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 여자의 목소리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습니다. 평생의 벗이었던 그 남자를 떠난 보낸 여자의 몸은 생물학 적으로 이미 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음성만은 여전히 참 아름다운 여인의 것이었습니다.

2009년은 어찌도 이리 잔인한가요. 지난 2월에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고, 5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도 모자라 기어코 지난 8월 18일,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영면하고 말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몇 겁을 반복해도 경험하지 않을 모진 고초를 겪고도 소나무처럼 푸르렀던 그가, 당신이 전라도 빨갱이라고 부르던 그가, 마침내 북으로 가는 첫 발음을 내 딛었을 때. 그것은 정녕 꿈같은 순간이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를 귀가 아니라 눈으로 보여주었던 찬란한 순간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이 아니라, “남편은…”이라고 거듭 말하던 이희호 여사의 울먹임은 그저 지아비를 잃은 미망인만의 슬픔은 아닐 것입니다. 부디 안녕히 가세요. 우리가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던 마지막 아비, 우리가 벗이라 부를 수 있었던 마지막 친구, 안녕히 그곳에서는 정말 편안히.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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