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고 부천이고 전주고, 어쩌면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굳이 그곳에 가지 않는다 해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신 주변의 크고 작은 시네마테크들에서, 수 많은 감독의, 다양한 장르의, 독특한 취향의 회고·기획전이 열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가장 쾌적한 환경 속에 주머니 부담까지 덜어주는 곳이 있으니 바로 서울 상암 DMC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산하 극장, 시네마테크 KOFA다. 5월 12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KOFA 개관 1 주년 기획전’은 ‘발굴과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를 키워드로 푸짐한 돌상을 차렸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아쉽게 놓쳐버렸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 복원판도, 생음악과 함께 상영되는 무성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도 궁금하지만, 당장 상암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작품은 역시 장만옥 주연의 <완령옥>이다.

무성영화 시대 중국 최고의 스타였지만 황색 저널리즘의 오해 속에 스물다섯 살 나이에 자살한 여배우 ‘완령옥’의 짧은 인생을 담은 <완령옥>은 배우로서의 꽃봉오리가 막 피어나던, ‘화양연화’ 직전의 장만옥과 마주 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특히 관금붕 감독과 장만옥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첫 시퀀스는 매우 인상적이다. 순탄치 않은 여배우의 길. 완령옥의 삶을 스크린 위로 옮기기 위한 후배 장만옥의 고민은 준비된 시나리오 없이도 영화의 첫 장을 묵직하게 열어낸다. 미인대회 출신의 멍청하고 예쁜 아가씨, 정도로 폄하되던 배우 장만옥의 진가는 <완령옥>을 전후로 재평가되었고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홍콩 여배우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완령옥>을 처음 본 건 화질 나쁜 VHS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서였다. 이후엔 선배가 종로 어딘가에서 샀다는 불법 VCD였나 DVD를 빌려 보았다. 그런 <완령옥>을 마침내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니! 벌써 가슴이 뛴다. 게다가 이 모든 상영은 무려, 무료다. 무릇, 세금이란 이런데 쓰여지라고 내는 것이다.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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