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아웃 보이의 멋쟁이 베이시스트 피터 웬츠가 경호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대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 문득 주변이 제법 어두워졌음을 느낀다. 뒤늦게 허기를 깨달은 관객들로 핫도그와 케밥을 파는 부스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고, 사방이 희미한 맥주냄새로 가득하다. 제법 깊은 산 속임에도 무대의 조명 때문인지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별은 빛나는 무대 위에 있다.
낮으로도, 밤으로도 정의하기 어려운 경계의 시간에서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다. 맑고 서정적인 전작과는 달리 어쿠스틱 기타에 일렉트릭 기타 픽업을 장착해 들려주는 4집 신곡의 곡들은 지금 시간이 주는 느낌 그대로 남들이 잘 오가지 않는 어떤 경계에 선 느낌이다. 그 경계를 지나 이제 밤이 시작된다.
드디어 한국을 찾아 온 위저의 보컬 리버스 쿼모가 빅 탑 스테이지에서 “지금 몇 시에요?”라고 물어놓고서는 능청스럽게 “It`s time to rock”이라고 받아치며 팬들을 기절직전으로 몰아가는 동안 그린 스테이지에서는 스타세일러의 보컬 제임스 월쉬가 카메라에 관객들의 모습을 담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신곡과 히트곡으로 앵콜을 마무리하고 무대를 뜬 뒤에도 많은 팬들은 자리를 지킨 채 이들의 이름을 연호하고, 결국 다시 모습을 드러낸 스타세일러는 감격의 표정으로 다시 공연을 시작한다.
어떤 관객들은 헤드라이너인 노브레인의 무대에서 모든 것을 불사르려는 듯 푸드존에서 휴식을 취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만히 앉아있기엔 럭스의 등장은 너무나 거대한 떡밥이다. 과거 카우치 사건 때문에 겪은 마음고생을 노래에 담아 “만신창이 되어버렸어, 내 몸은 더러워졌어”라고 자조적으로 토해냈지만 격렬한 펑크의 에너지를 온몸에서 쥐어짜듯 뿜어대는 그들의 아우라는 펜타포트 스테이지 메인 이벤터로서 손색이 없다. 결국 보컬 원종희가 잠시 대리 연주를 해주는 사이 드러머 류명훈이 관객들 위로 다이빙한다. 뛰어내리는 뮤지션도, 받아주는 관객도 모두 순간의 눈빛만으로 합의에 이른다.
헤드라이너들의 감동은 마지막 날, 마지막 무대에서도 여지없다. 익숙한 점퍼를 입고 등장한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는 직접 무대 밑으로 내려와 관객들의 손을 잡아주는 흔치 않은 연출을 감행한다. 오히려 뮤지션에게 감동을 주는 관객들을 보고 있노라면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이 축제에 사실 주객의 구분은 없다. 같은 하늘 아래 모두가 ‘Don’t Look Back In Anger’를 합창하는 순간, 사랑과 평화의 만월이 부풀어 오른다. 누구든, 오라, 들으라, 그리고 내년을 기약하라.
“그럼 제대로 놀란 말이야, 썅” ‘마왕’ 신해철이 일갈하자 관중들은 환성으로 화답한다. 첫째 날 펜타포트의 밤이 럭스와 노브레인이 이끈 펑크의 난장이었다면 둘째 날은 넥스트와 데프톤즈라는 국내외 빅네임이 압도적 무게감으로 밤을 지배하는 느낌이다. 사실 거대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의 네임밸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과연 넥스트가 아니라면 리허설에서 보컬도 없이 ‘그대에게’의 합을 맞추는 것만으로 관객을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면에서 정말 거물급 헤드라이너의 괴력을 보여준 건 역시 데프톤즈다. 보컬 치노의 뱃속에서 토해내는 격한 샤우팅과 역시 격렬한 연주에 모두들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로 펄쩍펄쩍 뛴다. 한 여성 관객은 놀랍게 오아시스도, 라디오 헤드도 아닌 이 메탈 뮤지션의 곡을 하나도 빠짐없이 따라 부른다. 무릎이 시릴 정도로 뛰어오르고, 머리가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러 신체의 한계를 넘어갔다고 느낄 때, ‘7 Words’가 흘러나온다. 이제 신체는 정신이 지배한다. 그리고 정신은 음악이 지배한다. 땀에 흠뻑 젖고 다리가 끊어질 것 같지만 점핑은 멈추지 않는다. 그저 맥주가 조금 마시고 싶을 뿐. 뮤지션도 관객도 완전연소에 도전하는 펜타포트의 밤은 그렇게 하얗게 불타오른다.
지산밸리 피플│이규남 (남) 이인규 (여)“페스티벌에 온 걸 어떻게 알고 회사에서 자꾸 찾는 전화가 와요. 모처럼 금요일 반차 낸 건데”라며 울상을 짓는 직장인 커플 이규남, 이인규 씨는 요란하게 꾸민 관객들 사이에서 단정한 모습 덕분에 더욱 눈에 띄는 사람들이다. 펜타포트, 그랜드 민트 등 다양한 음악 축제를 섭렵하고 있는 두 사람은 사흘 내내 출퇴근 하듯 집과 공연장을 오가는 열성의 소유자들. “행사의 역사와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펜타포트의 명맥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소감을 밝히는 이규남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저 때문에”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배신의 변’을 전한다. 음악 축제 마니아답게 이들은 즐기는 와중에도 야무진 눈으로 행사의 개선할 점을 지적한다. 이인규 씨는 “경호 업체 직원들이 너무 강압적으로 통제를 해서 불쾌할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헤드라이너들 간에 무대 시간을 좀 더 잘 조정해서 관객들이 둘 다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참, 스테이지 간 이동을 할 때 매번 손목 티켓을 확인하는 건 좀 번거롭더라구요”라고 꼼꼼히 불편사항을 찾아내고, 이규남 씨는 “한국 밴드 라인업은 확실히 펜타포트보다 약해요. 앞으로 3호선 버터플라이나 허클베리핀처럼 연륜 있는 한국 1세대 인디 밴드들을 이런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라는 바람을 더한다. 페스티벌은 관객이 있어야 존재한다. 그리고 관객과 소통해야 발전한다. 이들 커플의 지적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단비가 되기를.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소포모어 징크스도 씻겨나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