠지. 언젠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겠냐는 질문에 기복이 있는 배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매 작품을 잘할 수 있게나. 나 혼자 잘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내가 못한다고 전체가 안 될 것도 아닌 게 이 작업인데. 그런 기복 중에 <10억>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 기복이라는 건 어떤 배역이, 또 어떤 영화가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알아가는 과정일 텐데.
이민기
: 분명 그런 건 있다. 자기가 더 잘하는 것이. 열 가지 역할을 한 사람이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아직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고, 그걸 알게 되면 참 싫을 거 같다.

싫을 거 같다는 건 어째서인가.
이민기
: 나는 아직도 시간의 힘을 믿는다. 악역을 할 때 바라만 봐도 악질 느낌이 나는 배우가 잘하겠지만 내게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못할 거 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것도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 거다.

즉 도전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얘기다.
이민기
: 항상 모든 게 도전이었다. 어떤 분들은 만날 비슷한 역할 한다고 그러시는데 난 안 그렇다. 오히려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 때가 더 힘든 도전이다. 남들에게 똑같다는 얘기 듣는 건 상관없는데 내가 봐도 예전 역할 할 때와 비슷해지기는 싫으니까. 가령 당황하는 연기를 할 때, ‘예전에 다른 역할 할 때도 이렇게 당황했는데, 이런 느낌의 캐릭터들은 내가 자연스럽게 그 느낌을 가지고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더 고민된다.

“지금 뭔가를 해놓아야 30대에 그걸 가지고 즐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1집 앨범 < No kidding > 발매 역시 하나의 도전이었다.
이민기
: 나도 어떻게 기회가 되고 시간이 되고 할 수 있게 돼서 만든 앨범이다. 그런 만큼 욕심도 있고.

판매량에 대한 욕심은 아닐 거 같은데.
이민기
: 판매량이 듣는 사람에 비례한다면 욕심이 있다는 게 맞다. 영화도 많이 봐주면 좋은 것처럼. 다만 만 명의 관객만 봤어도 그들 모두가 ‘뻑 가는’ 영화라면 의미가 있는 것처럼 소수라도 완전히 빠져주면 좋을 거 같다. 사실 음악은 영화보다 접하기 더 쉽지 않나. 당장 내 미니홈피에만 들어와도 들을 수 있는데. 그러니 많이 들어주는 것도 좋지만 그만큼 좋아해주면 좋겠다.

이게 1집인데 앞으로 2집도 내며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꾸준히 할 생각인가?
이민기
: 그렇다. 다만 급하게는 할 생각이 없다. 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점점 내가 이해가 가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시나리오를 봐도 내가 좋고 빠져야 그 영화를 보고 남들도 빠지는 것처럼 음악도 내가 확 빠진 음악을 가지고 하면 그 에너지가 사람들을 빠지게 할 것 같다. 그런 과정 없이 그냥 곡이 충분히 만들어졌고 2집 한 번 낼 때가 됐으니 내자고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곡들이 좋다고 말해줘도 당장 내가 좋지 않으면 무슨 애정이 있겠나. 이번 앨범의 경우 일렉트로니카 장르로 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거다.

그럼 다음 앨범은 다른 장르로 시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콜드플레이 같은 밴드의 음악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이민기
: 사실 그런 스타일도 좋아하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 노래를 내가 불렀을 때 매력 있을지도 모르겠고. 만약 나 혼자 곡 쓰고 녹음하고 그런 거면 그냥 해보고 별로다 싶으면 다른 거 해보자, 이럴 수 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선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더 급하게 갈 생각이 없다. 이것저것 준비해보면 좋지 않나. (웃음)

이렇게 도전하는 20대의 모습이 참 잘 어울리는 반면 3, 40대의 이민기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민기
: 나도 안 그려진다. (웃음) 다만 이런 생각이 있다. 지금 뭔가를 해놓아야 30대에 그걸 가지고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책을 많이 읽어놔야 30대에 책이라도 한 권 쓸 수 있겠지. 그래서 지금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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