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바나와 시애틀 그런지라는 흐름에 관심 있는 음악 팬이라면 ‘Man in the box’를 알 것이다. 너바나와 펄 잼, 사운드 가든 등 동시대 시애틀 록밴드들의 곡 중 가장 무거우면서도 어두운 분위기의 곡 중 하나인데 이것을 연주한 팀은 앨리스 인 체인스다. 쇠사슬에 묶인 앨리스라니 듣지 않아도 그들의 음악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욕망이나 추구하는 바처럼 아직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를 남에게 설명할 때, 모두가 알만한 문학 속 주인공을 빌려오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소통 방식이다.

아트스페이스 스푼에서 진행 중인 고선경의 개인전 ‘Alice in Nostalgia’展 역시 앨리스라는 동화 속 인물을 빌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전시다. 사실 우리는 ‘Alice in Nostalgia’ 연작을 비롯한 작가의 작품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소녀가 동화 속 앨리스라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를 ‘향수에 빠진 앨리스’라 설정할 때 그림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감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주의적인 선명한 톤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초현실적인 느낌이 부각된 ‘보고 싶었어’ 연작과 ‘Not your Marilyn but our Norma Jean’의 배경 안에서 소녀는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제목이 붙는 것만으로도 그림 속 상황은 이상한 나라 안에서 방황하는 소녀가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원래 있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리고 시각적 흥미로움은 감성적 교감에 이른다. 감상은 결국 소통이고, 소통에 효과적인 방식은 감상에도 효과적이다.

<암스>
1998년│작가 료우지 미나가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자신의 작품이 실사화 되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진 않았어도 상상은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암스>와 같은 독특한 SF 만화가 등장하는 것만큼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백토끼와 퀸,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자바워크와 기사, 그리고 앨리스는 이 만화 속에서 외계 운석을 통해 힘을 얻은 액션히어로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괴물 자바워크처럼 소설 속 존재들의 성격이 액션캐릭터의 특성과 절묘하게 겹쳐지는 지점에서 이 만화 역시 원작의 힘에 기대 캐릭터를 설명한다.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1988년│감독 석래명

앨리스가 방황, 혹은 성장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캐릭터라면 역시 우유부단함은 햄릿, 저돌적인 용기는 돈키호테다. 거칠고 반항적인 80년대 하이틴 영화가 두 주인공 이름을 동기(최재성), 호태(박중훈)로 설정해 돈키호테의 이미지를 가져 온 건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미래형 자동차 개발이라는 조금은 무모한 과제에 도전하는 두 젊은이의 모습을 그린 영화로 최재성은 <공포의 외인구단> 오혜성 때와 같은 반항적인 이미지로, 박중훈은 언변 좋고 넉살 좋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교얄개> 시리즈를 연출했던 감독의 작품답게 이들은 어떤 갈등에 부딪힐 정면돌파한다. 가끔 나가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돌진한다. 왜냐면 그들은 풍차를 향해 뛰어드는 돈키호테니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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