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선덕여왕>은 올해 보기 드물게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극이다. 시청률이 40%를 돌파하며 대중적으로도 가장 성공하고 있는 것은 물론, 비담처럼 현대극을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덕만과 미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략 대결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한 작품 안에 품으며 대중적인 지지와 열광적인 팬덤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특히 단지 선덕여왕의 영웅성을 강조하는 대신 신라의 다양한 정치적 사안들을 통해 현실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게 하는 힘은 <선덕여왕>의 또 다른 미덕이다. 익숙한 얼개의 사극 안에서 꾸준히 새로운 사극으로 변해 나가는 <선덕여왕>의 힘은 무엇일까. <10 아시아>가 <선덕여왕>을 중간점검했다. 그리고 누구든 기억해두면 좋을 <선덕여왕>의 명대사와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선덕여왕>의 또 다른 이야기도 공개한다.

사라진 태양이 나타났다. 버림받은 공주는 빛과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바꿀 시간이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 쌍둥이를 낳으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 하지만 덕만(이요원)은 예언을 “개양자립하여야 계림천명하고 신천도래, 태양의 자식이 서야 하늘이 밝아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로 바꾸었다. 철벽같던 권력자는 휘청거리고, 탄생조차 부정당한 공주는 스스로의 힘으로 예언을 수정했다. 그렇게 MBC <선덕여왕>은 하늘의 운명을 인간의 선택으로 바꾼다. 문노(정호빈)는 덕만이 북두칠성의 기운을 타고났다 예언한다. 하지만 덕만은 월천대사에게 “권력자들이 하늘의 뜻을 이용할 수 없도록” 누구나 천문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할 것을 약속한다. 백성이 하늘의 뜻을 알면 권력자들은 더 이상 예언을 통한 공포와 환상으로 그들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

미실과 덕만이 은유하는 것들

영웅은 예언으로부터 태어난다. 하지만 영웅은 예언 대신 사람의 뜻이 통하는 세상을 만든다. 그래서 <선덕여왕>은 2000년대 후반에 등장한 21세기 신(新) 사극이다. MBC <주몽>같은 일련의 영웅 사극들처럼, <선덕여왕>은 예언과 신화의 영역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예언을 사람의 의지로 실천한다. 어린 시절 덕만은 목숨을 걸고 기우제를 지냈지만, 하늘은 답하지 않았다. 그를 살린 건 물을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땅을 판 자신의 노력이었다. <선덕여왕>에는 예언은 있어도 기적은 없고, 도구는 있어도 신물은 없다. 진흥왕(이순재)의 목숨을 살린 것은 작은 소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였다.

<선덕여왕>이 ‘사람’을 강조하는 건, 사람의 의지가 하늘의 뜻이 되기 때문이다. 미실의 권력은 화랑들의 충성과, 미생(정웅인)의 계책과, 설원공(전노민)의 행동력이 모두 있어야 유지된다. 덕만도 김유신(엄태웅), 비담(김남길), 월야(주상욱)를 얻고 나서야 미실과 대적한다. <선덕여왕>이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정치사극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이 지점부터다. <선덕여왕>은 곳곳에 지금의 정치적 사건들을 암시한 듯한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천명(박예진)의 죽음은 5월의 그 죽음을 연상케 하고, 예언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것은 미디어 정치의 실례다. 그러나 대중은 이미 MBC <대장금>에서 ‘다리를 저는’ 정상궁(여운계)과 한상궁(양미경)의 관계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계를 유추했고, MBC <이산>에서 수구세력의 위협을 받는 정조(이서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입시켰다.

버림받은 세대, 포기의 시대를 넘어 도전을 맞이하다

<선덕여왕>이 정치사극인 것은 개별적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를 움직이는 통치 철학의 문제를 말해서다. 미실과 덕만이 사람을 얻는 방식은 정반대다. 미실의 정치는 배제와 공포다. 그는 쓸모 있는 자에겐 모든 것을 주겠다 하지만, 적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제거한다. 반면 덕만은 공존을 추구한다. 그는 백제와의 전쟁에서 부상당한 알천을 함께 데려가자고 주장한다. 다른 화랑들이 살려면 알천을 죽이는 것이 낫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그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선덕여왕>은 미실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백성은 언제나 힘들게 살았다.” 미실의 사람들에 저자거리의 백성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세상의 1%만이 똘똘 뭉쳐 잘 사는 정치와 모두를 살리려는 정치. 당신은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1%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99%와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선덕여왕>은 이 시대에 벌어지는 정치 갈등의 핵심을 서라벌 안에서 풀어냈다.

두 체제의 갈등은 곧 세대 간의 대립으로 연결된다. 기존 영웅 사극은 선과 악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같은 정치 체제를 가진 영웅과 간웅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다른 정치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대결이자, 정치적 기반이 없는 젊은 세대와 기존 정치 세력의 대립이다. <대장금>의 장금(이영애)에게는 한상궁이 있었고, <이산>의 정조에게는 영조(이순재)가 있었다. 그러나 덕만은 어른들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현실 정치로 내던져진다.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조민기)과 을제(신구)는 권력 유지를 위해 덕만을 외면했다. 김유신이 도피 중인 덕만에게 했던 말은 덕만과 그의 지지자들이 가진 신라 청춘들의 정서다. “우릴 구할 사람은 우리 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 우리가 포기하면 우린 죽는다.”

버림받은 세대가 ‘포기의 시대’를 지나 권력에 도전하고, 정치 사극의 차가운 뇌에 청춘 드라마의 심장 박동을 이식한 드라마. 미실이 쌓은 권력의 벽은 너무나 견고하고, 젊은 화랑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실과 대적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기존 사극과 달리 청춘의 약동하는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선덕여왕>에서 알천랑이, 비담이, 월야가 하나하나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덕만이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등장하는 청춘의 동지들은 <선덕여왕>이 느슨해질 때마다 추진력을 불어 넣는다.

빛과 함께 나타난 공주는 새 시대를 비출 수 있을까

그래서 <선덕여왕>은 사극이면서도 다양한 현대물의 장르적 특성이 용해된다. 덕만과 유신의 애정관계는 신라판 <커피프린스 1호점>이었고, 비담은 김남길의 말대로 “<열혈강호>의 캐릭터와 <베가본드>의 비주얼”을 가진 채 작품을 휘저어놓았다. 또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워커홀릭이자, 동시에 지나간 사랑에 쓸쓸해 하는 미실의 개인사는 칙릿 드라마의 원조격이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중심에는 <스타워즈>같은 현대 영웅 서사시가 놓여있다. 운명을 타고난 영웅은 가족인 줄 몰랐던 자매에게 도움을 받아 성장하고,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덕만의 귀환은 제다이의 귀환이고, 비담과 미실의 관계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그를 악의 길로 인도한 펠퍼틴 의장처럼 보인다. <선덕여왕>은 한국의 사극이 권선징악을 넘어, 단지 과거사를 통한 현대의 반추를 넘어, 역사물도 현대물도 아닌 새로운 현대적 장르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선덕여왕>이 제시하는 새 세상은 미완이다. 덕만과 김유신의 멜로 드라마가 서로의 방백에 가까운 대사만으로 이어지거나, 작품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미실을 비롯한 몇몇 캐릭터의 직설적인 대사로 풀어내곤 하는 아쉬운 구성 때문만은 아니다. 덕만은 얼마 전 “패도를 택하겠다”며 현실 정치에 뛰어들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덕만을 통해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정치를 보여주려 한다. 과연 이 드라마는 그 경지에 도달할 만큼의 비전을 갖고 있을까. 미실이 최근 흔들린 것은 사람을 중용했던 그가 측근들을 내치면서였다. 측근들은 권력을 쫓아 분열하고, 미실은 그들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 그것이 과연 미실이 악하기 때문이었을까. 덕만은 권력을 잡은 뒤 미실처럼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덕만이 미실을 몰아내면, 그는 당장 왕권과 기존 신료들과 가야 유민, 그리고 김유신과 김춘추를 모두 아우르는 정치를 해야 한다. <선덕여왕>의 진짜 성공은 시청률 50% 달성이 아니라 드라마 속의 도덕 교과서 같은 교훈 대신 현실 정치의 룰 안에서 덕만의 이상을 시청자에게 설득시킬 때일 것이다. 일식은 끝나고 해가 떴다. 공주는 새 시대를 선언했다. <선덕여왕>도 사극의 새 시대를 열 수 있을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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