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제62회 칸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픽사의 전성기를 알린 <업>이 국내에서 공개되었다. 3D 애니메이션 <업>은 미국에서 <박물관이 움직인다 2> 등의 블록버스터들을 제치고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총 2억6487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마음만은 소년인 노인과 마음만은 베어 그릴스인 소년의 모험담은 풍선으로 집을 날게 하는 픽사의 ‘만화 같은’ 계획과 만나 <월E>에 이어 또 한 편의 감동 어드벤처를 탄생시켰다.

지난 6일,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기자 시사회에는 칼 프리드릭슨 노인을 빼다 박은 배우 이순재, 스토리 슈퍼바이저 로니 델 칼멘, 라이팅 디렉터 조예원이 참석했다. 에 앞서 상영된 단편 <구름 조금>은 주인공 소년 러셀의 모델이기도 한 한인 2세 피터 손 감독의 작품으로 5분여 남짓한 짧은 시간에도 숨 넘어 갈 만큼 귀여운 픽사표 캐릭터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구름 조금>은 <업>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는 동시에 피터 손 감독의 장편 또한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다크서클마저 지우는 두 소년의 안티에이징 모험담
3D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이 노린 것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의 동작이나 한올 한올 정교한 머리카락 따위는 아니다. 오히려 모든 극의 기본인 스토리 텔링 능력이야말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도 가장 강력한 픽사의 장점이다. 영화는 어린 시절 꿈 많던 소년이 아내를 잃고 혼자 남은 노인이 되기까지의 일생을 십여분간 대사 한 마디 없이도 가슴 뭉클하게 보여주며, 픽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추억이 깃든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칼 프리드릭슨은 집을 비행선 삼아 모험의 성지, 남아메리카의 폭포로 날아간다. 그러나 호젓한 혼자만의 모험을 꿈꾸던 칼에게 예상치 못한 불청객 러셀이 끼어들고, 러셀로 인해 초콜릿 애호가 새, 말하는 개 등 희한한 친구들이 따라붙는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까지 놓칠 수 없는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한 <업>은 7월 30일 개봉한다.

<업> 제작진 공동 인터뷰


각자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을 것 같다.
이순재:
처음 더빙 제의가 왔을 때는 망설였다. 요즘 애니메이션들은 싸우거나 살벌한 내용이 많아서 꺼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을 보니까 내가 어렸을 때 보던 <백설공주>, <신데렐라>, <피터팬> 같은 디즈니 영화와 닮았더라. 상당히 유익하고 감동적인 영화라 흔쾌히 녹음을 했다.
로니 델 칼멘: 우선 극중 칼 프리드릭슨과 너무나 닮으신 이순재 씨와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다. 픽사에서 <라따뚜이>, <카>, <니모를 찾아서>, <월E>의 디렉터나 스토리 수퍼바이저로 일했는데 <업>은 지난 9년간 작업한 결과물이다.
조예원: 영화를 만들면서 사람들 간의 정에 관한 이야기라 한국인들이 재밌게 볼 만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순재 “영화 속 노인은 나랑 꼭 닮았다”

극중 칼 프리드릭슨 목소리를 더빙하면서 어떤 각오로 임했는지.
이순재:
과거에 TV 드라마나 영화를 후시 녹음한 적은 있었다. 당시에는 용돈벌이로 후시 녹음을 꽤 많이 했었다. 노인과 소년의 이야기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면 좋은 영화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내가 도움이 된다면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칼 프리드릭슨이 나하고 너무 비슷하더라. (웃음)

<업>을 구상하면서 특별히 중점을 둔 스토리 라인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로니 델 칼멘:
이 작품은 선택을 앞둔 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인이 죽은 이후 혼자 남겨진 집에 머무를지,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날지에 대한 선택 말이다. 거기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모험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의 모습도 담았다.

칼 프리드릭슨의 평생 소원은 어렸을 때 꿈 꿨던 폭포에 아내와 함께 가는 것이었는데, 노년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이순재:
여기선 노인이 소년과 파라다이스를 찾으면서 동고동락하는데, 난 특별한 건 없고 지금 하고 있는 걸 건강하게 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9월에 시트콤을 새로 시작하는데, 그게 잘 됐으면 하는 게 현재 가장 큰 꿈이다. (웃음)

칼 프리드릭슨 캐릭터에 공감했던 부분이나 힘들었던 점이 있는지.
이순재:
그 인물의 감정 표현이 아주 사실적이다. 표정이나 연기 방식이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과 거의 같다. 연기를 배울 때 여러 방법이 있는데, 이러한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연기의 기본을 터득할 수 있다. 소년이나 노인의 표정에는 연기의 기본적인 표현이 다 들어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호흡이나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웃음) 크게 의미 없이 나가는 소리나 놀래는 소리도 한국식이 있고 외국식이 있는데 그 차이에서 애먹었다. 그러나 칼의 목소리를 더빙 하면서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밌겠단 생각도 들었고. 손자들에게 보여주기에 무서운 영화들도 많은데, 은 어린이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

조예원 “정에 관한 이야기라 한국인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사실 일반 관객들에게 라이팅 디렉터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애니메이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말해 달라.
조예원:
실사 영화 촬영에서는 조명 장치라는 것을 있는데, 그것을 컴퓨터로 하는 걸 라이팅 디렉터라 생각하면 쉽다. 아트팀에서 전체적인 콘셉트를 짜면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옮기는가에 대한 일을 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순서로 보자면 스토리를 짜고 모델링과 콘셉트 아트를 거쳐 세트와 카메라 레이아웃과 패인팅까지 마치고 난 후 가장 마지막으로 작업하는 게 라이팅 팀이다. 라이팅은 단순히 사물을 아름답게만 하는 것 같지만 영화에서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영화에서 하늘을 나는 장면이 많은데, 여기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나 하늘의 섬세한 빛을 위해 참고한 것이 있는지.
조예원:
픽사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영화에 따라 모두 라이팅 콘셉트가 다른데, <업>에선 비주얼 스토리 텔링에 집중했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정글을 배경으로 러셀이 발자국을 살피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매우 복잡한 정글에 비해 발자국이 찍힌 땅은 굉장히 평범하다. 그래서 관객의 시선은 라이팅이 없으면 화려한 배경에 빼앗긴다. 그럴 때 정글을 어둡게 표현해서 관객의 시선이 러셀과 발자국에 가도록 유도한다. 또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모두 각기 다른 디자인 실사를 거쳐 탄생했다. 실제 자연 빛의 현상을 참고하진 않았다.

3D 애니메이션의 경우 라이팅을 할 때,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 차이점이 있는지.
조예원:
특별히 차이점은 없다. 영화 제작을 마친 이후 3D 랜더링 과정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지 조명 상에서 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픽사에서 하고자 했던 3D는 괴물이 튀어 나올 때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라기보다는 스토리 상 입체감이나 깊이감이 필요한 곳에만 힘을 주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로니 델 칼멘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교훈을 주고 싶다”

픽사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다. 특히 디즈니의 인수 이후 종전과 다르게 작품에 메세지를 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은데, 디즈니 인수 이후 실제 제작방식이 바뀌었나.
로니 델 칼멘:
원래 픽사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한다. <업>에서도 노인과 소년의 이야기가 동시에 나오는데, 그러한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젊은이들이 나이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성립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이 픽사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러셀의 모델이 단편 <구름 조금>의 피터 손 감독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는데.
로니 델 칼멘:
실제 러셀의 모델이 된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우리 이웃에 사는 보이스카웃 소속의 아이인데, 그 아이는 굉장히 에너지 넘치고 주변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그리고 또 한 명은 픽사에서 일하는 피터 손 감독이다. 이 친구 또한 굉장히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이다. 그들의 그런 부분을 러셀에 투영하려고 노력했다. 또 러셀이 할리우드 장편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는 드물게 필리핀계 미국인인 나나, 조예원 씨처럼 아시아인이라는 점 또한 자랑스럽다. 특히나 이번 <업> 상영에 앞서 피터 손 감독의 단편도 상영되었는데, 이 두 편을 붙여서 공개하게 된 것이 흥미로웠다.

국내에서도 3D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한국에 필요한 시스템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조예원:
한국 애니메이션 시스템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지만,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일하는 분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건데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는 상호 간의 믿음과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픽사 같은 경우는 다른 애니메이션 집단과 가장 다른 점이 한 번 디렉터한테 작업을 주면 100% 믿는다. 경영진도 작품의 스토리에는 절대 간섭 하지 않는다. 디렉터가 끝까지 작업을 밀고 나갈 수 있게 기회를 준다. 또 매 단계의 작업이 끝날 때마다 디렉터들 간에 열린 토론을 거친다. 그런 과정들이 있기에 전 세계가 공감하는 스토리가 나오는 것 같다. 신뢰와 소통이 가장 중요한 키가 아닌가 싶다.

사진제공_ 디즈니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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