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의 결혼식에서 예정에 없던 인사말을 해야 할 때, “행복하시죠?”하고 물어놓고서 “네”하는 신랑 신부의 대답에 “그 행복이 언제까지 갈 것 같아요?”하고 능글맞게 응수한다면. KBS <개그 콘서트>의 코너 ‘독한 것들’에 출연하는 개그맨들 중에서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가 가장 높다고 추켜세우는 상대방에게 “그럴리가요! 오나미 씨가 더 높을 텐데… 정말 누군지 궁금해질 정도로 못생겼거든요. 흐음.”하고 짓궂은 능청을 떤다면. 그가 개그맨 정범균일 확률, ‘백푸로’다. 그러나 방송에서 보여 지는 모습들은 정범균의 백퍼센트가 아니다. 코가 무릎에 닿도록 꾸벅 인사하는 모습은 ‘독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생애 첫 단독 인터뷰”라며 긴장하는 얼굴은 어쩐지 귀여워 보일 지경이다.

백퍼센트의 개그맨이 되기까지

순하기만 한 건 아니다. 심지어 그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스스로 “딱히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유난히 큰소리로 떠벌이지도 않고, 비장의 개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몰래 숨겨둔 아이템이 넘치는 것도 아니란다. 그런 그가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공채 개그맨 시험을 통과하고 일 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는 코너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는 비결로 꼽는 것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이다. 대학로에서 개그맨 지망생으로 활동하던 시절 롤 모델이었던 변기수는 ‘오빠’를 무대에 올릴 때 상대역의 대타를 자원하고는 했던 정범균을 ‘DJ 변’의 포스트 김기열로 발탁했고, 같은 동네 이웃인 김준현은 출퇴근을 할 때마다 ‘2인승 코란도’에 그를 꼭 태워서 다닌다. ‘독한 것들’에 같이 출연하는 곽한구는 훨씬 어린 그가 ‘형’ 소리도 떼고 장난으로 들이 댈 때도 화내는 법 없이 웃으며 받아 준다.

그 중에서도 정범균이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꼽는 것은 짝패로 데뷔해 ‘지역 광고’와 ‘독한 것들’을 함께 무대에 올린 최효종이다. 수능 성적보다는 실기를 평가한다는 말에 혹해 레크리에이션과에 입학 했지만 학교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던 그를 대학로의 개그 무대로 이끌어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최효종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처음 개그맨 시험을 보던 날 너무 긴장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시험장을 나와 엉엉 울던 그에게 “일 년만 더 같이 고생하자”고 용기를 준 것 역시 “내 친구 효종이”였다. “개그맨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야 진짜 이 악물고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본격적으로 개그맨을 꿈꾼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예요”라고 고백 할 때는 조금 숙연해 지는 것 같더니 정범균은 이내 으쓱해진 말투로 특유의 뻔뻔한 개그를 늘어놓는다. “사~실, 운이 좋은 것도 일종의 실력 아니겠어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 얘기를 하는데 말입니다, 같이 개그 짰던 ‘왕비호’ 형이랑 ‘있는데’ 형은 어디 가서 그 코너 저랑 같이 준비 했었다고 말을 안 하더라구요. 저는 안 그러려구요. 고마운 건 다 밝힐 겁니다.”

“이십대는 준비하고 삼십대에 달려서 칠십까지 갈 거예요”

아슬아슬한 농담을 웃음의 영역으로 토스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 정범균은 신인의 태를 벗고 있다. 그리고 그가 지금부터 우리에게 보여줄 것은 ‘형’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그만의 개그가 될 것이다. “빨리 뛴 말은 빨리 지친다잖아요. 인생 길게 보고 가야죠. 이십대에는 준비를 잘 하고, 삼십대에 달리기 시작해서 칠십까지 달릴 거예요. 뭐…… 빅뱅처럼 20대부터 쭈욱 가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예상 밖의 의젓한 결심, 조목조목 정리된 문장, 예리한 지적까지 이쯤이면 새로운 캐릭터로서의 조건은 제법 갖춰진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역시 한마디가 더 붙는다. “히야, 내가 한 말이지만 좀 멋진 것 같네요!” 기대하자. 느긋하게 기다리면 언젠가 우리 앞에 백퍼센트의 개그맨 정범균이 독하게 등장할 것 같지 않은가.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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