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듣기 싫어하고, 남자들은 절대 관대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군대 이야기다. 그런데 뮤지컬 <스페셜 레터>는 술자리에서조차 금기시 되어 있는 군대에서 일어난 일들을 뻔뻔하게 무대에서 재연중이다. 제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하여 2010년 뉴욕뮤지컬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의 프레스콜이 8월 26일 대학로 SM아트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스페셜 레터>는 이제 막 이등병이 된 스물일곱 살의 이철재가 안락한 병영생활을 위해 스물한 살 김상호 병장에게 정은희라는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친구를 소개시켜주고, 이후 펜팔을 통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김 병장과 정은희의 엇갈린 러브스토리에 총 대신 조리도구를 들고 4,000줄의 김밥을 싸는 취사병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군복이라는 유니폼에 옥죄어져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라는 박인선 연출가의 말처럼 계급에 따라 파닥파닥 튀어 오르는 병사 캐릭터들이 그 옛날 ‘동작 그만’을 보는 듯하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군필자인 만큼 자신들의 경험을 녹여 만든 ‘전투걸레질’ 같은 행동들은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고, “상병쯤 되면 고무신 거꾸로 신는 게 트렌드”라며 헤어진 후임병을 달래는 모습들에서는 아닌 척 하지만 살뜰한 우정도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여자 친구 따라 극장에 어쩔 수 없이 끌려왔던 남자들에게 120% 공감의 장을 마련할 뮤지컬 <스페셜 레터>는 12월 31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계속된다.

트리플A 완전소심 대학원생 정은희,
하지승ㆍ곽병진

친구 철재의 부탁으로 김 병장과 펜팔을 시작하게 되는 스물일곱 살의 정은희는 곧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할 줄 아는 거라곤, 러브레터를 행운의 편지라며 전하는 일과 자신을 대신해 김 병장을 만나준 후배에게 “헤프다”고 말하는 것뿐일 정도로 소심한 인물이다. “극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에 유일하게 아직 군대를 가지 않았고, 나이도 비슷해서 정은희에 몰입이 제대로 되고 있다. 나이도 나이고 상황도 상황인지라 모든 장면과 노래가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데, 특히 “아쉬우면 일찍 오던가” 같은 대사들이 정말 와 닿는다. (웃음)” (곽병진)

허세만 잔뜩 든 말년병장 김상호, 김남호
기상나팔 소리에도 후임병들이 모든 옷을 입혀줄때까지 절대 깨지 않는 김상호는 전역을 2개월 앞둔 말년병장이다. 취사반 병사들 중 가장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지만 병장인 만큼 온갖 진상짓을 다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극중 여자를 단 한 번도 사귀어본적이 없다는 설정만큼이나 은희와의 이별 앞에서도 최대한 멋지게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다. “해군 홍보단에 가수병으로 있었다. 홍보단은 외국에 나가서 공연을 홍보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타부대에 비해 선후임의 관계가 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노래하는 시간 외에는 나도 힘들었다. (웃음) 다행히 이병이 아닌 병장 역이라서 좀 편한 것 같다.”

군대 오니 단 게 땡기는 이등병 이철재, 송욱경
바나나 우유를 사오라면 빵 하나랑 우유를 사오고, TV 이따가 끄라는 말에 이닦는 시늉을 하는 등 도통 눈치도 없고 개인기도 없는 스물일곱 이등병이다. 늦은 나이에 군입대를 하게 돼 이 세상에는 ‘먼저 오신 분’과 ‘늦게 온 놈’만 있다는 걸 알고, 김 병장에게 친구 은희를 소개시켜 주며 이 모든 사건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친구와 김 병장의 고민을 들어줄 줄 아는 인물이기도 하다. “화천에 있는 이기자 부대에서 쓰레기차를 모는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이 작품의 상황과 비슷하게 병장 때 나이 많은 후임이 들어왔었다. 그때 생각하면 연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관전 포인트
군대 밖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군대 안이다. “멀쩡하고 잘생긴 사람들도 군대 가면 왜 이상해지는지 모르겠다”는 대사를 배우들은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 편지봉투 색이 바뀐 것에 일희일비하고, 어떤 음식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매주 종교를 바꾸고, 휴가를 나가기 위해 여장을 하는 등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디테일을 꼼꼼히 꾸리며 한편의 시트콤 같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극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후반부 은희와 순규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멜로는 아쉬움을 남긴다. 가끔은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다.

사진제공_악어컴퍼니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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